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0화 (10/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자신 있나? 저 손님은 오크들 중에서도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 난 손님인데 말이야.”

슈타인의 얼굴이 더더욱 환하게 변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슈타인이 샤크론을 골탕 먹이려 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정작 당사자와 슈타인은 몰랐지만.

“문제없습니다. 목적지가 어디죠?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수도에서 북서쪽으로 보름 쯤 가면 나오는 패론 까지야. 패론까지 호위하면, 그 뒤는 그 쪽의 경비병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고.”

“네. 지금 당장 떠나겠습니다.”

오크라면 꺼릴 만도 하건만, 샤크론은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크에 대해 샤크론이 알고 있는 건 유모가 말해준 오크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오크는 순수하고 순박한 종족이다. 단, 인간들이 자신의 생활을 위협하면 그 때부터는 호전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샤크론은 이런 임무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게다가 패론은 북서쪽의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나오는 도시였다.

“좋아. 호위 및 기초 생활 경비로 5 골드를 주겠네. 도중에 도망 갈 생각은 하지도 마. 만약 그랬다가는 잡히자마자 즉결 처분을 받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는 대로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주시는 겁니다?”

“우선 다녀오고 나서 상의하자고. 평민이 기사단에 지원한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아서 말이야.”

슈타인은 오크 족 대표가 성격이 괴팍하고, 불평을 잘하기로 유명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만약에 호위를 마치고 왔다 해도 오크가 불편해 했을 것이라는 이유를 구실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샤크론은 뭐라고 변명도 해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될 터였다.

게다가 저 오크도 단 한명의 호위 기사만 필요하다고 하니, 더더욱 몰아붙이기 쉬울 가능성이 높았다. 오크는 자신을 귀빈으로 대접하는 게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샤크론. 내가 보장하겠네. 이 임무만 잘 수행하고 오면 슈타인은 기사단의 문을 활짝 열어 줄 거야. 명색이 기사단장인데 설마 내치기야 하겠어? 거짓말을 할 리는 더더욱 없지.”

“제로스! 가만히 있게. 이미 명령은 떨어졌어.”

제로스의 장난기 섞인 말에 슈타인은 재빨리 그의 옆구리를 툭 찔렀다. 하지만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알겠습니다. 성실하게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하하하. 샤크론, 잘 다녀와. 갔다 오는 대로 경비대에 자네 이름을 대고 날 찾는다 말하면, 금방 달려올 테니까.”

제로스의 말에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 샤크론은 부푼 희망을 가지고, 오크 호위 길에 나섰다. 호위 대상은 오크 족의 대표. 목적지는 패론이었다.

대로를 따라 걷다가 산 하나면 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슈타인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뿐이다.

Chapter 6

이렇게 해서 샤크론은 난생 처음 보는 오크와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것도 기사단에 지원하기 위한 절차의 과정으로 말이다.

상대는 단 한 명의 호위기사만을 원하는 괴짜오크. 예의상 귀빈대접을 받아 최소 백 명 이상의 기사가 호위해야 하지만, 그는 샤크론과의 동행을 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 하나와 오크 하나의 여행은 기묘한 동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가는 길은 무척이나 단조로웠다.

수도 근방의 도로 정비는 서대륙 최고라 자부하는 카다르 제국이다. 그렇다보니 패론까지의 길은 산을 타고 오르는 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잘 닦인 대로였다. 덕분에 하루의 일정은 걷고, 쉬고, 여관에서 묵는 게 전부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8일째, 드디어 말 한마디 않던 오크가 말문을 연 것은 다름 아닌 여관 안의 식당에서였다.

“취췩. 인간들은 오크를 싫어하던데… 자네는 나와 함께 가는 게 두렵지 않나?”

오크의 이름은 젠카라고 했다.

패론에서 좀 더 올라가면 나오는 가르시아 산맥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타란트 부족의 외교관이었다.

타란트 부족은 총 30만의 오크 전사들과 80만의 일반 구성원(비전투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불어 서대륙 내에 산재한 열일곱 개의 오크 부족 중에서 가장 강한 종족이다.

“두렵지 않습니다. 어차피 오크나 인간이나 매드노스 님의 창조물이지 않습니까? 생김새만 다를 뿐, 생각이나 행동은 다를 것이 없다고 보니까요.”

“취익. 인간들은 오크를 무시하지. 외교의 개념 따위는 없을 거라고 인간들은 말하지만, 오크라고 무식하게 전투만 하는 건 아냐. 필요하다면 인간은 오크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취익.”

젠카는 인간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배신을 서슴없이 일삼는 인간의 모습에서 실망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조화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모습에선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 젠카는 부족 내의 반대를 모두 잠재우고 인간과 협정을 맺었다. 상호 불가침, 상호 교류의 협정. 이는 카다르 제국이나 타란트 부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카다르 제국의 경우, 패론 일대의 주둔군 15만을 절반 이상 철수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타란트 부족도 쓸데없이 불어난 전사들의 규모를 줄여 생산 활동에 전념하게 할 수 있었다. 100여 년 전에 인간들로부터 자급자족의 원리를 터득한 타란트 부족이었으니, 일손은 많을수록 좋았다.

“어쨌든 모든 인간들이 다 배반의 족속이라고 오해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취익. 호위기사를 하나만 붙여달라고 한 건, 자네 같은 말동무가 필요해서 였어. 가는 길이 적적하진 않겠군. 취익.”

젠카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오크라는 이유로 말하기조차 꺼려하는 다른 놈들과 달리, 샤크론은 편하게 자신을 대했다. 그동안 느껴보기 힘들었던 생소한 친근감이었다.

“그런데 자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취익.”

젠카가 말을 이었다.

오크가 인간의 얼굴을 본다면 얼마나 봤으련만, 어색하지 않은 샤크론의 얼굴은 꼭 누구를 쏙 빼닮은 모습이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27년 전 마왕의 반지를 찾기 위해 가르시아 산맥을 방문했었던 흑마법사 부부와 닮은 듯 했다.

“하하하. 그럴리가요. 전 이번이 수도는 물론이고 패론 가는 길도 초행인데요.”

“그, 그런가? 하긴….”

젠카는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설마 흑마법사의 자손이겠거니 싶었다. 괜한 생각을 했다고 생각한 젠카는 샤크론과 함께 때마침 나온 음식을 먹기 위해 포크를 들었다.

“아, 이봐! 날 왜 이렇게 푸대접하는 거지? 나도 손님이야! 돈이 있단 말이다!”

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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