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샤크론의 진면목
# 005. 샤크론의 진면목
Chapter 1
“생각보다 영악한 놈들이군. 트롤 한 마리의 움직임을 보고 여러 가지를 알아내다니. 보아하니 흑마법을 좀 아는 모양인데?”
“누구냐?”
등 뒤에서 느껴오는 강력한 마기에 샤크론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뭔가 친숙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 이것은 어둠의 마나만이 내뿜을 수 있는 마기였다.
[부스럭 부스럭]
대답 대신 길게 늘어선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샤크론 일행은 본능적으로 위험상황에 빠졌음을 직감했다. 특히 마기를 강하게 느끼는 샤크론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제기랄… 트롤 일개 소대는 되겠군… 열여섯 마리나 되다니.”
주변을 둘러보던 패커스가 욕을 내뱉었다.
흔들리는 나무의 틈 사이로 나온 것은 다름 아닌 트롤 이었다.
“곧 죽을 놈이 이름은 알아서 뭘 하겠느냐? 너희들도 곱게 교단의 제물이 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트롤처럼 생명력을 빼앗기는 존재가 되겠느냐, 아니면 나를 따라 교단의 제물이 되겠느냐?”
교단. 샤크론의 귀에 생소한 단어였다.
카다르 제국은 유일신 매드노스를 섬기는 국가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종교는 철저히 배척한다. 흑마법사 토벌만큼이나 철저해서, 사람들은 감히 새로운 종교를 창립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조짐이 보이면 경비대에서 먼저 나서서 관련자들을 색출해내고 모두 국가에서 추방하거나 죽을 때 까지 관련자들을 연금시킨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교단’이라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었다. 매드노스를 섬기는 곳은 ‘신전’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교단’은 분명 다른 종교를 일컫는 것일 터였다.
“네놈도 흑마법사 테스타노의 끄나풀이었냐?”
무언의 적막 사이에서 터져 나온 것은 아리온의 외침이었다.
샤크론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갑자기 테스타노의 이름이 갑자기 불거져 나오자 당황했다. 그것은 카트라나 패커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온. 테스타노가 흑마법사였어?”
“저 놈이 트롤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던 마법의 시전자가 맞다면.”
샤크론은 복잡해지는 생각을 억제할 수 없었다.
제국 최고의 마법사 테스타노가 정말로 흑마법사라면, 제국력 200년의 대토벌을 이끌었던 자가 분명하다.
유모가 그랬었다. 네오시오 3세와 그 사람이 흑마법사 토벌에 중심에 있었다고.
게다가 그는 8서클의 마법사인 부모를 죽일 만큼 강력했다. 그것은 상대가 최소 8서클 이상의 마법사 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테스타노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고, 이 나라의 최고이자 9서클의 마법사란 말인가! 더불어 자신을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는 흑마법사라는 것도!
“테스타노님을 욕보이지 말도록 해라. 너희들은 엄연히 성전을 위한 제물이 되는 것뿐이니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테스타노님께서 세상에 나서시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의 생명력이 필요하다.”
검은 로브의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겠지. 어둠의 마나를 가려 줄 수많은 생명력이 필요 할 테니까.”
아리온이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샤크론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샤크론이 처음 테스타노에게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냉기의 정체와 테스타노가 이른 나이에 9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금지된 사술에 속하는 현혹 마법을 이용해, 힘을 불려왔던 것이다. 샤크론이 부모님이 마나 체인지를 샤크론에게 시전 했던 것처럼.
“제물이 풋풋한 기사 녀석인 만큼, 생명력도 꽤나 뽑아낼 수 있겠군. 어디 버텨봐. 트롤 열여섯 마리를 상대로 기사 넷이 얼마나 견뎌낼지 궁금하군.”
“미친 놈.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하나씩 해치워 왔구나. 요즘 들어서 실종자 신고가 부쩍 늘고 있는 게, 저 개새끼 때문이었어.”
패커스가 검은 로브의 사내를 향해 욕지거리를 해댔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검은 로브의 사내에게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하하하. 마음대로 떠들어라.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자, 시작해 볼 까!”
검은 로브의 사내가 손짓을 하자 멈춰서 있던 트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계속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트롤들은 사내의 조종을 받는 것 같았다.
