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2화 (32/166)

# 005. 샤크론의 진면목

[부웅]

“웃차!”

[부웅]

“흐읍!”

두 번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샤크론은 다시 한번 과감하게 트롤의 앞으로 뛰어 올랐다. 이에 당황한 트롤이 잠시 멈칫 하자, 샤크론은 놈의 팔뚝을 잡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몸통 위로 올라탔다.

“끄으?”

트롤이 갑작스레 자신의 앞을 가린 정체를 보고,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앞에서 싸우고 있었던 녀석인데, 지금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코 앞까지 다가와 있으니… 그렇다면?

[푸우우욱!]

순간적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동작을 쉽게 이해할 만큼 트롤의 머리는 좋지 못했다. 결국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트롤은 자신의 머리를 파고드는 검의 존재 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한 2초정도 흘렀을까? 샤크론의 검이 트롤의 머리를 헤집고 뇌수를 흘러나오게 만들자, 그제야 트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꾸아아아! 아아!”

트롤의 머리가 정확히 뚫린 것을 확인 한 샤크론은 그 자리에서 다른 트롤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왕 높은 곳에 올라온 만큼, 트롤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노리자는 생각에서였다.

트롤의 재생력이 좋다고 해도 뇌를 재생할 수는 없었다.

“크윽! 크헉!”

샤크론이 다른 트롤의 머리 위로 뛰어오르는 데, 바로 옆에서 패커스가 피를 토하는 것이 보였다. 트롤의 주먹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받아냈던 것이다.

다행히도 비스듬하게 비껴 맞아 충격의 일부를 흘려낼 수 있었지만, 그것만도 엄청난 타격이었다. 패커스는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패커스!”

패커스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샤크론이 소리쳤다.

“멍청아! 한 눈 팔지 말고 앞을 봐!”

패커스도 샤크론을 향해 소리쳤다.

“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트롤의 주먹이 정확히 몸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이에 샤크론은 당황했다.

자신의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날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몸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겨 버렸고, 오히려 약점을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다.

‘제기랄! 피, 피할 수가 없어. 몸을 움직이기엔 너무 늦었어!’

샤크론은 중요한 순간에 한눈을 팔았던 자신을 탓했다. 앞에서는 무지막지하게 큰 트롤의 양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저 주먹에 맞게 되면, 적게 잡아도 갈비뼈 대 여섯 개는 으스러질 터였다.

‘여기서 어이없게 복수의 꿈도 다 무너지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이건 허무 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써커컹!]

아련한 심연 속에서 들려온 한 줄기의 목소리! 아리온의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고기 썰리듯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끄오!”

팔뚝이 완벽하게 잘려나간 트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눈을 질끈 감고 충격을 견뎌내려던 샤크론의 몸이 트롤의 얼굴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어? 이, 이건?”

둔탁한 충격에 눈을 떠보니 바로 자신의 몸 앞에 트롤의 머리가 놓여져 있었다. 샤크론은 지체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트롤의 머리를 난도질했다.

“끄으으으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트롤의 몸이 기울자, 샤크론은 가볍게 몸을 날렸다.

[툭]

샤크론이 착지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옆으로 샤크론이 머리를 헤집어 놓은 트롤이 쓰러졌다. 그 뒤를 이어 카트라가 목을 따버린 트롤도 보기 좋게 쓰러졌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열심히 싸우던 카트라가 트롤의 공격에 배를 얻어맞고는 10m쯤 나가 떨어졌다.

“카트라!”

남은 트롤은 총 9 마리. 패커스는 트롤의 일격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고, 카트라 역시 방금 전의 충격으로 기절해버린 상태였다.

남은 건 샤크론과 아리온 뿐이었다. 비록 샤크론과 아리온이 넷 중에서 가장 검술이 낫긴 하지만, 트롤 아홉을 상대로 싸우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몇 번 얻어맞으면서 샤크론과 아리온의 패턴을 파악한 트롤은 쉽사리 달려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빈틈을 노리려 했다.

“아리온.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운이 좋아 트롤 몇 마리를 잡긴 했지만, 이제는 아군이 두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상대는 여전히 그 수의 네 배를 웃도는 아홉.

