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6화 (6/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샤크론은 근 10년 가까이 적어온 메르헨의 일기를 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느껴지지 않지만 자신의 몸속에는 마나 체인지로 인해 넘어 온 부모의 마나가 흐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유명한 흑마법사 가문인 오르네스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과 부모인 메르헨과 카렌은 제국 전체의 흑마법사를 아우를 정도의 힘을 가졌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로 불리는 사람보다 일찍 8서클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그 힘만큼이나 깨달음도 빨랐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샤크론은 일기를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만질 수도 없는 볼 수도 없는 부모의 그림자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었다.

따스한 정 한 번도 그들에게 느낀 것은 없지만 가슴 속의 심장은 계속해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온 몸으로 뿜어냈다. 알아야 한다고, 찾아야 한다고…

마나의 흐름을 느낀 것 까지는 좋았다. 답답한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나열 된 공식들이었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얼마든지 8서클의 마법을 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수식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파이어 볼조차 캐스팅하기가 힘든 실정이었다.

힘이 있는데 힘이 없다.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좋아… 파이어 볼!”

[팟!]

샤크론의 손바닥 위로 파이어 볼의 수인이 맺혔다. 붉은 색의 작은 점이었던 수인은 조금씩 마나를 공급받으며 그 크기를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캐스팅이었다.

“좋았어. 다시!”

캐스팅 상태에서 마나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자, 불이 희미해지며 수인이 사라졌다. 서재 안은 타기 좋은 종이 책들이 가득한 곳이라, 잘못 시전 했다가는 벽은 물론이고 책을 통째로 태워먹기에 딱 좋았다.

이렇게 책을 읽고, 깨닫고 연습하는 일과가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아침에는 유모를 위해 장작을 캐고, 검술을 수련했으며, 밤에는 어김없이 서재 안으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더불어 틈틈이 파이어 볼을 수련했다.

아는 것이 파이어 볼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나중에 요긴하게 쓸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파이어 볼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구체의 크기가 커져갔고, 때로는 서재 안을 모두 밝힐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시간은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서고 안에 남겨진 부모의 유물들을 보면서 샤크론은 흑마법사로서의 자신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오르네스 가문의 일곱 번 째 독자, 흑마법사 연합을 이끌었던 맹주의 아들.

인비젼 마법이 걸린 책을 본 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겠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샤크론은 계속해서 다짐하며, 자신이 직접 깨닫고 마음속에 각인시켜가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샤크론의 굳은 마음도 조금씩 아파왔다.

부모의 죽음이 슬픈 것도,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보살펴 준, 유모를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 한 쪽에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이 상태로 샤크론이 더 이상의 발전을 이룰 수는 없었다. 유모가 얼마 전부터 강조해 왔던 대로, 더 많은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수도로 가야 한다.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그 곳으로 말이다.

“어머니. 이젠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친부모님이 걸어오셨던 길, 그리고 앞으로 제가 걸어 나가야 할 길.”

“장하구나. 이 에미는 샤크론이 그렇게 변할 날만을 기다려왔단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검술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지만,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수 많은 수식들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마법 학교에 입학할 생각인데… 그렇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카다르 제국에 위치한 마법 학교는 100군데 정도 였다. A급으로 분류되는 왕실 마법 학교가 네 곳. B급의 지방 마법 학교 마흔 여섯 곳. C급의 사설 마법 학교가 쉰 곳이었다.

이 중에서 샤크론이 가고자 하는 학교는 바로 왕실 마법 학교였다.

사설 마법 학교의 경우 왜곡된 가르침을 전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지방 마법 학교의 경우에는 왕실로부터 차별을 받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마법 학교를 사칭하는 곳이 너무 많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어느 마법 학교를 마음에 두고 있니?”

“왕실 마법 학교요. 수도 카다르에 있는 카다르 마법 학교에 들어가서, 마법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기초도 모르고 있는 저에게, 혼자서 모든 걸 이해한다는 것은 시간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일 거에요.”

“하지만 걱정이 되는구나. 이 에미로 인해서 평민으로 분류되어 있는 샤크론애게는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두 분만 살아계셨다면, 남부럽지 않게 살았을 것을…. 에미 때문에 괜한 고생을 하게 되는 구나.”

유모가 눈시울을 붉혔다. 그녀의 말처럼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굳이 학교를 갈 필요도 없었으리라. 어쩌면 그들보다 더 빠른 성취를 이루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지금, 마법의 기초조차 배우지 못해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샤크론을 보고, 고서클의 마법을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일 수 밖에 없었다.

“절차는 저도 잘 알아요. 평민이 마법 학교의 학생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황궁의 근위기사는 되어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말이에요.”

2천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카다르 제국에 단 5천명만 존재한다는 근위기사.

확률적으로도 들어가기 쉽지 않은 그 자리에 샤크론은 반드시 올라야 했다. 그래야 정당한 자격을 부여받고 마법 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모든 기반이 사라졌기에 모든 건 샤크론의 몫이 될 거야. 냉정하게 말해서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이 에미는 생각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힘내라는 말 밖에는 없구나.”

“명심하고 있어요.”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어서 떠나거라. 오늘 중으로 필요한 책들과 부모님의 유품들을 챙기고, 다시 나에게 오너라. 사랑하는 우리 샤크론, 떠나기 전에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번 차려줘야지.”

“…….”

샤크론의 마음에서 갈등이 일었다. 아끼고 보살펴주신 유모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 될 텐데. 이게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을텐데.

만감이 교차했다.

친부모의 복수를 위해서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 그러나 유모를 두고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야속한 운명. 샤크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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