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5화 (5/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생각보다 마나를 느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샤크론이 가지고 있는 마나 자체가 워낙 많았던 데다가, 전에 어렴풋이 느껴봤었던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샤크론이 깨달은 체감 마나는 겨우 1서클 정도, 전체의 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자각이었지만, 샤크론은 그것으로도 만족했다.

이렇게 해서 마나에 대한 느낌을 정리한 샤크론은 다른 것을 볼 요량에, 서고에서 다른 책을 꺼내들었다.

적갈색의 소가죽을 굵은 줄로 매어 깔끔하게 처리한 책을 펴자, 맨 앞 장에 ‘마법 교본’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게다가 목차에서는 쪽수를 분류하고, 서클(Circle) 단위로 내용을 나누어 놓았다.

샤크론은 1서클이라고 적힌 목차의 바로 다음 장을 폈다.

파이어 볼. 1서클의 마법으로 수식은 매우 간단하다. 에반의 제 1원리에 따라 수식 계산을 유도하면, 단순한 호명만으로도 마법은 발동될 수 있다. 간단한만큼, 설명은 생략.

에반의 원리란, 흑마법계열의 마법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확립한 에반 클리프의 이름에서 따온 원리였다. 그는 백마법과 운용하는 마나가 다른 흑마법의 특성상, 어둠의 기운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수식이 따로 있을 것이라 믿었다.

에반의 원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기존의 흑마법사들은 백마법의 수식을 따라 흑마법을 전개했었다.

에반은 그것을 보고 비효율적인 마법 시전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위력을 반감시키는 행동이었다.

마치 손을 이용해 삽을 잡고 땅을 파면 되는 것을 두 손만으로 직접 땅을 파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에반은 평생을 투자해서 흑마법의 이상적인 활용 체계를 확립했다. 더불어 저서클의 마법의 경우, 쉽게 수식을 유도할 수 있는 에반의 제 1원리까지 발견했다.

친절하게도 에반의 제 1원리는 바로 아래에 간단한 공식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마법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원리 이해는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제 1원리는 그 공식이 쉬워, 샤크론도 쉽게 외울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상의 서클부터 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도록 몇 십 개나 늘어서있는 공식! 특히 9서클에 관련 된 쪽수를 폈을 때, 샤크론은 경악하고 말았다. 종이 전면이 공식으로만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샤크론은 부모님의 과거를 조심스레 밟아 나가기 시작했다.

Chapter 3

흑마법사. 마왕과의 계약에 의해 힘을 부여받는 존재. 그래서 흑마법사들은 본의 아니게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첫 번째가 바로 온갖 사술을 행하는 악의 화신이라는 인식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잘못 된 인식이었다.

간혹 그런 미치광이 흑마법사가 나타나 제국 회의의 심판을 받고 화형이 되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에 한정 된 얘기였다.

오히려 통계적으로 따지면 노예나 하층민을 상대로 한 마법실험이나 검사는 백마법 계열의 궁중마법사들이 주로 행했다.

정작 오해받는 흑마법사는 그런 행동을 꺼려하고, 백마법사들은 즐겼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는 잘못 된 판단에 이끌려 그 분별성을 잃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흑마법사들이 세상의 마나와 공기를 더럽힌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잘못 된 인식 중 하나였다.

오히려 흑마법사들은 세상을 떠도는 어둠의 마나를 따로 취해 활용하거나 저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공기 중에 떠도는 어둠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마왕과의 계약에 의해 부여받는 마나가 부족할 때, 흑마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마나 저장법이었다. 소위 어둠의 마나를 백마법으로 강제 제거한다는 ‘마나 정화’와 비슷한 원리였다.

하지만 선입견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 사람들은 아무리 흑마법사들이 해명을 해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더불어 황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세력 강화를 위해 흑마법사들을 탄압했다.

제국력 27년, 10년 간의 대토벌로 흑마법사 2796명, 흑기사 7명 사망.

제국력 98년, 4개국의 제국군이 흑마법의 본고장 ‘티그라스’를 기습, 서고가 불타 흑마법 관련 서적의 70%가 소실. 민간인 1598명 사망.

제국력 144년, 흑마법사들의 주요 거주 도시 4곳을 초토화, 민간인을 포함해 12006명 사망.

제국력 200년, 연합군의 전대륙적인 토벌로 엄청난 인명피해 발생. 민간인을 포함하여 12만이 넘는 인원이 사망. 이것으로 목표했던 흑마법사들을 모두 처단했고, 공식적으로 집계 된 흑마법사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이것이 흑마법사가 걸어온 수난의 역사였다.

이런 탄압의 과정을 통해 흑마법사들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급기야 서류상으로는 완전히 씨가 마른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물론 살아남은 흑마법사 일부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명단에 이름이 적히지 않을 만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적이 없는 경우였다.

그런 그들이 주변의 경계가 삼엄해지면 절대로 다시 나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샤크론과 그 사람뿐이다.

왜 흑마법사들은 말도 되지 않는 편견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걸까…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쉬울 뿐.

199년 2월 1일

마왕은 우리에게 8서클이라는 꿈의 힘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놈은 9서클. 동지들과 함께라면 어떻게든 싸워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황이 좋지 않다.

내부 분열인가… 동료들이 떠나려 한다.

199년 7월 19일

아내의 배가 불러온다. 아들이면 샤크론이라고 짓고, 딸이면 네르바라고 지을 생각이다.

전에 없이 주변은 매우 한산하다. 관리들도 우리 연합을 상대로는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 때로는 친절을 베풀기도 하고…

달라진 그들의 모습은 매우 반갑다. 정말 우리를 이해하기 시작한 걸까?

199년 12월 23일

메르헨이 남긴 일기에는 토벌이 일어나기 보름 전까지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샤크론이 본 내용들 중에서 특별한 것들만 적어 놓은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