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0화 (30/166)

# 004. 갑작스런 의뢰

“잠깐만. 일단 소드는 좀 내려놓고….”

샤크론의 말에 세 사람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의 뜻을 이해하고는 검 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야 샤크론이 말을 이었다.

“잠깐을 본 것뿐이지만 그 트롤의 눈에서는 광기가 느껴지지 않았어. 물론 포효를 한다 던가 공격을 하는 기초적인 행동은 여전했지만, 내가 정면으로 바라봤던 트롤은 뭔가 이상했지.”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냥 넘긴다면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기사가 트롤을 잡는다는 게 흔치 않은 일도 아니고, 산행 도중에 자주 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야생의 본능을 잃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자체적인 퇴화의 과정이라기 보다는 인위적인 힘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개와 고양이가 야생의 본능을 점점 잃어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강인한 힘을 상징하는 두 눈은 붕 뜬 표정이었고, 힘을 가득 실어 내려쳤지만 바닥에 박힌 팔 조차 빼내지 못했어. 마치 그러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는 것 같았지.”

“그래서?”

“트롤의 힘을 빼앗아가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샤크론의 생각은 부모가 남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세워진 논리였다. 철저히 흑마법에 관련한 지식에 입각하여 나온 의견이라 할 수 있었다.

흑마법의 경우, 남의 힘을 빼앗거나 정신세계를 제압하는 현혹(Dazzle) 계열의 마법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자면 환각(Hallucination), 디스 힐링(Dishealing), 정신계 조종(Mind Control), 광포(Berserk), 혼돈의 안개(Fog of Chaos)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환각은 주변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시전자의 의지대로 왜곡할 수 있는 마법이고, 광포는 일시적으로 마법에 당한 사람의 힘을 폭주시키는 마법이었다. 샤크론이 볼 때, 트롤의 경우는 이 두 가지와는 관련이 없는 듯 했다.

그렇다면 의심이 가는 것은 디스 힐링이나 정신계 조종이다.

디스 힐링의 경우에는 상대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고도의 흡성술이다.

마나 체인지와 비슷한 원리로 상대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데, 이것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흡수한 생명력을 저장할 금제석(禁制石)이 필요했다.

또한 마법을 전개를 위해 정밀하게 제작된 금제석과 시전자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여기에 반드시 붙어야 하는 마법이 정신계 조종, 마인드 컨트롤 이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디스 힐링을 시전 하는 것은 본인의 의지가 거부할 수 있으므로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에 의해 정신을 지배당하게 되면, 디스 힐링의 시전에 대해 거부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서 모체(마법 시전의 대상물)는 디스 힐링과 마인드 컨트롤에 종속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무언가가 뭔데?”

“그건….”

샤크론이 입을 벌리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책에서 본 대로 그 내용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흑마법 계열의 마법이고, 백마법과는 전혀 무관했다.

백마법서를 뒤져봐도 저런 흡성술에 대한 설명은 없다. 왜냐하면 백마법의 본질이 갖는 특성 상, 남의 것을 취하는 마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말하는 것은 ‘내가 흑마법사들과 관련이 있는 자다!’라고 떠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저주받은 사술, 흑마법에 관련 된 이야기야?”

아리온이 샤크론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말투로 낮게 물었다.

“그, 그게….”

평상시에는 당차게 대답을 하는 샤크론 이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달랐다. 자신 있게 말하기가 곤란한 내용 뿐이었다.

흑마법은 저주받은 마법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마법에 대해 조예가 깊은 마법사들도 흑마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시피 했다.

몰라서 무지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무지함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었다. 저주받은 마법의 한 구절이라도 알고 있으면 백마법의 순수함이 더럽혀진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마법사들도 모르는 만큼, 기사들이 알 리는 만무했다. 거기다 대고 자신 있게 ‘현혹 계열의 마법이다.’ 라고 말하면,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상관없어. 흑마법사들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 마법까지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아리온의 말에 샤크론은 망설였다.

큰일이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법. 최대한 자신의 과거를 숨길 필요가 있는 샤크론은 최소한의 행동조차 경계했다. 필요 이상으로. 마치 결벽증 환자처럼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끝장이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말해봐. 갑자기 샤크론 답지 않게 왜 그래?”

보다 못한 카트라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매번 자신의 말에 토를 잘 달던 녀석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않고 있으니, 심통이 났다.

“현혹 계열의 흑마법인 것 같아. 흡성술이나 정신 조종 같은….”

