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2. 나의 길 ( My Way )
Chapter 5
“단장님! 아무리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오크를 호위하다니요!”
“맞습니다. 오크들과 협력관계에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그딴 일 하려고 기사단에 들어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국립 기사단에서 처리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제로스와 샤크론이 단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끄러운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기사들의 말과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오크의 호위병을 뽑는 문제 때문인 듯 했다.
사람들, 특히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들은 오크를 싫어했다.
오크는 호전적인 종족이며, 패륜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인간들을 잡아먹는다. 게다가 위생의 개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족속이라, 세균과 질병의 주범이라 가까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왜곡된 지식이었다.
특히 기사들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많았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오크와 인간은 접경지의 영토를 두고 다투는 적대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 세대에 해당하는 스승들이 오크를 호평할 리가 없었다.
결국 전쟁 세대의 경험자라 할 수 있는 스승들은 제자에게 오크의 부정적인 면만을 가르쳤고, 그래서 기사들 사이에는 오크와의 접촉을 꺼리는 풍토가 생겨났다. 이것은 일반인들의 기피 수준이 아닌, 경멸이었다.
“슈타인. 대체 무슨 일이야? 기사들이 이렇게 반발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데?”
“얼마 전 오크 족의 대표 하나가 수도를 방문했어. 오크와 인간들 사이의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의미에서였지.”
“그건 나도 알아. 매우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협정이 맺어졌다면서.”
“그래. 협정이 맺어지고, 이제 돌아가려 하는데 호위 기사를 하나 붙여달라는 거야. 그러니까 상부에선 수도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우리 기사단을 지목했겠지.”
슈타인은 이것저것 모든 게 불만이었다. 잡다한 일이 생기면, 그런 일들은 모두 슈타인 기사단에만 맡겨졌다.
그것은 바로 슈타인 기사단과 카다르 기사단의 차이점 때문이었다.
서열 1위의 기사단인 카다르 기사단은 모든 기사가 궁중 마법사와 함께 수련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슈타인 기사단은 수련 집중은커녕 때로는 치안관리, 관료 호위 등 실제의 기사단과는 거리가 먼일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는 당연한 이유가 담긴 내막이 있다.
우선 카다르 기사단은 국비로 모든 운영자금을 대신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지원 속에 기사단을 운영한다는 소리다. 이것은 국립으로 건설 된 나머지 세 개의 기사단도 해당 된다.
하지만 슈타인 기사단의 경우, 사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의 일 할도 채 되지 않은 지원만이 이루어진다. 그 지원금으로는 제련비나 기사 개개인의 사비를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운영하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슈타인 기사단은 재정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잡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남들이 꺼리는 일을 맡게 되었고, 급기야 용병대 관리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
슈타인 기사단의 이름으로 의뢰를 받고, 용병들에게 의뢰서를 넘기면서 중간의 중개료를 챙기는 것이다. 기사란 돈에 초탈해야 하는 법이지만, 어쩔 수 없는 지원금의 불균형은 결국 슈타인 기사단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기사단의 이름값이 그러했다.
제국의 이름을 딴 기사단과 일개 기사의 이름을 딴 기사단은 선호도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슈타인이 이름이 없는 기사는 절대 아니다.
그는 아직도 진한 오러를 뿜을 줄 아는 소드 마스터이고, 전쟁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는 역전의 용장이다. 다만 카다르 기사단에 그를 능가하는 기사들이 수두룩하다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명성이 있는 소드 마스터가 기사단장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카다르 기사단에 비해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
“골치 아프겠군.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지금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건가?”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온 거야?”
슈타인의 말에 제로스는 대답 대신, 입술을 삐죽 내밀어 샤크론을 가리켰다. 그리고 샤크론의 등을 탁 쳤다.
“기사단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비록 평민이라는 신분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모두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저를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주십시오.”
샤크론의 말에 슈타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슈타인 기사단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언제부터 평민들까지 넘보는 그런 기사단이 되었단 말인가?
기껏해야 농기구나 쥐어봤을까 할 정도의 수준일 터였다.
“슈타인 기사단이라고 아무나 받는 곳이 아니야! 내 이름이 걸린 기사단을 그렇게 낮게 평가하는 건가? 자네 같은 평민들 다 받아주었으면, 일찌감치 슈타인 기사단도 떠돌이 용병대나 되었겠지! 어디 실력도 되지 않는 것이 와서….”
슈타인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버럭 화를 냈다.
“그렇군요.”
그러나 샤크론은 별 반응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슈타인의 고함에 기가 눌려 겁을 먹을 만도 했지만, 오히려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제도상으로는 평민도 지원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능력이 의심스러우시다면, 몇 가지 과제를 내주셔도 좋습니다. 거절하시면 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면 되겠지요.”
“뭐, 뭐라고!”
“슈타인. 한 방 먹었구만? 이 사람, 생각보다 당돌한 젊은이야.”
샤크론의 당당한 모습에 슈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대로 제도에 따른다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괜히 이것을 거부했다가 밀고라도 들어가게 되면, ‘모든 제국의 국민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한다.’ 라는 국법을 어긴 죄로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기가 센 녀석이군. 그냥 얼쩡거리는 놈은 아닌 것 같고… 어디 보자. 어떤 일을 시켜야 단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슈타인이 화를 내긴 했어도,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당당하게 나오는 샤크론의 모습에 제로스처럼 호기심이 들었을 뿐이다.
“아, 그렇지! 좋아. 자네의 자질을 평가할 좋은 방법이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 슈타인은 손으로 무엇인가를 가리켰다. 기상천외한 생각이라도 되는지 슈타인의 얼굴에 화색까지 돌았다.
이윽고 샤크론의 고개가 돌아가는 순간, 그 이유가 밝혀졌다.
“저 분을 호위하면 되는 겁니까?”
“그래!”
샤크론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것처럼,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