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화 (3/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자라난 샤크론이 너무 대견했다고나 할까?

요즘 들어 부쩍 컸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유모였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바로 지금, 숨겨둔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샤크론. 만약 내가 없더라도 이제는 세상을 헤쳐 나갈 준비가 된 거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어머니?”

뜬금없는 유모의 질문에 샤크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느닷없이 세상을 헤쳐 나갈 준비가 되었냐고 묻다니. 꼭 이별을 앞두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전에 하나 물을 게 있다. 샤크론은 그 동안 검 수련만 해왔잖아. 그런데 혹시 몸에서 어떤 기운이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 해 본 적 없니?”

유모가 묻는 것은 어둠의 마나가 아직도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비록 유모는 마법을 쓰지는 못했지만, 모셨던 사람이 마법사였던 만큼 기초 상식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방대한 힘이 샤크론의 몸으로 들어갔는데, 혹시나 느끼지 못했다면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었다. 세월과 함께 마나가 계속해서 흩어졌거나, 아니면 샤크론의 몸이 담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방대하여 느끼지 못했거나.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샤크론이 마법에 관련 된 지식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상, 못 느꼈을 공산이 더 컸다.

“글쎄요. 이따금씩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것 같다는 기분을 느끼기는 해요. 하지만 이게 무슨 기운 같지는 않았어요. 그냥 소름끼치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렇구나… 어쨌든 샤크론. 오늘 수련 계획은 잠시 미루고, 에미를 따라오거라. 특별히 전해줄 게 있단다. 계속 날을 미루어왔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전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평소와는 너무 달라 보이는 모습에 샤크론은 지레 짐작만 하고 있었다. 혹시 어제 자신이 산에 올라, 수련한답시고 토끼들을 잡았던 게 문제가 되지 않았나 했다. 뒷산의 흑토끼들은 두 블럭 옆에 사는 에르넨코 씨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일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적어도 샤크론은 5시간 이상 야단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유모의 잔소리였기 때문이다.

[철컥. 철컥. 끼이익]

“어머니. 여긴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창고잖아요. 여기에는 왜…?”

유모가 간 곳은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창고였다. 큰 자물쇠로 꼭꼭 채워놓은 이 창고는 17년의 세월을 보여주듯, 문과 자물쇠 모두 붉게 녹이 슬어 있었다.

“따라오거라. 이야기는 들어가서 해줄 거야.”

유모의 말에 샤크론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평소 같지 않았다. 그동안 무언가를 숨겨왔던 것처럼, 그녀의 모습은 조심스러워 보였다.

샤크론도 눈치가 있는 만큼 그런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단순히 무언가를 보관하는 곳이라 여겼던 샤크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들어선 창고 안은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었다. 외형만 창고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 용도는 지하로 향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지하를 향해 사선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샤크론은 말없이 유모를 따라갔다.

17년 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계단 층층마다 먼지가 수북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희뿌연 먼지가 일었다.

“너무 어두워요. 앞이 잘 보이지 않아요, 어머니.”

“그래. 잠시만 기다리거라.”

점점 들어오는 태양빛이 줄어들면서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모는 벽을 더듬더니, 알 수 없는 문자가 적힌 돌을 쓱쓱 문질렀다.

[그르르륵]

벽돌이 서로 벌어지면서 내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주먹만한 구슬이 악마상의 손에 들려, 하나 둘 틈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나올 당시에는 매우 희미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악마상의 구슬에서 오렌지 빛이 일었다.

마치 때를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악마상에 새겨진 두 눈은 빛에 반사되어 광채를 발했다.

“자, 가자. 아직 조금 더 가야한다.”

“어머니. 대체 이것들이 다 뭐죠?”

“조급해할 것 없단다, 샤크론. 일단은 이 어미만 따라오려무나.”

