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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석아, 그 전에 우리가 잘해야지."
"솔직히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막말로 단순 작업에 어떻게 조리사를 고용해요?"
"그러니까 단순 작업은 주방이 아닌 작업장에서 하게 해야지."
"충칭 매장이 당했다는 말에 지금은 그러고 있어요.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대단해요."
"무슨 불만?"
"당국에서 우리만 노골적으로 찍고 있다는 거죠. 솔직히 여기가 중국인 만큼 우리보다 중국인 직원들이 그런 분위기는 더 빨리 알아차리죠."
"그럴수록 괜한 꼬투리 안 잡히게 더 잘해. 난 옷 갈아입고 나오마."
"직접 요리를 하시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해야지."
"사장님이 직접 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니, 오늘 온 손님들은 복 터졌는데요?"
"자식, 넉살은. 금방 갔다 오마."
북한 진출과 관련해서 다음 달에는 북한을 종종 다녀와야 하는 만큼 지금처럼 중국 매장을 수시로 방문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는 상당 시간을 머무르면서 충칭과 광저우의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가겠다는 것이 지훈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장쉬엔이 나선 덕에 준상의 말처럼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지켜봐야 했다.
지훈이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그 시각, 매장 외곽의 주차장에는 이곳 매장에서 근무하는 중국인 여성 셰프 궈얀이 전철민을 만나고 있었다.
"자기, 여기는 무슨 일이야?"
"궈얀, 잘 있었어? 오늘 힘 안 들었어?"
"늘 하는 일인데 괜찮아."
"난 자기뿐인 것 알지? 내 생각해서 힘내."
"고마워, 자기도 힘내!"
"그래야지. 궈얀은 내 생각 많이 했어?"
"나는 항상 자기 생각뿐이지."
"정말?"
"진짜."
"그러면 내가 전에 부탁했던 일 할 수 있어?"
"오늘?"
"왜 무슨 문제 있어?"
날씬하고 예쁜 여자가 인기를 얻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중국 여성이 거금을 들여서 앞다퉈 성형수술을 한다. 이는 궈얀도 마찬가지여서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린 데다 한국까지 가서 눈과 코를 고쳤다.
하지만 원판이 워낙 안 좋다 보니 현대 의학의 힘으로도 그녀를 미녀로 탈바꿈시키는 데 실패했다.
물론 많은 돈을 들인 만큼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예뻐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녀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원체 먹성이 좋은 탓에 어릴 적부터 이것저것 자주 집어 먹어 몸매도 통통한 데다 키까지 작아서 지금껏 제대로 된 연예를 한 번도 못 해 봤다. 그러니 작정하고 들이대는 전철민에게 너무도 쉽게 홀딱 빠지는 게 당연해서 이제는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정도였다.
"그건 아닌데, 한국에서 사장님이 오셨어."
"그래? 차라리 잘되었네."
"자기야, 오늘 꼭 해야 해?"
"왜?"
"그냥 괜히 마음에 걸려서……."
"그래서 못 하겠다고? 궈얀, 날 사랑하는 것 아니었어?"
"사랑해."
"사랑한다면서 그 정도 일도 못 해 줘? 자기는 나보다도 사장이 더 중요해?"
"그……그건 아니야."
"그렇다면 해 줘, 부탁이야. 만약 자기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난 회사를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
"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래, 그렇게 되면 우리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거야. 자기는 날 안 보고 살 수 있어?"
"안 돼, 자기는 내 삶의 전부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내가 실업자가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의 사랑은 결국 허무하게 끝날 수밖에 없어. 자기는 그걸 원해?"
"아냐, 싫어."
"그렇다면 내 부탁을 꼭 들어줘. 그리 어렵지도 않아. 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났는데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내 인생은 끝장나고 말 거야."
거짓 사랑을 앞세운 전철민은 죄책감으로 망설이는 궈얀을 어르고 달래면서 꾀기 시작했다.
이미 전철민에게 푹 빠져 있는 궈얀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한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그의 말에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억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궈얀. 역시 내게는 자기밖에 없어."
"처……철민 씨,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볼 테면 보라고 해."
"아!"
흐~흡!
궈얀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순간 전철민은 그녀를 끌어안고는 깊고 진한 키스를 의도적으로 시도했다.
