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21화 (21/166)

# 003. 검술 시합

“마법사 하나 오는 것 때문에 이래야 해? 게다가 기사가 청소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명예를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카트라가 청소를 솔선수범해서 하고 있다. 카트라가 말이다.

샤크론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사가 청소를 한다는 이야기는 살아온 18년을 통틀어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샤크론. 네가 테스타노를 직접 보게 되면, 이렇게 설설 기는 이유를 알게 될 거야. 그는 카다르 기사단에서도 두려워 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야. 9서클이라는 것, 그건 도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뜻이야.”

아리온이 차분한 음성으로 답하며 바닥을 쓸었다. 그 고운 얼굴에 들린 것이 검이 아닌 빗자루라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지금의 이 비상사태는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었다.

기사가 빗자루를 쥐어도 상관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9서클?”

9서클. 샤크론의 부모님도 결국 넘을 수 없었던 9서클의 벽.

부모님이 남긴 책에서 이르기를 ‘9서클. 이 엄청난 힘 앞에서 선과 악은 극명하게 갈라지게 된다. 선의 실현을 위한 9서클은 풍요와 만족을 가져다 주지만, 악의 실현을 위한 9서클은 세상의 파괴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9서클의 힘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이기 때문에, 제국의 기사 몇 천명을 단숨에 쓸어버릴 수도 있다’ 라 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9서클의 마법사가 온다는 이야기에, 샤크론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허겁지겁 빗자루를 찾았다.

“그, 그런데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바람에 흩날리는 저 먼지들처럼….”

패커스가 햇빛에 비춰지는 먼지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샤크론이 놀라 물었다.

“저렇게 된다고? 그 사람, 무슨 결벽증 환자라도 되는 거야?”

“지나치게 청결을 추구하는 사람. 이유는 몰라.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좋든 싫든 단청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는 거지!”

테스타노의 방문 통보에 결국 슈타인 기사단의 단원 전부가 청소에 투입됐다. 카다르 기사단 심사에서 테스타노가 기사 두 명을 반쯤 죽여 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일에는 슈타인까지 제일선에 나서서 진두지휘(?)를 하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했다.

“정오까지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각자의 검을 손보고, 갑주에 문제가 없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예정 시간 한 시간 전까지 정문 앞에 전부 정렬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유일하게 슈타인 기사단의 결속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시기였다.

슈타인의 명령에 우렁차게 대답한 기사들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 드디어 정오가 되었다.

[따닥. 따닥. 따닥]

군화가 만들어내는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의 마기가 느껴졌다. 기사들의 살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 백마법사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신의 힘, 성기(星氣)였다.

“온다.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걸어오는 사람이 테스타노야. 정식 명칭을 붙이자면 ‘제국군 소속 마법군, 제국 제일 마법사 테스타노 구스타프.’ 이고.”

“상당히 거추장스런 명칭이네. 그냥 최고 마법사라고 하던가.”

“전체 차렷!”

샤크론이 툴툴거림은 슈타인의 외침에 묻혔다.

황제 다음가는 세력을 자랑하는 테스타노가 방문한 이상, 기사단을 총 지휘하는 단장이 그를 맞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다.

“인사는 생략하지.”

“예엣!”

테스타노가 오른손을 들어 됐다는 표시를 했다. 그리고 이어 차갑고 낮은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찌나 그 목소리가 냉랭했던지, 멀리서 듣고 있던 샤크론의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특히 테스타노의 길게 찢어진 눈매와 푸른색의 눈동자, 창백한 얼굴이 공포스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크게 한몫을 했다. 어느 곳 하나 따스한 온기를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은 마치 세상에 한을 품은 사람의 모습을 보는 듯 하였다.

최고 마법사라면 온화한 미소와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풍길 것이라는 게 샤크론의 보편적 인식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테스타노는 차가워 보이는 사람이었고, 더불어 그의 얼굴은 마치 20대의 청년처럼 주름살 하나 없이 곱게 펴져 있었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기운은…?’

처음에는 테스타노의 차가운 이미지에서 풍기는 느낌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수준을 벗어나 이제는 몸이 울렁이는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또 샤크론이 낀 마왕의 반지에서 붉은빛이 감돌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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