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8화 (18/166)

# 003. 검술 시합

Chapter 3

“자, 한번 입어봐. 수련할 때만 입는 경갑주야.”

“굳이 챙겨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패커스와 카트라가 비록 샤크론과의 대련에서 지긴 했지만, 그랬다고 해서 앙심을 품는다거나 원한을 갖는 속좁은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샤크론이 기사단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아리온의 경우에는 직접 갑주를 구해다 주기도 하며,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친절을 샤크론에게 베풀었다.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룰 정도면 정말 대단한거야. 아 참, 그리고 존대하지 않아도 돼. 기사단 내에서 존대라는 건 상관에게 하는 예의니까.”

“그래도 너무 어색해서요.”

“괜히 존대를 잘못 했다가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어. 그러니까 편하게 말 놓아도 돼.”

아리온이 샤크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이차이가 6살이나 나긴 했지만, 기사단의 규칙이 규칙인 만큼 존대는 상위 등급의 기사에게만 쓰도록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넓어 보이지? 단청이 이렇게 넓었던가?”

슈타인 기사단의 규모는 150명. 카다르 기사단이 1500명인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숫자였다.

소드 마스터의 경우, 카다르 기사단은 50명이 넘는 반면에 슈타인 기사단에는 슈타인을 제외하고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겨우 미약한 오러 블레이드를 뿜어낼 줄 아는 기사가 두 명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슈타인 기사단의 단청은 넓다 못해 널널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애초에 1000명의 단원들을 예상하고 지어진 단청이었기에 그 수용공간이 넓었던 것이다. 그런데 2할도 채 되지 않는 기사들만이 자리하고 있으니, 내부의 대부분이 텅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슈타인으로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딱 맞네. 좋아… 이제 갑주도 걸치고 했으니 나가서 한 판 붙어볼까?”

아리온이 입가에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자신의 롱 소드를 만지작거렸다.

롱 소드에는 장미와 백합을 섞어놓은 듯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특정 가문의 일원임을 알리는 가문의 문양이었다. 집안 대대로 기사의 삶을 살아온 경우, 자신들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기곤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자신의 검과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목검으로 하는 것 아니야… 요?”

“요는 빼.”

“목검으로 하는 것 아니야?”

아리온이 꺼내 든 롱 소드가 진검이라는 것을 알고, 샤크론은 설마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다.

아무리 기사로서 수련을 하는 과정이라지만, 자칫 잘못하면 큰 상처를 낼 수 있는 게 검술 대련이었다.

“제국의 기사들에게 목검 대련이란 없어. 입단 심사를 치를 때만 목검을 쓰지. 이런 일반 수련은 당연히 검을 쓰는 거야.”

“만약 다치기라도 하면?”

“기사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아리온의 대답 대신 패커스의 답변이 이어졌다. 카다르 제국의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였던 에르치오 파네스가 남긴 ‘기사들이 명심해야 할 십계명’ 중 첫 번째 명언이었다.

“죽음을 겁내는 것과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다르잖아. 이건 자칫 잘못하면 큰 상처를 낼 수도 있어.”

샤크론은 잔뜩 걱정되는 마음으로 불안하게 말하는데, 정작 패커스나 아리온은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카논 소드라고 해서 칼날이 무딘 것도 아니었고, 조금만 잘못 스쳐도 살이 베어져 나갈 수 있는데 말이다.

“실력이 있으면 죽지 않지!”

샤크론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아리온의 롱 소드가 사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길이가 카논 소드보다 1피트 정도 더 길었기 때문에 검이 그리는 궤적은 상당히 길었다.

“아리온! 이러는 게 어딨어요?”

“요는 빼라고 했지!”

아리온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을 것처럼 무자비하게 샤크론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말 그대로 롱 소드라서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검날의 끝은 몸을 찌를 것처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샤크론은 무턱대고 아리온이 빈틈을 찌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무질서한 검술전개로 보기엔 아리온의 자세가 너무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궤적이 어지럽게 그려지면서도 적절하게 벌어진 틈을 찌르는 검술. 이것은 혼자 수련해 온 샤크론에게는 생소한 검법처럼 느껴졌다.

[깡! 깡!]

초반에 다소 밀리면서 뒤로 물러섰던 샤크론은 아리온의 검술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을 흘려내기에 좋은 사선 막기로 맞대응하기 시작했다.

온 힘을 쏟아 내려치지 않는 이상, 검을 비스듬하게 놓고 상대의 검로를 차단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어 자세였기 때문이다. 또, 사선으로 막으면 자세에 따라 상대의 힘을 가볍게 흘려버릴 수도 있었다.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전쟁에 나가서 그 소리 한 번 해봐라. 목이 날아간 기사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법이야!”

샤크론이 화를 냈지만, 아리온은 되려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더불어 아리온의 트레이드 마크인 눈웃음까지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욕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샤크론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리온! 그렇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얼마든지.”

아리온은 여유 있게 자세를 취하며 샤크론을 공격해 나갔다. 샤크론도 일단은 수비에 주력하면서, 한 번에 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두 사람 모두 빈틈을 감추는 것에 치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잘못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았다.

[깡! 까깡! 깡!]

일정한 리듬을 타고 칼날이 맞부딪히는 경쾌한 타성이 울려퍼졌다.

깡.깡.깡, 쉬고 깡.깡.깡.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가 앞으로 두 걸음 가기를 여러 차례. 그 흐름을 깬 것은 샤크론의 함성이었다.

“하압!”

기합 소리와 함께 샤크론의 검이 우측 하단에서 좌측 상단으로 강하게 밀어치면서 올라왔다. 기사들이 주로 쓰는 상하식 검술과 다르게 아래에서 올려치는 검술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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