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27화 (27/166)

# 004. 갑작스런 의뢰

Chapter 2

갑작스런 의뢰였다.

카다르 기사단의 기사들이었으면 경비대 소관이라며 거절했을 것이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트롤 따위의 저급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니 말이다.

만약 그리 했다면 카다르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될 것이었다.

하지만 샤크론과 세 명의 동료들은 달랐다. 그들은 명예가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람의 생명이 개인의 명예보다 가벼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기사도를 아는 자라면 응당 해야 될 일이라고 느꼈다.

전쟁이 나면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 기사의 미덕이 아니던가? 이것도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단지 전투의 대상이 트롤일 뿐이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뿐이다.

“다섯이 무리지어 움직이긴 해도, 마시드 산에 사는 트롤은 소프트 트롤이라 불리는 순둥이들이야. 북쪽에 사는 매드 트롤들과는 다르지. 도구도 쓸 줄 모르고.”

아리온은 카다르에서 계속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의 지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기사라는 직업과는 맞지 않게 몬스터를 연구하는 부업(?) 학자이기도 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기사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은 비단 타 제국의 기사들뿐만 아니라, 몬스터가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아리온은 어릴 적부터 검술 수련과 몬스터들에 대한 공부를 병행해왔고,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납치한걸까? 그렇게 무지하다면 인간을 어디다 써먹어야 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텐데.”

샤크론이 막간을 이용해 어제 지급받은 군화의 끈을 조이며 물었다. 유사시에 무기(?)로도 사용이 가능하게 만들어진 단단한 군화였다.

“그것 때문에라도 한번은 올라가봐야 해. 새로운 트롤 개체가 마시드 산으로 넘어왔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이건 경비대나 황실에 보고해야 되는 일이야.”

제국의 수도는 무엇보다 주변의 위협에 안전해야 하고, 또한 경제와 군사의 거점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 내의 치안유지가 중요했다.

헌데 만약 매드 트롤 같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트롤들이 수도 근방의 산까지 넘어온다면, 그것은 방치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트롤은 주먹만을 휘두르는 트롤보다 더 많은 위협요소를 가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계를 늦추지 마. 트롤에게 맞으면 경갑주 정도는 견뎌내기 힘들어.”

“아차! 입고 온 게 경갑주인 것을 깜빡했다.”

힘차게 달리던 카트라가 가슴을 더듬으며 당황한 듯이 말했다. 트롤의 무지막지한 힘을 상대로 경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그냥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철갑을 두른 중갑주 정도의 갑옷이라면 몇 번의 충격은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경갑주는 다르다. 중요한 부분을 가린다는 개념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두께가 매우 얇았던 것이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카트라는 당황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샤크론의 표정은 태연함 그 자체였다. 경갑주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별로 충격적이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왜 중요하지 않아? 에르치오가 말하길 전투에 임함에 있어서 날카로운 검, 그리고 몸을 가려 줄 두꺼운 갑주가 필요하다고 했어.”

“그 십계명인가 뭔가 하는 것에 너무 집착 하지마, 카트라. 갑주는 남에게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서 입는 방어구잖아.”

“그렇지.”

카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었다.

“갑주를 입지 못했으니,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지만 않으면 되잖아. 안 그래?”

“확실하게 한 방 들어갔군.”

달리던 아리온이 카트라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샤크론이 나타난 이후, 카트라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십계명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동료 샤크론에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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