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2. 나의 길 ( My Way )
오른쪽 어깨가 잘려나간 산적이 절단 부위를 부여잡고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오러의 열기에 깨끗하게 잘려나간 어깨에서는 피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젠장, 잘못 건드렸다. 모두 도망쳐! 목이 날아가기 전에.”
결국 산적들의 대장은 꽁무니를 내뺐다. 모닝스타라고 해봤자 힘으로 휘두르는 정도에 불과한 산적들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쓰는 기사를 상대할 실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휴. 됐습니다. 인간들의 장점이 저것이지요. 죽음을 미리 직감하고, 도망칠 줄 아는 본능 말입니다.”
“취익.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자네 오러 블레이드를 쓸 줄 아나? 견습 기사인 줄만 알았는데.”
“예? 오러요? 제가 무슨 오러입니까? 소드 마스터들이나 쓰는 그런 기술을 제가 어떻게 쓰겠습니까. 하하하.”
샤크론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모의 말에 의하면 샤크론의 몸속에 잠재된 어둠의 마나는 매우 방대하다고 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마나가 한 곳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극히 미미한 기운만을 느낄 뿐, 그 방대한 기운을 실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뿜어낸 검의 기운이 오러 인지도 알지 못했다. 단순한 칼 놀림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원래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건가? 취익.”
“글쎄요…. 잘못 보신 것 아닌가요?”
“…… 글쎄.”
“카다르에서 오셨습니까?”
샤크론과 젠카가 패론에 도착한 건, 산적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이 지나서였다.
마침 연락을 받은 패론의 경비병들이 미리 마중 나와, 샤크론은 좀 더 일찍 젠카의 호위임무를 넘겨줄 수 있었다.
“예. 이곳까지의 호위임무를 맡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자, 젠카님은 이쪽으로 오시죠.”
경비병이 상냥한 목소리로 샤크론에게 말하고는 젠카를 인도했다.
자신을 바라보던 모습과 다르게, 젠카를 바라보는 경비병의 눈빛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마치 벌레 씹은 것 같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취익. 이 기사에게 줄 것이 있다. 취익.”
“그럼 일이 끝나시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알겠다.”
경비병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지자 젠카가 말문을 열었다. 보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인간 친구에게 여러 가지로 정이 많이 든 탓이었다.
무정의 존재로 취급되는 오크 따위가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게 타당한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것. 지극히 집단적이면서, 각각의 생활을 영위하는 오크에게 생소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젠카는 그런 감정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샤크론에게 다가와서는 품속에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뭐지요?”
“통행증.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우리 구역을 지나가게 되더라도 무사히 통과시켜 줄 것이다. 내 피가 묻어있는 한, 10년 정도는 사용할 수 있을테니까. 취익.”
샤크론은 조심스레 종이를 받았다. 알 수 없는 무늬들이 새겨져있는 종이의 우측에는 검푸른색의 혈흔이 일직선으로 남아 있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제게 이런 선물을….”
“많은 인간들과 접해봤지만 샤크론만큼 마음에 드는 인간은 없었다. 오크라고 멀리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취익.”
“물론입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취익. 이제 난 돌아간다. 언젠가 또 만나길 빌겠어, 샤크론.”
“잘 가요, 젠카.”
젠카를 향해 샤크론이 손을 흔들자, 그도 어색한 동작으로 굵은 팔을 흔들었다. 어설프게나마 웃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어느 덧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호위 임무도 끝났으니 적당한 여관을 잡아 하루 정도 묵고, 떠나면 될 듯 했다.
“이렇게 첫 번째 일과가 끝나는 건가? 황궁에서 와서 처음으로 한 일 치고는 꽤 의미 있는 일이었어. 인간도 아닌 오크와의 동행이라니.”
젠카와 함께 걸어왔던 길들 되새기며 샤크론은 여관을 하나 잡았다.
하루 숙박에 10실버. 그리 비싸지 않았다.
“아침식사까지 준비해 드릴까요?”
“됐습니다. 푹 쉬고 싶으니, 조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예. 주의하도록 하지요. 10실버 되겠습니다.”
주머니에서 10 실버를 꺼내 지불한 샤크론은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니 누릿누릿한 누더기 이불과 여기저기 털이 빠진 양털 베개가 놓여 있었다. 10 실버의 가격 치고는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지만, 강하게 몸속을 파고드는 잠의 유혹에 샤크론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