걸어왔던 것보다 다섯 배는 넘게 걷고 나서야, 샤크론은 탁 트인 공간에 도착했다. 마을의 소광장만큼이나 꽤 큰 곳이었다. 내부는 한 걸음의 거리마다 악마상의 구슬이 빛을 내고 있었는데, 그 광채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어두운 주변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매우 밝은 빛이었다.

“굉장해요… 이런 게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무엇부터 너에게 말해주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우선 이것부터 읽어 보거라. 17년 전, 샤크론의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편지란다.”

“어머니. 돌아가신 부모님이라니요? 제 앞에 계시잖아요?”

“편지를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의문에 꼬리를 무는 유모의 말에 샤크론은 혼란스러웠다. 갑작스레 17년 전의 부모님이 남긴 편지라니. 17년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알지도, 듣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샤크론은 조심스레 유모에게 편지를 넘겨받았다. 편지의 몇몇 부분이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읽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과연 무엇일까… 심각한 유모의 표정으로 볼 때, 단순한 내용은 아닌 듯 싶었다.

샤크론에게 남기는 편지

이 편지를 볼 때면, 이미 우린 세상에 없을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지 않으려 하겠지만, 엄마와 아빠를 볼 수는 없겠지.

아들아. 너는 흑마법사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오르네스 가문의 일곱 번째 독자란다.

너를 낳기 전, 신탁에서는 세상을 뒤흔들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영웅이라고 했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걸을 거라고 했단다.

우리 오르네스 가문은 예로부터 마법사 집안이었던 터라, 이 신탁을 듣고 섭섭해했지. 하지만 역대 자손들의 신탁 중에 가장 긍정적인 신탁을 받은 건, 우리 샤크론 뿐이었어.

나머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신탁이 내렸었고 말이야. 샤크론은 잘 모르겠지만, 널 제외한 모든 형제들은 어린 나이에 죽었단다.

이 엄마와 아빠는 그런 너를 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어. 그래서 흑마법사 연합을 맺는 한편, 미래를 뒷받침해 줄 동료들도 모았지.

그러나 일은 결국 터지고 말았구나. 연합군이 흑마법사 토벌군을 일으키고, 각지의 흑마법사들을 모두 죽이고 화형시키기 시작했어.

차마 동료들을 버리고 달아날 수는 없기에 우리는 이 마을에 남을 생각이란다. 그래도 한 때 연합의 지휘를 맡았던 만큼, 쉽게 물러설 수는 없어.

그렇지만… 우린 알고 있단다. 결국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임을. 이미 사방이 막혀, 나갈 틈 조차 없더구나.

이제 신탁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오르네스 가문은 토벌군의 추격을 받고 있고, 다른 흑마법사 가문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마지막 남은 희망은 너 뿐이다. 샤크론이 토벌군의 흑마법사 명단에 오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니까.

샤크론. 만약을 위해 준비해왔던 마지막 마법을 전해주고, 우린 마지막을 맞으려 한다. 성공한다면, 다시 말해 지금 살아있다면 우리가 가졌던 8서클의 마나와 마왕과의 계약을 모두 넘겨받은 거야. 명심해라.

성장할 때 까지, 유모가 잘 보살펴 줄 테니 걱정하진 않는단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네가 오르네스 가문의 후손이라는 걸 잊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야.

넌 오르네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자, 마지막 흑마법사가 될 지도 모른다. 토벌군의 깃발 아래 수 많은 흑마법사가 죽어나가는 만큼,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그런 만큼! 잊지… 말거라. 넌 샤크론 오르네스라는 것을.

이 편지를 다 읽는 대로 유모의 지시를 따르거라. 유모에게 모든 것을 전해주었으니, 이제 남은 말은 유모가 대신 해 줄 테니까.

샤크론, 사랑한다. 네가 있어 인생의 마지막이 행복하단다. 새근새근 잠든 샤크론의 모습을 보니, 조금은 평안해지는구나.

샤크론. 언젠가… 어떻게든…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샤크론을 죽어서까지도 사랑할 엄마와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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