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7화 (7/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중천에 떠 있었던 태양도 어느새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서 산란 된 붉은빛이 짙은 노을을 만들어냈고, 이에 뭉게구름까지 합쳐 절경을 자아냈다.

“어머니. 떠나겠어요. 부모님이 남겨두신 책 다섯 권, 반지면 충분해요. 더 이상은 저에게 의미 없는 것들일 뿐.”

“잘 선택했구나, 샤크론. 암, 당연히 그래야지. 오르네스 가문의 후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인정에 이끌려 대사를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유모라는 천한 직업으로 대마법사분의 자제를 이렇게 키워온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구나!”

“어머니!”

말이 끝나고, 유모는 샤크론을 향해 부드럽게 손짓을 하며 마당을 가리켰다. 언제 준비해 놓은 것일까. 마당에 놓인 식탁 위에는 그 동안 한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진귀한 음식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이게 우리가 나누는 마지막 식사가 되겠지. 하지만 난 전혀 섭섭하지 않아. 단지, 샤크론이 이 에미를 기억해주길 바랄뿐이란다… 그러면 더 이상 소원이 없어.”

“어머니… 죄송해요….”

음식을 채 입에 넣기도 전에 샤크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 누가 그 마음을 알겠는가. 낳지는 않았어도 애지중지 길러 온 자식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한다는 것을.

“자, 먹자꾸나. 샤크론, 강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복수의 고리에 이끌려 사악한 흑마법사가 되어선 안 돼. 그건 하늘에서 샤크론을 바라보고 계실 부모님도 원하지 않으실 테니까.”

“네, 어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도무지 음식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녀 역시, 샤크론처럼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샤크론… 잘 가거라. 네가 어디에 있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언제나 사랑할 거란다. 사랑하는 샤크론! 꼭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붉은 노을이 유난히도 타올랐던 그 날. 제국력 218년의 어느 시원한 가을 날 오후였다.

Chapter 4

제국, 아니 서대륙의 마검사.

제국의 기사, 마법사 협회에서 정하길 ‘서대륙의 마검사는 빛이 투과되지 않을 정도의 진한 광채의 오러와 7서클 이상의 마법, 그리고 검술서와 마법서에 조예가 깊은 자로 규정한다.’라 했다.

이런 조건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마검사가 되길 포기했다.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기사로서의 과정을 최대한 빨리 밟는다고 해도 소드 마스터가 되는 것이 요원할 판이다. 그런데 그것에 7서클의 마나까지 요구하니 도무지 가능할래야 가능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라, 나이가 지긋하게 든 7서클의 마법사가 검술을 익힌다는 건, 몸이 따라주지 않아 무리였다.

제국 고고학 협회의 기록을 봐도 ‘역대 다섯의 마검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수련을 했다. 게다가 그들은 태어날 적부터 근골과 무골이 발달해 있었고, 마나를 감각적으로 느낄 줄 아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었다.’ 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렇게 마검사는 선천적으로 타고 난 체질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절정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샤크론이 꿈꾸고 있는 기사로서의 길, 더 나아가 마검사로서의 길운 충분히 가능 할 수 있었다. 적어도 마나 서클에 있어서는 걱정이 없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본인이 마나를 확실히 자각하지 못하는 점과 무지에 가까운 마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샤크론이 살던 마을 베토스에서 카다르까지 가는데에는 일주일이 걸렸다. 도중에 팔란치아 산맥이 있어 우회해야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샤크론이 걸어가길 고집했기 때문이다.

5실버 정도면 충분히 마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샤크론은 근력 강화의 일환으로 절대 마차를 타지 않았다. 걸어서 가면 신체적, 금전적으로도 득이 되는 것을 굳이 돈을 주면서 없애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대로를 따라 카다르를 향해 걸었다.

그 동안 샤크론은 틈틈이 책을 읽으며, 마법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갔다. 특히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시전했다는 마나 체인지에 대해서 유심히 살폈다.

흑마법 계열의 가문 모두가 마나 체인지에 대해서는 경험한 바가 없다. 이는 남에게 마나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순수한 마나만을 빼앗아 올 수도 있는 이중성의 마법이다.

단, 문제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이 마법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마나 체인지를 시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가장 큰 부작용은 힘의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람도 이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

언젠가 우리 부부가 이 마법을 쓰게 될 날도 올 것이다. 다만 결과를 알더라도 알리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

명심할 것. 마나 체인지의 시전이 자유로운 마법사가 등장한다면, 그는 마왕을 능가하는 마법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어둠의 마나들이 결집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력 197년 2월 4일 씀.

“결국 이 비밀을 풀 수 있는 마지막 열쇠는 내가 되는 건가?”

200년에 벌어진 대학살로 종적을 완전히 감춰버린 흑마법사들. 토벌군이 남긴 보고서에 의하면 수 십만에 달하는 관련자들과 흑마법사들이 죽었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명단에 나와 있는 흑마법사 전원을 처형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 샤크론이 마지막 흑마법사일 수도 있었다. 기록상으로 샤크론은 단순한 평민의 신분일 뿐이지만 말이다.

물론 어디엔가 생존자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과의 공존을 거부한, 음지의 사람들일 터였다.

“어이! 거기 자네. 통행증을 보여주겠나?”

어느 새 도착한 곳은 수도 카다르의 제1 검문소였다.

카다르의 성은 전체가 2중 구조로 되어 있어, 검문소도 2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첫 번째 검문소에서는 통행증 검사를 하고, 두번째 검문소에서는 사교 집단의 일원인가 등을 대조하는 수배자 판별 작업을 했다.

특히 최근 들어 제기되기 시작한 흑마법사 생존론 때문이었다.

얼마 전, 제국의 국방상은 토벌 당시 제거한 흑마법사를 제외하고도 수 천 이상의 흑마법사들이 지하에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로 신빙성이 꽤 높다고 말했던 것이다.

흑마법사라면 치를 떠는 게 카다르 제국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처해서 검문소 설치를 요구했고, 이렇게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저기 한 가지 여쭤볼 것이 있는데요.”

“뭔가? 무엇이든 물어보게. 설마 수상한 부탁은 아니겠지?”

금발의 경비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술과 고기, 여자에 쩔어 빠진 지방의 비실비실한 경비병과 달리, 이 사람은 건장한 체격인데다가 타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예. 슈타인 기사단이라는 곳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몰라서요.”

샤크론이 내민 통행증을 받아 본 경비병은 면도로 짧아진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일단 통행증에 이상은 없군. 보아하니 평민인 것 같은데,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잘 아나? 게다가 슈타인 기사단의 사단 서열(일종의 등급)이 낮긴 하지만, 그래도 제국에서 다섯 번째로 꼽는 기사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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