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샤크론의 진면목
“크왁!”
파이어 볼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트롤이 자신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좋아! 다시 한번….”
파이어 볼을 다시금 시전 하려던 그 때, 뒤에서 무언가 달려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샤크론은 본능적으로 왼손에 모으던 마나를 흩트린 다음, 양손으로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몸에 회전력을 부여하며, 일검필살의 각오를 담은 일격을 가했다.
[사아악]
조심스럽게 샤크론의 뒤를 덮쳐오던 트롤은 당황한 나머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검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못했다기 보다, 피할 생각을 하기도 전에 칼날이 경동맥을 지나 목살을 쑤시고 들어왔다는 게 정상일 것이다.
“꾸웩!”
단말마의 비명. 목이 반 이상 잘려져 나간 트롤이 비틀거리며 옆의 트롤을 껴안고 쓰러졌다. 샤크론으로서는 덕분에 한 마리의 트롤을 덜 상대하게 된 셈이었다.
[슈웅]
이어서 또 다른 트롤의 공격이 이어지고, 그 뒤에서 따라오던 트롤이 합세했다. 샤크론은 재빨리 수인을 맺어 파이어 볼을 시전하려 했지만, 집중을 위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캬오!”
이어지는 트롤의 주먹공세를 요리조리 피하던 샤크론은 트롤의 팔 하나가 자신을 향해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기회다!’
샤크론이 몸을 뒤로 강하게 젖히고는 트롤의 팔을 날려버릴 준비를 했다. 트롤의 주무기가 두 주먹인 만큼, 팔을 적극적으로 노릴 필요가 있었다.
“하아아!”
[쫘악]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트롤의 팔이 잘려나갔다.
“좋아!”
샤크론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기쁨의 함성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짐작하지 못했던 기습공격이 샤크론의 등을 강타했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으윽!”
검은 로브의 사내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내는 자신의 스태프를 이용해 매직 미사일을 샤크론에게 시전 했다. 이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매직 미사일이 샤크론의 등을 정확히 타격했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샤크론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제법 싸울 줄 아는 놈이군. 더 이상 트롤들을 썼다가는 남아나질 않겠어. 슬립(Sleep)."
검은 로브의 사내가 주문을 외우자 고통에 몸부림 치던 트롤, 샤크론을 향해 달려들던 트롤들이 일제히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자기 시작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크으으윽… 비겁한 놈. 사람의 인정을 이런 것 따위에 이용하려 들다니.”
“그 패기가 마음에 들어. 제물로 쓰지 않을테니, 나와 함께 테스타노님을 돕는 일에 동참하지 않겠나? 테스타노님은 진정으로 제국의 미래를 생각하시는 구원자이시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목소리를 바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샤크론을 타일렀다. 순간적으로 딴 사람이 온 게 아닌가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구원자가 다 얼어 죽은 모양이지?”
“매직 미사일.”
샤크론의 비아냥에 사내는 매직 미사일을 또 한번 시전 했다. 이번에는 가슴이었다. 마침 땅을 짚고 엎드려 있던 상태에서 가슴을 얻어맞은 샤크론은 그 힘에 붕 떠올랐다가, 누운 상태로 떨어졌다.
“크헉!”
두 번의 공격에 경갑주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경갑주는 대마법 갑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법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었다.
“제국의 유일무이한 흑마법사. 9서클의 엑스퍼트. 테스타노님을 따르면 나처럼 어둠의 힘을 얻을 수 있다. 왜 힘을 가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하는 거지?”
사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쓰러진 샤크론을 바라보았다. 그를 따르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비록 산속에 숨어사는 신세지만, 그 날이 오면. 그 날만 오면 세상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넌… 넌 대체 누구지? 흑마법사인가? 쿨럭.”
샤크론이 점점 무거워져가는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사내에게 물었다. 그렇게 단련했는데도 내상을 입은 모양인지, 기침을 한번 하자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안토니오 체자레. 교주님의 아들이지.”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안토니오 체자레. 그는 암흑 교단의 일원이자, 몇 안 되는 교단의 흑마법사 들 중 하나였다.
샤크론은 몰랐지만, 그 ‘교단’이라는 곳에는 기록상으로 남아있지 않은 무적(無籍)의 흑마법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교주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
“아, 아니….”
샤크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것도 제국의 수도 내에 흑마법사가 둘이나 있었다니. 그것도 하나는 제국의 최고 마법사로서, 하나는 그의 아들로서!
