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7화 (37/166)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Chapter 3

[슈타인 기사단 전지훈련 예정 공지]

위대하신 네오시오 대제의 성은이 카다르에 가득할 지어다.

황제 폐하의 은덕에 힘입어 본 기사단은 공지 통지 후, 5일 뒤에 전지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훈련의 비용은 전부 제국의 예산을 이용해 전액 지원이며, 그 액수는 총 500골드이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첨부 설명을 추가하니 읽어보도록 하고, 준비를 마치도록 한다.

황제 폐하의 특명에 의한 배려이니, 불참하는 자는 없어야 할 것이다.

- 슈타인 -

훈련 장소 : 오우거들의 서식지로 추정되는 ‘게르하르트의 계곡’.

훈련 기간 : 일주일.

훈련 대상 : 슈타인 기사단 소속의 기사단원들.

비고 사항 : 오우거 사냥에서 가장 큰 실적을 올리는 팀에게는 황제 폐하를 뵐 수 있는 ‘알현권’이 주어진다. 단, 한 팀은 4인 1조를 기준으로 한다.

“오! 5년에 한 번 나오는 전지훈련에 관한 공지가 떴어!”

아리온이 단청의 정문에 대문짝하게 걸린 벽보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터무니없는 재정 부족에 허덕이는 슈타인 기사단에게 드디어 전지훈련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5년에 단 한번 돌아오는 ‘전액 지원’의 특별한 훈련으로 네오시오 황족의 성덕(?)을 과시하는 황실 지원의 전지훈련이다.

“아리온. 내가 알기로 카다르 기사단은 세 달에 한번씩 훈련을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샤크론이 베토스에 살던 시절, 우연히 어떤 사람으로부터 카다르의 기사단원들은 3개월에 한번씩 훈련을 나간다고 들었었다. 그래서 베토스에 유난히 들끓었던 트롤들의 대다수도 이 훈련 도중에 모두 제거되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5년에 한번이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슈타인 기사단은 전지훈련도 가지 않는 기사단이란 말인가?

“샤크론. 그 이야기를 단장님 앞에서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오러를 정통으로 맞게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아리온은 목소리를 낮추어 샤크론에게 ‘슈타인 기사단이 가난한 건 너도 잘 알 잖냐. 전지훈련은 지원이 없는 이상 그림의 떡이야.’라고 했다.

“그래? 그럼 이번일은 정말 대단한 행사네?”

“매드노스이시여! 제가 이 기사단에 들어온 해에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에르치오님과 더불어 매드노스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옵니다!”

우렁찬 외침소리에 샤크론이 고개를 돌려보니, 카트라가 벽보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약간 오버하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기사들이 카트라처럼 격정적으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떤 기사는 벽보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며 황궁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사의 의식을 올리는가 하면, 다른 기사는 믿을 수 없다며 빈혈에 걸린 것 마냥 비틀거리는 자세를 취했다.

온지 얼마 안되는 샤크론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슈타인 기사단에 들어온 지 10년을 넘어가는 중견 기사들에게는 엄청난 이벤트라 할 수 있었다.

카다르 기사단이 많게는 1년에 6번 전지훈련을 가는 것에 비해, 슈타인 기사단은 많아야 1년에 한 번이다. 그것도 트롤 잔당 처리하기 등등의 구질구질한 임무들 뿐이고, 국가의 지원도 없다.

그래서 슈타인 기사단의 기사들은 매번 그것을 불평해오곤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황실의 지원을 받을 순번이 찾아와, 훈련을 나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강한 오우거들이 많기로 소문 난 게르하르트의 계곡으로 말이다.

“슈타인 기사단이 생긴지 50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다녀온 훈련을 말해보라고 하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어. 그럼 말 다했지. 슈타인 기사단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단장님의 수완 덕분이야.”

“명성이 있기 때문에?”

“응. 이름 없는 기사였으면 매장되어도 충분히 오래전에 매장되었을 기사단이지. 어쨌든 전지훈련이라니 기대 되는데? 오우거면 지난번에 보았던 트롤보다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는 않을테니까.”

오우거라면 베토스에서 살던 시절, 샤크론도 몇 번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물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오우거였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강해서, 때려잡는 데 1시간이나 걸렸던 몬스터였다.

그 때 샤크론은 1000m가 넘는 산을 넘나들며 오우거의 공격을 피해다니곤 했었었다.

“전액 지원이라고 했는데, 만약 기사가 다치게 되면 나라에서 포션 값을 대주는 거야?”

“그건 아니고, 훈련 경비를 대겠다는 거지. 포션을 제외한… 예를 들면 검을 다듬는 다던가, 여행에 필요한 경비 등을 말이야.”

