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샤크론의 진면목
[샤크론, 여기서 정신을 잃어서는 안 돼.]
샤크론은 혼미해지는 정신에 어둠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 머리 맡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부르는 것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샤크론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누, 누구시죠?”
눈을 뜨자, 자신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처음 보는 얼굴, 그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얼굴. 인비젼 마법을 통해 보았던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샤크론, 여기서 정신을 잃어서는 안 돼.”
“어머니, 아버지?”
샤크론의 말에 두 사람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만 끄덕인다.
꿈에서만 그려보고 눈물나게 그리워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샤크론은 생각지도 않았던 상봉에 감격하여 부모님을 껴안으려 했다. 여기가 지옥이든 천국이든 상관 없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는 곳이라면.
[인간이여,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어서 깨어나라!]
그 떄였다. 부모님의 품에 안기려는 찰나, 두 사람의 형상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붉은 눈빛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뭐, 뭐지? 당신은?”
[깨어나라. 어서!]
“아앗!”
붉은 눈빛이 두 개의 불덩어리를 뿜어냈다.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덮쳐오는 화마(火魔). 샤크론은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면서 소리를 내질렀다.
팟!
눈이 떠졌다. 희미해져 가던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몸을 타고 흘러들던 안토니오의 마법에 강한 반발력이 작용하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지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마나의 흐름이 저지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끄으으으!”
이질적인 기운이 어깨 부근에서 충돌하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마기의 충돌, 그것은 마치 어깨뼈를 비틀어버리는 듯한 극통이었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4서클의 엑스퍼트를 상대로 이 정도를 버틴 녀석이 없었는데. 하지만 네가 5서클 이상이 아닌 바에야, 마인드 컨트롤을 견뎌낼 재간은 없겠지.”
안토니오는 얼마 남지 않은 마법의 결과를 흐뭇하게 기다렸다. 20살도 되지 않은 풋내기 기사 따위가 5서클 이상의 마나가 있을리 만무했다.
마나가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나이면 아무리 성취가 빨라도 2서클을 채 넘지 못한다. 2서클도 안되는 놈이 4서클을 상대로 오랜 시간을 버텨내는 건, 엄청난 항마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으윽.”
계속되는 고통에 샤크론은 기절할 것 같았지만, 정신의 끈을 놓치않고 버텨냈다. 오히려 그 고통의 연속을 잊기 위해, 관심을 돌려 몸안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현상을 느껴보았다.
두 개의 물기둥이 강하게 부딪치고 있는 기분. 고통을 깊이 느끼고, 더더욱 파고 들었다. 그러자 자신의 몸 안의 어떤 기운이 안토니오의 마나를 강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샤크론은 몰랐지만 마나체인지로 부모가 맺었던 계약이 샤크론에게 넘어간, 두 마왕의 마나가 자체적으로 반발력을 만들어 항마의 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왕의 반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왕의 반지는 마왕과의 계약 관계를 종속에서 대등한 관계로 만들고, 반지의 주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치유하도록 돕는 기능이 있었다. 더불어 마나 체인지의 시전 성공률을 크게 높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괜한 오기는 부리지 않는 게 좋아.”
안토니오가 샤크론에게 주절거렸다.
샤크론은 안토니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안토니오의 기운을 몰아내는 것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의도대로 마나의 흐름이 이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왕에게, 그것도 부모를 통해 맺어진 두 명의 마왕에 의해 흐르는 8서클의 마나. 샤크론이 마나를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면, 안토니오 따위의 4서클 마법사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수가 있나? 왜 이러는 거지?’
여유있게 샤크론을 상대하던 안토니오는 상황이 이쯤 되자,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 따라 효력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는 있었지만, 샤크론의 경우에는 좀 달랐다.
마법의 성공으로 눈이 풀리는 증상이 오기는커녕, 샤크론은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선 전격마법을….’
안토니오는 라이트닝 볼트를 생각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살상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는 거리다.
“라이트….”
“되돌려주마!”
샤크론의 외침에 라이트닝 볼트를 캐스팅 하려던 안토니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의 양 손에서 정신계 조종의 마법, 마인드 컨트롤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되받아쳤다!
[파팟!]
피할 새도 없었다. 마법을 캐스팅 하던 중이라 되받아칠 여유도 없었다. 안토니오가 어떠한 방식으로도 대비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결국 안토니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쏘아보낸 마법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했다.
“이런 개 같은!”
안토니오는 화가 치밀어 욕을 내뱉었다.
이렇게 된다면 상대는 항마력이 매우 강한 성기사이던가, 5서클 이상의 마나를 소유한 놈이 분명하다. 그것도 흑마법에 대해서 백마법사가 보이는 반발 증상 없이, 부드럽게 되받아칠 수 있는 흑마법사다! 그런데 5서클 이상의 마나까지 소유를 하고 있다.
마검사의 재질을 갖춘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흑마법사인 것이다.
그걸 몰라보고 어설픈 공격에 여유까지 보이고 말았다. 원통하고 분했다. 이 놈을 상대로 여유를 준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그 잘나빠진 마법을 되돌려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겠지. 안타깝고 분하겠지만, 난 너무 기쁘다. 적어도 네가 이른 경지까지 나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테니 말이야.”
안토니오는 깨달았다. 자신을 이용해 흑마법을 익히려 하는 샤크론의 모습을. 마음 같아서는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지만, 자살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나 보다.
“대체 네 놈은 누구냐? 어떻게 해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흑마법사가!”
“오르네스 가문의 7대 독자, 흑마법사 연합의 후계자 샤크론.”
“제길….”
[툭]
한 마디 말과 함께 안토니오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인드 컨트롤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샤크론에게 종속되어 버렸다. 그것도 8서클의 힘이라는 강력한 결합으로.
“휴우, 후우.”
그제서야 샤크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서는 상처로 인한 심한 고통이 , 머리에선 철철 흐르는 피 때문에 어지럼까지 느껴졌다. 푹 자고 싶었다.
“자고 싶어….”
샤크론은 행복했다.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모습도 보고,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마나의 기운도 확실하게 느꼈다.
이제 안토니오를 이용해 필요한 지식을 얻어내면, 적어도 4서클의 경지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터였다.
샤크론에게 부족한 건 마나가 아니라 마법적인 이론과 공식, 유도과정이었기 때문이다.
피로가 몰려왔다. 다시금 희미해져 가는 시야 속으로 패커스와 카트라, 아리온이 보였다. 다들 사라지지 않고 잘 누워(?) 있자 안심이 되었다.
몰려오는 잠의 물결. 샤크론은 무거워지는 눈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