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1화 (11/166)

# 002. 나의 길 ( My Way )

젠카와 샤크론이 식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식당 내 분위기가 한 남자에 의해 싸늘해졌다.

괜찮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싶은 생각에 샤크론과 젠카는 말을 멈추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금발에 푸른 눈, 하얀 피부를 가진 귀공자 풍의 청년이었고, 한 명은 여관 주인이었다.

평복을 입고 있는 여관 주인과 대조적으로 청년은 금실을 수놓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있었다. 군데군데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 박힌 것으로 보아, 걸어 다니는 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제발 돌아가 주십시오. 괜한 사람들 겁줘서 내보내지 말란 말입니다!”

“황당해서 말이 다 안 나오네. 언제부터 인간이 드래곤을 두려워했다고… 드래곤 슬레이어니 뭐니 해서 드래곤 하트를 잘만 훔쳐가던데!”

“무슨 일입니까?”

샤크론은 호기심이 일었다. 마침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에게 눈빛으로 그 광경을 힐끗 가리키며 물었다.

“나도 어제부터 봤는데 어이가 없더군. 저 금발의 청년이 자신이 블랙 드래곤이라면서 흑마법사의 후손을 찾는다는 거야. 생긴 건 멀쩡한데, 미쳐도 곱게 미칠 것이지. 쯧쯧….”

남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흑마법사 토벌 이후, 별별 미친 사람들이 출몰하긴 했다. 그래도 저렇게 드래곤 사칭에 한술 더 떠서 흑마법사 까지 찾는 얼간이는 처음이었다.

‘설마… 날 죽이려는 흑마법사인가?’

샤크론은 순간 의문이 들었다. 블랙 드래곤이라는 이야기는 둘째 치고, 흑마법사의 ‘후손’을 찾는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샤크론은 반사적으로 칼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상황을 주시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손님. 그리고 이미 18년 전에 흑마법사들은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어디서 살다 오셨는지 모르지만 너무 모르시는 군요. 게다가 고귀한 드래곤이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실 리가 있습니까? 당장 돌아가 주세요.”

손님이다 보니 내쫓을 수는 없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달라고 주인은 부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발의 청년은 오히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북서쪽 하늘에 뜨는 흑마법사의 광성(Shining star of dark mage) 13개가 모두 힘을 잃지 않고 빛나고 있어! 흑마법사의 후손은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 주성의 힘을 유지시켜 줄 정도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금발의 청년은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푸른 눈에서 이따금씩 빛나는 광채는 ‘후손’이라는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여관 주인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용히 올라가시던가, 경비병의 인도를 받아 끌려가시던지 택하십시오. 더 이상 난동을 피우면 경비병들에게 신고하겠습니다.”

“젠장! 자면 되잖아! 왜 내 말은 믿으려 하지 않는 거지? 당신들은 흑마법사의 후손에 대해 궁금하지 않나?”

“저주받은 자들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잖습니까.”

금발의 청년은 툴툴거리는 말투로 신경질을 내고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세게 바닥을 밟으며 올라갔는지, 나무로 만든 계단 몇 개가 부서질 정도였다.

그래도 소란이 진정된 덕분에 식당 안에는 활기가 다시금 돌기 시작했다.

“블랙 드래곤을 사칭하다니. 저주를 받으려고 별 짓을 다하는 군. 취익.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젠카가 아는 블랙 드래곤은 흑마법사와 연계가 깊은 존재였다. 예로부터 흑마법사들은 마왕 이외에도 이따금씩 영혼을 팔아 더 강력한 마나를 끌어다 쓰기도 했는데, 그게 바로 블랙 드래곤과의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력과 영혼을 팔고, 마나를 사용하는 극악의 수법으로 살기를 포기한 흑마법사들이 자주 애용했었다.

“예? 아, 예에….”

샤크론은 젠카의 말에 답하며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조용히 떼어냈다. 사람들은 미치광이의 광기라고 매도하며 웃어 넘겼지만, 샤크론은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흑마법사의 광성이라… 그는 왜 후손이 살아있다고 장담하는 거지? 그게 사실이라면, 그가 찾는 사람은 나인가? 그런데 그는 대체 누구지?’

갖가지 상념들이 샤크론의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를 찾아가 묻고 싶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죽음이다. 그가 흑마법사의 후손을 죽이려고 하거나, 무슨 대법이라도 시행하려 하는 자라면 꼼짝없이 생사여탈권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샤크론은 제국에서 법으로 규정한 역적, 흑마법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시간도 꽤 된 듯 한데, 이제 자는 게 어떤가? 취익.”

“예, 그래야 겠지요.”

“저 일은 신경 쓸 것도 없어. 미친 놈 하나 나온 거겠지, 취익.”

“음….”

저녁의 갈증을 달래기 위해 조금 마셨던 맥주의 기운이 샤크론의 온 몸으로 퍼지는 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젠카의 말대로 미치광이겠거니 했다.

설사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섣불리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럼 잘 자고, 내일 아침에 오도록 하게.”

“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한 샤크론은 자신이 묵기로 한 방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오르는 술기운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치자, 샤크론은 오히려 쉽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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