아리온이나 샤크론이나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놈들은 이제 머리까지 쓰고 있었다.

“소프트 트롤이기에 망정이지, 매드 트롤이었으면 일찌감치 저 세상 가고도 남았을 거야. 좋아, 우선 저 놈들은 우리 둘이 다 쓰러질 때까지는 패커스와 카트라를 데려가지 않을 것 같고….”

“그러면 트롤들을 유인한 다음에 패커스와 카트라를 업고 도망치는 건 어때?”

“안 돼. 아까 그 사내를 봤잖아. 놈은 테스타노의 추종자야. 이미 우리의 정체를 알아냈기 때문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어.”

“아!”

아리온의 말에 샤크론은 탄성을 질렀다. 맞는 말이었다. 이미 그 사내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았고, 이렇게 된 이상 돌아간다고 해도 테스타노에게 보고가 올라갈 터였다.

그렇게 되면 네 사람은 꼼짝없이 테스타노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된다.

“끄아!”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리온과 샤크론이 공격 방법을 두고 고민하고 있던 그 때, 트롤 아홉 마리가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아리온이 검을 치켜들고는 기세 좋게 트롤들 사이로 달려들었다. 트롤의 동작이 빠르지 않은 만큼, 기세 좋게 맞서 선수를 치려는 것이었다.

샤크론 역시 아리온의 공격 방식과 똑같이 트롤 사이로 파고  들며, 가로베기 식의 검술을 전개했다.

한편 아리온의 검이 수평선을 그으며 파고 들자, 달려오던 트롤이 오른손을 들어 칼날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자신의 오른손과 검을 바꿀 심산에서였다.

“으응?”

예상하지 못했던 대응이었다. 자신의 손을 내주고, 아리온의 목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칼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푹]

[까라랑]

팔뚝에 칼날이 꽂힌 채로 트롤이 힘을 주어 오른팔을 내젓자, 불꽃이 번쩍 하더니 금속의 마찰음이 일어나며 칼날이 부러져 나갔다.

특수하게 제련 된 명검이 아닌, 보급형 검이었기 때문에 트롤의 힘으로 충분히 반토막을 낼 수 있었다.

“아리온!”

몸을 낮게 깔아 뒹굴면서 트롤의 발목을 노렸던 샤크론은 트롤의 발을 베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팔을 잘라낸 후, 가슴을 노릴 속셈이었던 아리온은 그렇지 못했다.

오른팔의 힘줄이 뜯겨져나가 너덜너덜 해졌지만, 트롤의 왼 팔은 상처하나 없이 건재했다. 결국 아리온은 트롤이 휘두른 왼주먹에 옆구리를 정확히 가격 당했다.

[빠각]

“크어억!”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아리온의 비명이 이어졌다. 샤크론이 볼 때에도 정확한 일격이었다. 트롤의 주먹이 포물선을 그리며 아리온의 옆구리를 확실하게 들이쳤던 것이다.

[프츠츠츠츠]

모래먼지가 일고, 아리온의 몸이 바닥을 쓸며 20m나 밀려나갔다. 쓸려나간 자리에 제법 깊은 구덩이가 파일 만큼 트롤의 한 방은 강력했다.

“쿠오오오.”

남은 건 샤크론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패커스와 카트라, 아리온 모두 충격 때문에 기절한 상태였다.

상대는 발을 잘린 트롤을 제외하고도 아직 여덟이었다.

“젠장… 인정에 이끌려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이 곳으로 달려온 게 실수였어.”

샤크론이 이마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내며 후회의 탄식을 내뱉었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휘이이잉]

산 능선을 타고 날아온 찬 바람이 샤크론을 감싸고는 다시금 흩어졌다. 그러자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며 순간적으로 트롤과 샤크론의 시야를 가렸다.

바로 이 때! 양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오오오오!”

“파이어 볼!”

샤크론은 주저하지 않고 파이어 볼을 시전 했다. 동료들이 싸우고 있었다면 사용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어떻게든 트롤을 몰아내고, 이 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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