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6화 (36/166)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일주일이 흘렀다.

샤크론은 제로스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경비대 소속의 의원들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내상을 조금 입긴 했지만 포션으로 대부분 치유가 된 상태였고, 외부의 상처만 치료하면 되었다.

의원들도 사흘 정도를 오고는 그 이후로는 상처에 바르는 약만 남겨준 채, 이틀 정도의 휴식을 취할 것만 말하고 진료를 마쳤다.

이제 몸도 예전처럼 돌아왔고,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샤크론은 따분한 기운을 참을 수 없어 침상에서 일어났다.

“아함…. 역시 어디 누워있을 그런 체질은 못 되는 군. 그나저나 제로스 대장님과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샤크론은 아직도 걱정이었다.

우선 경비대를 상대로는 구역 침입의 문제가 있었고, 테스타노를 상대로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안토니오였다.

만약 테스타노가 안토니오를 슈타인 기사단의 기사 넷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알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을 죽이려 들 것이 분명하다. 이 소문이 퍼지지 않기 위해선 누구보다도 제로스가 침묵을 지켜 줄 필요가 있었다.

[끼익]

샤크론이 나가려던 찰나, 때마침 제로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비 교대로 자신의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제로스가 샤크론에게 왔던 것이다.

“제로스 대장님. 마침 제로스 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나가려던 차였습니다.”

“몸은 괜찮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람이라는 게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없는 노릇이라 말이지.”

“예, 걱정 마세요. 아주 멀쩡합니다. 전 혈기왕성하고 팔팔한 카다르의 남아가 아닙니까!”

“좋아. 상처가 다 나은 것 같으니 하루 빨리 기사단에 복귀하는 게 좋겠지. 기사란 휴식을 즐겨서는 안 되는 법. 경비대장인 나야 매일 놀고먹는 인생이지만, 기사단은 엄연히 다르다고.”

제로스가 피식 웃으며 샤크론에게 말했다. 경비대라는게 치안 빼고는 맡은 일이 없어, 사실상 제국의 주도 아래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가장 놀고먹는 직업이었다. 제로스는 그 점을 비꼬아 말한 것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괜찮으시다면 지난 번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합니다. 해명해야 할 것도 있을 것 같고, 주제넘은 짓이지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도 있어서요.”

남들이 보면 경비대장에게 일개 기사 따위가 대화를 요청하고, 부탁까지 한다고 해서 욕을 꽤나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스는 그렇게 꽉 막힌 인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샤크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인물 이었다.

“나도 그것 때문에 온 것이니까, 어디 얘기해 보도록 하지.”

제로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의 의사를 비쳤다. 그러자 샤크론과 제로스는 주저할 것 없이 옆에 놓인 이인용 원탁에 앉았다.

“우선 금지구역에 들어가게 된 이유입니다. 그 날, 기사단은 테스타노 님의 방문일정 때문에 사열식을 끝내고 자유시간을 부여받은 상태였지요.”

“그것은 아리온에게 들어서 알고 있네. 길을 걷다가 한 여인의 요청을 받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올라갔다면서?”

“네. 그러던 도중 트롤을 만나게 되었고, 뭔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에는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사람이 공격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패커스와 카트라, 아리온 모두 당하고 샤크론이 끝까지 싸웠나?”

“네.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지만, 운이 좋아서 놈을 물리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여기서 샤크론은 또 한번의 장벽에 직면했다. 마법을 되받아쳐서 안토니오를 쓰러뜨렸다고 말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제로스가 물어올 것이다.

제로스를 아무리 믿고 따른다고는 하지만, 흑마법에 대한 부분은 예민하였기에 샤크론은 얼버무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넘기려 했다.

“음… 안토니오는 내가 주시하고 있는 놈들 중에 하나지. 자네도 이번을 통해 알았겠지만, 흑마법사들이 다 죽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라 조작된 정보야. 흑마법사들은 아직 수도 없이 제국에 남아있어.”

기다렸던 말. 드디어 그 말이 제로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자신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

“안토니오를 주시하셨다는 건….”

“아리온이 말했을 거야. 테스타노는 제국의 유일무이한 9서클의 마법사이자, 흑마법사야. 그런데 토벌에서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만들었던 교단의 도움 덕분이었지.”

“교단이라면, 안토니오가 말하는 그 교단입니까?”

제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교단은 매우 광범위하게 지역마다 퍼져있어. 그에 관련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더불어 교단에 관련한 흑마법사가 얼마나 되는지도 추정하지 못해. 왜냐면 그들은 기록상으로 적혀있지 않은 무적(無籍)의 존재들이니까.”

“그 교단이 어떤 방식으로 테스타노를 돕는 겁니까?”

“소프트 트롤을 보았지?”

“예.”

샤크론은 야성을 잃고 비틀거리던 소프트 트롤을 떠올렸다. 실제의 트롤과 너무나도 다른 무기력한 몬스터였다.

“그런 식이야. 교단의 신도들은 몬스터들의 생명력이나 인간의 생명력을 빨아들인 다음, 교주인 테스타노에게 그것을 바치지. 왜냐면 그 생명력을 이용해야 테스타노가 내뿜는 마기를 감출 수 있기 때문이야.”

“아….”

“테스타노는 교단을 이용해서 그들의 충성과 생명력을 지속해서 받아왔어. 그 덕분에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거듭했고, 알다시피 9서클의 경지에 남들보다 빠르게 올라섰지. 게다가 놈의 힘을 강력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있었고.”

