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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흑마법사-4화 (4/166)

# 002. 나의 길 ( My Way )

편지를 다 읽고 난 샤크론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억에 남지 않아 자신은 알지 못했던 친부모의 마지막 편지.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편지에 적힌 글들은 절박했던 마지막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마치 편지를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이 투영되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건 카렌과 메르헨이 마지막으로 남긴 인비젼(Envision 그려냄) 마법의 산물이었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과거의 상황 속에서 자신은 갓 태어난 애기였고, 두 사람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어머니.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

인비젼 마법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그 당시의 모습에 샤크론은 계속해서 눈물을 훔쳤다. 차마 그 안에 비치는 부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단다. 모두 사실이야. 자, 그 동안 간직했던 이 반지도 주어야 겠구나. 두 분이 남긴 마지막 선물, 마왕의 반지.”

“이, 이건…!”

마왕의 반지는 고서클의 흑마법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희귀한 것들 중에 하나이다. 서대륙에는 예로부터 흑마법사의 3대 신성물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나이블로의 소드(Naivloe's Sword). 파괴의 스켈레톤. 그리고 마왕의 반지였다.

이 세 가지 신성물들은 비밀스러운 장소에 봉인되어, 수많은 마물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떡하니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17년 전 엄청난 흑마법사 토벌의 바람이 불었던 원인 중 하나야. 제국에서는 마물들을 모두 물리치고, 신성물을 손에 넣은 두 분을 없애려고 했던 게다. 신성물 세 개가 한 곳에 모이게 되는 날, 세상에 파괴의 기운이 넘쳐나게 될 거라고 믿었으니까.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두 분이 쉽게 목숨을 잃지도 않았을 거야.”

“아아… 그런데 왜 부모님이 돌아가신거죠?”

“그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 때문에… 8서클의 마법사이시면서도 두 분은 도망치지 않으셨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지.”

“그 사람이 누군가요?”

갈수록 늘어나는 의문에 샤크론은 머리가 아파왔다. 자신의 부모가 흑마법사 연합을 이끌었던 맹주이자, 8서클의 흑마법사 였다니. 사람들을 통해 가끔씩 돌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겠거니 했었지 자신의 부모였던 줄은 몰랐던 것이다.

“유모에 불과한 내가 그것까지 어찌 알겠니.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흑마법사 토벌의 중심에 그 사람과 현재 제국의 황제인 네오시오 3세가 있었다는 것뿐이란다.”

“네오시오 3세….”

“샤크론. 더 이상 해줄 말이라고는 이 안에서 부모님의 흔적을 찾으라는 것 밖에 없단다. 이곳은 부모님의 지식과 기술이 모두 남아있는 서고니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서고 맨 오른쪽 상단의 붉은 책 두 권은 인비젼 마법이 걸려있는 책이니, 부모님의 기억을 되짚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유모의 말처럼, 더 이상 해줄 말은 그것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샤크론 자신이 어떻게 해나갈지를 결정하는 것뿐.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인지는 오로지 샤크론에게 달린 일이었다.

Chapter 2

메르헨과 카렌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서고 안에서, 샤크론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몸속의 마나를 느끼는 일이었다. 그는 흑마법사의 후손이었지만 한 번도 마나의 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몸 자체가 검술에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나를 운용해 볼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덕분에 엄청난 마나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자각은 1서클의 수준에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마나의 성질과 관계없이 모든 마나는 온몸을 타고 순환한다. 그 순환의 고리를 느끼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집중. 무념에 빠져 자신의 몸을 탐색할 때, 비로소 마나의 힘을 느낄 수 있다.

“대체 마나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정말로 내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책에 적힌 마법 기초편을 읽던 샤크론은 문득 인비젼 마법이 걸린 붉은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책만 펼치면 궁금했던 부모님의 과거를 모두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지만 샤크론은 그런 마음을 계속해서 억눌렀다. 자신이 진정한 흑마법사의 길을 찾았을 때, 자신있게 펴 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두 눈을 감은 샤크론은 조용히 무념의 세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어둠의 심연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배경에 빨려 들어가듯 정신을 놓고, 온몸의 힘을 쭉 뺐다. 이것이 바로 잡념을 없애는 과정이었다.

“무념… 무상… 주변의 흐름에 순응하면….”

집중. 자신을 감싸버릴 것 같은 어둠으로의 집중.

얼마 쯤 흘렀을까, 샤크론은 자신의 몸속에서 물처럼 흐르고 있는 어떤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살아있는 기운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예전에 느꼈던 소름끼치는 기분과는 달리, 매우 편안하고도 안정적인 섬세한 기운이었다. 다만 그 느낌이 전보다 명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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