“그렇다면 훈련 도중에 다치는 경우는 어떻게 하지?”

“네가 예전에 산에서 말했었지? ‘상대방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된다.’고. 그렇게 하면 되는거야. 오우거한테 맞지 않으면 되는 거지.”

“얘기가 그렇게도 적용이 되는 건가?”

“물론!”

아리온도 다른 기사들처럼 크게 들뜬 모습이었다. 게르하르트의 계곡이라면 최상급의 용병단 혹은 수도의 기사단들이 주로 애용하는 훈련지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평범한 농민이었던 게르하르트가 오우거에게 잡혀간 노모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효심을 널리 기려 게르하르트의 계곡이라 불렀는데, 그게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공식적인 명칭도 ‘게르하르트의 계곡’이라고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곳이다. 이 게르하르트의 계곡에는 오우거들이 추정치로만 3천 가까이 살고 있었다. 물론 저마다의 구역을 나누어 한 구역에 20마리 남짓 살고 있었지만, 20마리라면 웬만한 중소급 용병단 하나를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만큼 위험부담도 따르고 훈련의 강도도 높아지는 터라, 기사들은 전지훈련지 하면 대부분 게르하르트의 계곡을 손꼽았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력을 쌓고 오지 않으면 안 되겠어. 지난번 트롤과의 일전에서도 초전에서 박살이 났었잖아.”

패커스가 마시드 산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샤크론과 아리온은 쓰러질 때까지 놈들을 상대했는데, 자신은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먼저 당했었다.

그게 못내 아쉽고 분해서, 이번 훈련을 실력 향상의 장으로 삼으려는 것이 패커스의 계획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좀처럼 오기 힘든 훈련의 기회야. 그 때의 기억도 잊고, 제국의 명예로운 기사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이번이 발판이라고 할 수 있어. 게다가 실적이 가장 큰 팀에게는 알현권이 주어진다잖아.”

아리온의 말에 패커스와 카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명예에 사족을 못쓰는 카트라는 ‘알현권’이라는 말에 거의 쓰러질 듯한 표정이었다.

“화, 황제 폐하! 그 얼굴만 봐도 가문의 명예이겠지!”

“아리온, 그렇다면 우리 팀은 이렇게 넷으로 가는 거야?”

샤크론이 세 사람을 쓱 훑어보고는 아리온에게 물었다. 기사도의 제왕 카트라, 좌충우돌 패커스, 미청년 아리온, 촌뜨기(?) 샤크론. 자신이 보기에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 싶었다.

“당연하지! 설마 기사단에 들어온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규기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저런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은 아니겠지?”

아리온이 기사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는 한 무리를 가리켰다. 대부분 나이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인 것 같은데, 아직도 정규기사의 표식만 달고 있었다.

기사들의 평균치로 볼 때, 그 나이 정도면 근위검사(근위기사 아래 서열)의 자리에 오를 나이였다. 그런데도 정규기사 표식을 떼지 못하는 것은 실력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샤크론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듣자하니 대부분이 오우거의 가죽이나 피를 얻어 돈이나 벌어보자는 쑥덕공론만 하고 있을 뿐, 훈련의 기회로 삼자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더불어 그들의 얼굴에서도 열정이나 의지보다는 무언가 물질적인 욕심에 가득 찬, 순수하지 못한 눈빛만이 느껴졌다. 샤크론은 고개를 돌렸다.

“역시 믿을 사람은 세 사람 밖에 없는 것 같아. 좋아, 그럼 이렇게 팀으로 해서 가는 거지?”

“좋았어! 제대로 한 탕 해서 알현권도 따내보자고! 재수 좋으면 황제 만나서 근위기사 자리하나 얻을지 또 누가 알아?”

“하하하하!”

카트라의 말에 세 사람은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결과야 어찌 되건 간에, 그들이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하나로 똘똘 뭉친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동료들이 있고, 내가 있다. 위험할 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지가 되는, 그래서 더더욱 믿음직해지는 서로간의 단결이었다.

네 사람은 그것을 동시에 느꼈던 것이고 함께 웃음을 터뜨렸던 것이다.

“자, 출발 준비! 4시간의 행군, 30분의 휴식을 세 번 반복한다. 걸음의 속도는 단청에서 매일 행하던 구보의 속도에 맞추되, 장거리 이동을 위한 호흡법을 적용하도록!”

5일 후.

전지훈련의 날은 다가왔다. 기사단이 전지훈련을 간다고 해서 따로 준비하는 것은 없었다.