“하하하하….”
이윽고 웃음소리와 함께 사내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기사 넷과 트롤 열 여섯.
[스르릉]
샤크론이 먼저 검을 꺼내들었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놈이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된 이상, 어떻게든 살아남아 원수를 갚을 생각에서였다.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복수도 할 수 있고, 부모님의 뜻을 이어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기사도 정신이 너무 투철한 것도 죄입니까, 매드노스 이시여!”
카트라가 하늘을 바라보고는 절규했다. 자신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 기사도 정신이 강해, 앞뒤 가리지 않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트롤과의 전투라니…
“침착하자. 트롤들은 저돌적이고 충동적이라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할 수도 있어. 침착하게… 침착하게 움직여야 해.”
아리온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옮기며 말했다. 트롤들은 일정한 보폭을 두고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크르르르….”
트롤 하나가 선두에 서서 걸어왔다. 보기에도 역겨운 침이 입에서 계속 흘러 내렸고, 떨어진 침 위에 거대한 트롤의 발자국이 이어졌다.
[쿵. 쿵. 쿵. 쿵]
서른 두 개의 발이 만들어내는 진동에 나무들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조금씩 거리가 좁혀졌다.
“지금 움직이면 상대적으로 가운데에 몰려있는 우리가 위험해. 바로 앞에서 놈들의 공격이 시작될 때, 재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아. 트롤의 힘이 세긴 해도 둔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아리온의 말에 샤크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트라와 패커스는 깊은 심호흡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아아!”
트롤의 포효가 들려왔다. 열여섯 마리의 트롤은 네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제각기 공격을 위한 자세를 취하며 들어오는 것이 따로 분담한 분야가 있는 듯 했다.
“트롤 따위한테 죽을 거면 기사단에 들어가지도 않았어!”
샤크론은 파이어 볼을 날리려던 생각을 접고, 검으로 강하게 찌르며 나아갔다. 마법을 무서워하는 트롤에게 파이어 볼은 위력적일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 동료들에게 샤크론은 기사였다.
“캬오!”
괴성과 함께 여섯 개의 팔이 샤크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는 머리를 향해, 하나는 몸통을 향해, 나머지 하나는 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만약 저 공격을 정통으로 맞게 된다면, 공중에서 비명 한번 못 지르고 가루가 될 터였다.
“후웁!”
샤크론은 가장 먼저 날아오는 팔이 머리를 향하는 것임을 알아채고, 허리를 강하게 젖혔다. 그러자 트롤의 깍지 낀 두 팔이 샤크론의 얼굴 바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써겅!]
그 틈을 타 샤크론은 빠르게 검을 휘둘러 트롤의 팔뚝을 찔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트롤의 팔을 받침대 삼아 옆으로 몸을 굴렸다.
[슈우웅]
바람소리와 함께 몸통을 공격해 오던 트롤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아슬아슬하게 갑주의 끝에 스친 트롤의 주먹은 관성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옆에서 달려오던 동료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끄아오!”
예상치도 못한 공격을 당한 트롤은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얼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 하더니 발을 헛디뎌 나자빠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퍼억]
“으윽!”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의 공격을 피하던 샤크론이 신음을 흘렸다. 왼쪽 다리에서 강한 충격이 느껴졌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보니 트롤의 주먹에 자신의 살점이 찢겨져나가 흉물스럽게 붙어 있었다.
“하아압!”
산짐승들을 사냥하면서 쌓은 노하우.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선 맹수가 온 힘을 쏟아 광기를 발출하고 난 다음이 가장 중요했다. 그 때가 가장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때이자, 감각이 무디어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샤크론은 트롤도 다를 바 없다 생각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다리를 공격한 트롤을 향해 검술을 전개했다.
시야를 최대한 흐려놓기 위해 칼날에 강한 반동을 주자, 칼날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트롤의 시야를 어지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우!”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놈을 도발한 결과가 되었는지, 약이 오른 트롤이 두 팔을 마구 휘둘렀다.
** 다시 말씀드립니다. 2권부터의 연재분을 읽으실 분은 51회까지 기다리셨다가 51회부터 읽어주세요. 리메본이 본편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끼실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