“제국력 200년의 토벌 사건 말입니까?”

제로스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렸던 학살의 그 날, 기억하기도 싫었다.

“그래. 그는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은폐하기 위해 교단에 관련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죽여 버렸어. 그것도 20년에 걸친 계획의 수립과 뒷조사를 통해서. 놈은 제일 마법사의 위치에 오르자마자 이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었지.”

“결국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두려워해서….”

“그렇다고 볼 수 있어. 그는 교단의 힘과 국가 예산을 이용해 흑마법사들의 명단을 수집했고, 황제를 설득해 토벌군을 일으켰지.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확실하진 않지만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교단의 실험대상이 되거나 흡성 마법의 대상이 되었을 거야.”

제로스의 말대로 200년의 토벌 이후, 테스타노는 몰라보게 강해졌다. 9서클의 엑스퍼트 수준이었던 힘이 마스터 급으로 오르는 한편, 얼굴에 더더욱 많은 생기가 감돌았다.

남들은 대마법사로서의 새로운 변신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제로스는 수많은 생명력이 빨려 들어가 만들어진 산물임을 잘 알았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제로스 대장님께서는 왜 테스타노에 대한 조사를 하고 계시는 건가요?”

“하긴 경비대장이 쓸데없이 황실마법사의 뒤를 캐고 있으니 궁금할 만도 하겠지. 하지만 비밀이야. 자네를 믿긴 하지만, 약점을 잡히고 싶지는 않아.”

“음….”

“마시드 산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자네들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곳이 내가 순찰을 도는 곳이었기 때문이고. 이제 이해가 가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테스타노가 혹여 그 일을 가지고 추적이라도 하게 되면….”

“증거가 없는데 무슨 추적을 해? 게다가 테스타노는 그런 조무래기 하나 당한 것 가지고 움직이지 않아. 신도의 입장에선 동지가 죽은 거지만, 테스타노의 입장에서는 수 많은 개미들 중 하나가 죽은 거에 불과할 테니까.”

제로스가 손을 가로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표시를 했다. 사실이 그러할뿐더러, 샤크론 일행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여자는 정신병자로 규정 된 수도의 광녀였다.

그녀가 무어라 지껄여도 그건 증언으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 없으니, 무시해도 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대장님 같으신 분이 저 같은 평범한 기사에게 도움을 주시는 게, 믿기지 않고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예전의 제로스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난 자네가 마음에 들고, 믿음에 끌려서 도와주는 것뿐이야.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말게.”

“예, 대장님. 그럼 저도 오늘 기사단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몸을 몇일 썩혔더니,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는 군요.”

“그렇게 하도록 해. 조만간 슈타인이 전지훈련을 간다고 하던데, 잘 다녀오도록 하고. 슈타인 기사단 재정에 전지훈련이라는 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니까.”

“예.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말이 끝남과 함께 인사를 건넨 샤크론은 문을 열고, 치료소를 빠져나왔다. 일주일 만에 제대로 맛보는 수도의 햇살이 여느 때보다 따스했다.

역시 태양은 어디를 가도 골고루 빛을 내려주는 모양이다.

‘좋아. 그럼 기사단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시드 산에 잠깐 들렸다가 가자.’

샤크론은 마시드 산에 있을 안토니오를 생각하며 우선 발걸음을 그 쪽으로 옮겼다.

[바스락]

낙엽이 밟히고, 소리를 내며 바스라졌다. 그 동안 안토니오가 흡수해왔던 주변의 생명력 때문인지, 이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시들거나 잎이 마른 병든 나무들 뿐이었다.

그건 나뭇잎도 예외가 아닌지라,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수 많은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릴만큼 흩날렸다.

“안토니오. 교단의 추종자라… 그렇다면 놈도 무적의 존재이겠지.”

“부르셨습니까?”

그 때였다. 멀리서 몸을 기형적으로 흔들며 걸어오는 사내가 있었으니, 바로 안토니오였다. 일주일 내내 산속에서 앉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몸이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굳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마인드 컨트롤의 마법이 이런 위력을 발휘하는 건가. 예전의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초점도 흐리멍텅해진 사람이 되어 있으니.”

샤크론은 신기하기만 했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마법까지 캐스팅했던 놈이 지금은 충실한 종이 되어 있는 것이다. 단지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마법에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야. 계속 앉아만 있었나?”

“예. 주인님이 명령하신 바가 없었기 때문에 기초적인 생리작용을 해결하는 것 이외에는 이곳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그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건… 좀 그렇지.”

샤크론은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해서 조금 떨어진 상태로 안토니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안토니오에게 더 이상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내가 필요할 때,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알고 있지?”

“예, 주인님.”

우스웠다. 마법 하나로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바뀔 줄이야. 새삼 마법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은 정상적으로 생활하되,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이곳으로 나오도록 해라. 단, 이전에 행하던 사술들은 모두 그만두고, 산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줍는 일에 열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산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주워라. 샤크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주문이었다.

산에 떨어진 나뭇잎을 줍는 건, 모래사장에 깔려있는 모래를 주워다가 모으는 격이다. 모으면 흩날리고, 흩날리면 또 줍는 일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샤크론의 말은 곧바로 안토니오에 대한 명령이 되어 버렸다.

“좋아. 앞으로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겠지. 우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 두라구, 안토니오.”

샤크론은 안토니오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직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교단의 실체와 대항할 수 없는 테스타노의 힘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안토니오라면 적어도 4서클까지는 무리 없이 진행시켜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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