“역시 예상이 맞았어. 제로스 대장님의 예상대로 아직 흑마법사는 살아있었던 거야. 더 이상 가면 안 돼. 여길 빠져나가자.”

아리온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앞장서서 여자의 아버지를 구출하러 달려왔다가 이제는 다시 나가자니?

“왜?”

“샤크론의 말대로 라면 분명 트롤의 생명력을 흡수해 사용하는 흑마법사가 있다는 증거가 돼. 그것도 제국의 수도 안에.”

“수도 안에? 그럴 리가 없지. 흑마법사들은 다 죽었는데.”

패커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흑마법사는 토벌전 이후로 사라졌다는 마법사 협회의 공식 선언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게 아니야. 샤크론 너가 보기에도 흑마법과 관련이 있어보이지?”

“응.”

샤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건 함정이야.”

[부스럭 부스럭]

그때 였다. 아리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의 풀숲에서 진동이 일었다.

Chapter 3

“서열 9위와 10위의 마왕 따위가 감히 1위인 나를 넘보다니….”

“지카론.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 놈이 2위부터 8위까지의 모든 마왕을 처치하지 않았느냐?”

“그건 너희들처럼 나에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적법한 절차에 의하면 지카론 네 놈이 마계의 지배자가 되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넌 마계의 법을 어겼다.”

“마계의 법은 누가 만들지? 지배자가 만드는 것이다. 지배자는 누군가? 바로 나다.”

마왕 서열 9위와 10위인 카이세르크와 오르하스가 지카론과의 힘겨운 대치를 계속하고 있었다.

마계의 지배자 ‘미토리스’가 죽기 직전 ‘후계자로 지카론을 처단하는 마왕을 지목한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유언 때문에 당연한 후계자였던 지카론이 밀려나게 되고, 다음 서열의 마왕들이 앞 다투어 자신의 자리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마왕들이 지카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화근이 되어 서열 8위까지의 마왕이 모두 지카론에 의해 죽었다.

마물과 언데드를 포함한 마왕군만 해도 30만. 게다가 지카론은 인간 세계의 흑마법사와 계약을 맺어 그 힘을 불려가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그의 힘은 다른 마왕들의 힘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살아남은 마왕들 중 가장 강한 카이세르크와 오르하스가 나서게 된 것이다.

그들 역시, 인간 세상의 두 흑마법사와 계약을 맺어 힘을 키워 온 마왕으로 유일하게 지카론을 상대할 만한 실력을 가진 마왕들이었다.

마왕이 인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법은 간단했다. 마왕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힘을 인간에게 전해주되, 그 인간과 주변으로부터 악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계약을 맺은 인간이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악에 받친 존재여야 했다.

“미친 놈….”

“후후후, 죽여라. 저 두 놈만 제거하면 마계는 평정된다. 마계의 지배자가 되는 대로 나는 인간계에 강림할 것이다. 이계(二界)의 지배자가 되는 거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자, 가라! 나 오르하스가 있는 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지카론!” “나 카이세르크가 살아 있는 한, 너의 꿈은 꿈으로 끝날 뿐이다.”

“어디 기대해 보겠다. 과연 네 놈이 날 쓰러뜨릴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

마계력으로 32910년 만에 터진 제 3차 마계분쟁.

서열 10위권 내의 마왕 중 7명이 제거 될 만큼 엄청나며, 50년이 넘게 진행되어 온 전쟁은 두 마왕의 마지막 발악으로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전투 중 마물이 죽으면 되살리고, 적군의 마물은 어떻게든 소멸시키는 방식의 일진일퇴.

오르하스, 카이세르크와 지카론의 전쟁은 이것으로 7년째에 접어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지는 건 지카론이었다.

지카론은 지속적으로 인간 세계의 힘을 모으고 있었으며, 계약을 맺은 흑마법사의 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했다.

그러나 오르하스와 카이세르크는 얼마 전, 계약 대상이 변경 된 이후로 힘의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마왕의 반지가 있어 언제든 이야기가 가능하지만, 새로운 계약의 주인공은 아직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공격!”

“그르르르르….”

용암이 흘러내리는 드넓은 평원에서 수 십만의 마물과 언데드들이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전투를 시작했다. 그 위로 세 마왕의 마법이 작렬하고, 마물들의 피가 여기저기에 튀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 학살극. 그렇게 마계는 카오스로 치닫고 있었다.

……………………… 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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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을 앞두고 있는 만큼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방학인 만큼 연재는 매우! 원활할 것입니다.

내일도 연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목표 리메량 끝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리메본이 필요 없고 2권부터의 연재를 보고싶으시면 50회까지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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