샤크론은 전투를 위한 철갑주, 여분을 포함한 검 세 개, 소량의 힐링 포션 한 병을 챙겼다. 대부분의 기사들도 철갑주에 여분의 검을 세 개 정도씩 챙기고, 만약을 위한 포션을 한 두 개 정도 소지했다.

숙소 문제는 이미 게르하르트 계곡 방면으로 기사들을 위한 여관들이 여럿 있어서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 여관은 국비로 운영되는 곳으로 훈련이 없을 때에는 민간인들이 묵고, 훈련 시에는 기사단들이 묵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슈타인이 출발에 앞서, 미리 통신마법을 이용해 숙소에 통지를 했으니, 민간인들과 같이 묵게 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단장님, 철기대처럼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기사단원 중에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손을 들고는 슈타인에게 질문했다. 입단한지 8년 정도 되었지만, 기회를 매번 놓쳐 한번도 훈련을 나가본 적이 없는 기사였다. 그러자 슈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지훈련 가는 게 힘든 기사단이라고 날 놀리는 건가! 아니, 기사단에 몇 년을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나?”

슈타인의 물음에 기사가 당당하게 답했다.

“8년입니다. 한번도 훈련을 나가 본 기억이 없습니다.”

“뭐라고! 없긴 왜 없… 이런 젠장.”

다시 화를 내려던 슈타인은 근 8년 간, 전지훈련의 개념으로 훈련을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야기 하려던 것을 멈추었다. 훈련이라고 해봤자 마시드 산에 몇 번 올랐던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말을 하려다 맥이 끊기니 슈타인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기사단의 단장으로서 기사들의 수련을 도와주지 못한 게 부끄러웠고, 내세울 거라곤 자기 이름밖에 없는 기사단의 현실도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아, 괘, 괜찮아. 어쨌든 이번 훈련에서 말을 사용하는 일은 없다.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는 경우에 사용할 것이니, 훈련지로 가는 도중에 쓰는 일은 없다. 그렇게들 알고 있도록!”

다시 냉정을 되찾은 슈타인이 호령하듯 외치자, 기사들이 오른손을 들어올려 슈타인 기사단만의 대답을 하였다. 명령을 받들겠다는 표시였다.

“예!”

“그럼 모두 출발한다! 훈련이 끝나는 날까지 부상자 하나도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겠다. 4인 1조로 움직이도록 하며, 남는 기사 둘은 나를 따르도록!”

“예!”

우렁찬 목소리! 드디어 찾아온 슈타인 기사단 전지훈련의 시작이었다.

“하나 둘, 하나 둘! 호흡을 가다듬고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렇게 너희들이 갈망하는 카다르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력이 중요하다!”

전지훈련 1일 째, 수도 카다르를 떠나 첫 번째 목적지인 메츠까지 가는 슈타인 기사단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이미 행군과정에서만 50명이 탈락하는 엄청난 불상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50명의 탈락은 슈타인이나 기사들 모두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루 동안 행군한 거리라고 해봤자 60km 남짓, 카다르 기사단에게 있어서는 낙오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거리였다.

그런데 슈타인 기사단에서는 벌써 총 인원의 30% 해당하는 인원이 탈락해 버린 상태였다. 슈타인 자신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기에 약간 기운이 빠져 있었다.

“대장님! 메츠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아리온이 물었다. 기사단 행군의 선두그룹에는 아리온과 샤크론이 있었고, 그 뒤에 패커스와 카트라, 그 뒤에 기사단원들이 있었다.

“지금 행군해 온 만큼만 가면 된다. 벌써 지치진 않았겠지? 특히 샤크론 자네 말이야!”

“문제 없습니다!”

샤크론은 전혀 지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예전부터 걷거나 뛰는 걸 좋아했던 데다가, 검술수련을 했던 동안 매일 다섯 시간씩 산보를 했었다. 그것도 달리고 걷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10여 년을 수련해 왔는데, 이 정도를 뛰었다고 지칠 리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그의 몸에 있는 8서클의 마나가  피로를 만들어내는 젖산을 알아서 분해시켜 주고 있었다.

“좋아. 낙오자는 무조건 버리고 간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슈타인의 호령과 이에 이어지는 빠른 발걸음에 기사들은 땀 닦을 새도 없이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샤크론도 달리는 만큼 강해지는 거리의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숨을 좀 더 깊이 들이쉬고 내뱉었다.

“후, 하! 후, 하!”

페이스가 조금 빠르게 바뀌면서 일시적으로 숨이 가빠오긴 했지만 잠깐이었다. 샤크론은 왠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은 전지훈련의 서곡, 행군을 기쁘게 받아들이며 미소로 가득 찬 행군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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