이곳이 직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주위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궈얀은 겉으로는 싫다고 손사래를 치다가 그가 키스를 시도하자 적극 호응하면서 차 안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적당히 키스만 하고 끝내려고 했던 전철민은 궈얀이 육중한 체중을 앞세워 힘껏 밀고 들어오자 어떻게든 넘어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하지만 불도저처럼 강력하게 밀어 대는 궈얀의 괴력을 버티지 못하고 곧 무너지듯 차 안으로 쓰러졌다.
반면 잔뜩 몸이 달아오른 궈얀은 잽싸게 차 문을 닫고는 뜨거운 숨을 연신 토해 내며 전철민의 혀와 입술을 탐닉했다. 동시에 두 손으로는 그의 몸 곳곳을 더듬었다.
"궈얀, 오늘 밤에 집으로 찾아갈게."
"오늘은 꼭 올 거지?"
"응."
"왜 요즘은 뜸했던 거야?"
"말했잖아, 바쁘다고."
"몇 시에 올 건데?"
"일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갈게."
"알았어."
"이것 받아."
"이게 뭔데?"
생각 이상의, 아니 원하지 않은 스킨십을 강제로 당한 전철민은 입가와 볼에 묻은 궈얀의 타액을 재빨리 닦아 내면서 까만 비닐 봉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작은 종이에 담긴 가루약은 내가 문자로 넣어 주는 손님의 음식에 집어넣어."
"뭔데?"
"복통과 설사를 유발시키는 약이야."
"손님의 테이블 번호를 알려 줄 거야?"
"응, 그리고 그자가 시킨 메뉴도 알려 줄게."
"내가 담당하는 찌개나 국이어야만 가능해."
"그래서 그런 메뉴로 시키라고 했어.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도 있을 거야."
"자기도 그 음식을 먹으려고?"
"나는 다른 일도 해야 해서 먹을 수가 없어."
"잘했어. 그런데 이건 뭐야?"
"그게 더 중요해."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오늘 시에서 위생 검열을 빙자해 가온누리의 장류와 양념류 그리고 소스류를 수거해 갈 거야."
"거기에 이걸 집어넣으라는 거야?"
"맞아. 할 수 있겠지?"
"내가 하지 않으면 자기는 한국으로 쫓겨나야 한다면서?"
"그래, 그러니까 자기가 반드시 성공해야 해."
"난 자기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고마워. 역시 내게는 자기밖에 없어."
"키스해 줘."
"또?"
"어서!"
"알았어, 사랑해."
"나도!"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나온 지훈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요리를 준비하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중국 매장은 수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매장답게 거대한 주방이 세 개나 있었는데, 궈얀은 탕이나 국을 끓이는 제2주방에 속해 있었다.
'시의 공무원들이 오기 전에 이걸 집어넣어야 해.'
전철민에게 받은 약품을 품 안에 넣고 있던 궈얀은 열심히 일을 하는 동료 셰프들의 눈치를 살피며 기회를 엿봤다.
"이런, 된장이 다 떨어진 것 같은데 누가 좀 떠 와."
"제가 갔다 올게요."
"내가 할 테니까 놔두세요."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된장이 떨어졌다는 말에 퍼뜩 몸을 돌린 궈얀은 먼저 일어선 후배 요리사를 제지하고는 자신이 나섰다.
'보는 사람이 없구나.'
가져간 빈 통에 된장을 담은 궈얀을 뚜껑을 닫기 전에 전철민에게 받은 약을 쏟아부었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마스터, 여기에 올려놓겠습니다."
"고마워. 아! 궈얀 씨, 찌개용 앙념장도 갖다 줄 수 있겠어?"
"그럼요."
전철민은 만일을 대비해서 약을 넉넉하게 준 상태였다. 그 때문에 아직도 약을 갖고 있던 궈얀은 찌개용 양념장에도 마찬가지로 문제의 약을 뿌렸다.
'시청 공무원들이 알아보도록 어떤 표시를 남기라고 했지.'
가온누리 주방에는 장류와 양념류가 곳곳에 있었다. 그러니 시청 공무원들이 들이닥쳐도 미리 표시를 남겨 놓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수거해 갈 수 있었다.
물론 시청 공무원과도 이미 약속이 된 상태였기에 굳이 약을 첨가하지 않아도 거짓 발표를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성분 검사에서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여러모로 좋았기에 전철민은 약을 첨가한 통에 표시를 남기라고 했다.