“왜, 의외인가? 난 아버지를 신처럼 존경하고 받들지. 아버지는 신이야.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던 나에게 강한 힘을 부여해주셨으니까.”
“이런 젠장… 죽여야 할 놈이 두 명으로 늘어나다니….”
“헛소리를 지껄이는 군. 누가 죽어야 한다는 거지?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네가 죽을 것 같아 보이는데?”
“크으으으….”
샤크론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고통이 가중되면서 말 대신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매직 미사일에 얻어맞은 가슴에서 출혈이 처음보다 더욱 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피가 모자라 빈사(瀕死)할 것 같았다.
“자, 네 재능을 인정해서 권유하는 거니까 우리 교단으로 들어와라. 너 같은 인재가 모여들어야 매드노스 따위를 믿는무지한 자들을 일깨울 수 있어.”
그 말과 함께, 안토니오는 샤크론의 고개를 젖혀 목부분을 강하게 죄었다.
“컥…! 크컥!”
“네 놈이 내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살아서 산을 내려가지는 못할 거야. 뭐, 네 놈이 날 죽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불가능하지.”
안토니오가 비열하다 싶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로브를 통해 불거져 나온 그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눈은 그 생기를 잃은 채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흡사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이런, 제기랄… 크으윽.”
샤크론의 손에는 아직도 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 힘이 다 빠져 휘두르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또, 안토니오가 몸을 강하게 죄면서 정신마저 혼미해져 가고 있었다.
“결국 네 놈도 어쩔 수 없겠구나. 보아하니 슈타인 기사단 소속인 듯 한데, 쓰레기 기사단의 기사 하나 죽는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겠지. 오히려 필요한 경비가 줄었다며 좋아할 걸?”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마땅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고, 그럴 힘조차 없었다.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안토니오의 손 때문에 어떤 자세도 취할 수가 없었다.
“젠장, 부모님의 원수도 갚지 못하고….”
“부모님의 원수? 어째서 네 부모의 원수라는 거지?”
안토니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샤크론에게 물었다.
“내 부모님이 잘나빠진 네 아버지한테 목숨을 잃으셨으니까. 갈아마셔도 시원치 않을 테스타노 새끼.”
“시끄러워!”
“크윽!”
안토니오가 공중에 샤크론을 들어올린 상태로 배를 강하게 쳤다. 그러자 샤크론의 경갑주가 완전히 바스라지며 가루처럼 흩어졌다. 그 사이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부모가 죽었든 말았든 내 알바 아니지. 죽은 놈이 한 둘이던가? 오히려 부모 곁으로 보내주는 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가 아니겠어?”
안토니오가 샤크론을 든 상태로 스태프를 이용해 마인드 컨트롤을 캐스팅했다.
샤크론의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있는 만큼, 마법의 성공확률도 높았다. 안토니오는 샤크론의 정신을 종속시킨 다음, 자신에게 적합한 용도로 몸을 개조할 생각이었다.
“어머니….”
허망했다. 수도에 올라와 시험을 거쳐 기사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 마법학교의 문도 열어보지 못했고, 복수의 길도 아득히 멀기만 한데 이렇게 마지막을 맞다니! 세상 사람들에게 엄청난 흉계를 꾸미고 있는 교단의 음모도 말해주지 못하고.
샤크론은 문득 부모님이 남겨 준 유품인 마왕의 반지가 떠올라, 힘겹게 고개를 돌려 왼 손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것 없이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언제나 부모님처럼 애지중지해 왔던 반지였다.
만약 여기서 죽게 되면 저 반지는 안토니오의 손에 넘어가거나, 주인 잃은 외톨이 반지가 될 터였다.
“마인드 컨트롤.”
안토니오가 주문을 외우자, 스태프에서 붉은 빛이 일었다.
샤크론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아니 어찌할 힘도 낼 수 없었다.
[파팟!]
“으윽!”
가슴을 뚫고 들어온 안토니오의 마나가 온몸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흑마법 계통의 마법임을 보여주듯, 몸을 비집고 들어오는 마법의 기운은 더없이 차갑기만 했다.
적에게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샤크론은 화가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샤크론의 머리까지 마인드 컨트롤의 마나가 침투하면 기억과 생각조차 사라져 버리게 된다.
“몸을 상하게 하진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뭐, 리치로 부려먹으면 될 테니까. 아니야, 듀라한이 괜찮겠군?”
안토니오가 미소를 지으며, 점점 눈이 감겨가는 샤크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