'사인펜이 어디 있었는데.'
다른 사람 모르게 약품을 첨가한 궈얀은 붉은색 사인펜을 가져와서 통에 하트 표시를 남기고는 전철민에게 이 사실을 문자로 통보했다.
궈얀의 문자를 받은 전철민은 기분이 좋아서 붉은색 하트가 잔뜩 섞여 있는 답장을 보내왔다.
-역시 우리 자기♡밖에 없다니까! 궈얀, 사랑해!
♡♡
-나두!
♡♡ 그런데 아까 말한 손님은 언제 오는 거야?
-지금 들어갈 거야. 이번에도 우리 자기♡♡만 믿어!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알면 잘해. 오늘 밤 기대하겠어.
-기대해.
♡♡♡!
일하는 틈틈이 전철민과 문자를 주고받았던 궈얀은 B홀의 67번 테이블에 문제의 손님이 자리를 잡았고 규아상과 초교탕을 시켰다는 문자를 받았다.
'초교탕에 장난을 치면 되겠구나.'
주문과 관련한 정보를 알아낸 궈얀은 미리부터 초교탕을 준비했고, 예정대로 주문이 들어오자 그걸 요리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손님들이 밀려드는 통에 모든 이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궈얀이 요리한 초교탕은 서비스 직원에 의해서 문제의 테이블로 옮겨졌다.
"전 과장님, 이제 어떡하면 됩니까?"
"어쩌기는요, 어서 드십시오."
"배가 많이 아프겠죠?"
"약간의 복통과 설사만 있으니까 마음 놓고 드세요."
"저만 먹습니까?"
"나는 시청 직원들도 만나야 해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잖아요?"
"그게 아니라 이 많은 사람 중에 나만 탈이 나면 가온누리 측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염씨 아저씨도 드세요."
전철민은 이 자리에 자신과 함께 일하는 세 명의 중국인 직원들을 데려왔다. 그런데 해당 직원이 지적한 내용처럼 혼자만 탈이 나면 가온누리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세 사람 모두에게 초교탕을 먹게 했다.
복통과 설사가 온다는 말에 먹기를 꺼리던 다른 두 명의 직원들은 소송에 들어가면 상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앞다퉈 초교탕을 먹기 시작했다.
"과장님, 우리도 소송을 걸 수 있는 거죠?"
"음식을 먹고 탈이 났는데 당연하지요. 아마 병원에 남은 초교탕을 갖고 가서 검사를 하면 식중독이라는 진단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초교탕은 일부러라도 남겨야겠네요."
"그래야죠."
"과장님, 얼마가 되었든 보상을 받게 되면 그 돈은 전부 우리 게 되는 것이죠?"
"물론입니다."
"약속하신 겁니다."
"보상금을 토해 내라는 말은 절대 안 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데 몸은 어때요?"
"살살 배가 아파 오는 것 같은데요?"
"벌써 약효가 오다니 너무 빠른 것 같은데, 기분 때문에 그런 것 아니에요?"
"약을 많이 탔는지 진짜로 배가 아픈데요."
"일단 버틸 때까지 버텨 봐요. 그래야 연기가 리얼하죠."
"화장실이 급해서 못 참겠습니다."
"다녀와요. 그리고 나는 먼저 나가서 병원과 공안에게 연락을 할 테니까 계획대로 잘하세요."
"염려 마십쇼."
초교탕을 먹지 않은 전철민은 시청의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그사이 남은 세 사람은 번갈아 가며 화장실을 가다가 복통이 제법 심해지자 계획대로 직원들을 불러서 난리를 쳤다.
"손님, 왜 그러십니까?"
"아이고, 배야!"
"손님, 괜찮으세요?"
"당신 눈에는 내가 괜찮아 보여?"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당신들, 음식을 어떻게 만든 거야? 아까까지는 괜찮았는데 여기서 음식을 먹은 이후부터서는 배가 아파 죽겠잖아."
"죄……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하다고 될 일이야?"
"이봐, 그렇게 멍청하게 있지 말고 책임자 불러."
"당신들, 내가 이대로 넘어갈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전철민의 사주를 받은 중국인 직원들은 배를 움켜잡으며 복통을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주위의 손님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은 당연했고 이 사실은 주방에 있던 지훈에게도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