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울 때 쯤 슈타인이 손을 들더니, 산 아래에 보이는 건물을 하나 가리켰다.
통나무와 강화목재(마법으로 단단하게 만든 목재)를 이용해 지어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여관이었다. 이게 바로 그 숙소인 듯 했다. 평소에는 민간인들이 쓰다가 훈련 때에만 기사들이 잠시 쓰는.
“자, 우리가 머물 숙소다. 총 인원 150명 중에 60명 탈락이라… 그것도 하루만에. 참, 경이적인 기록이군. 내가 기사단의 단장이긴 하지만,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어.”
또 한번의 행군에서 10명이 탈락했다. 대열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쳐졌다면, 그것은 탈락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기사들도 대열을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판단하면, 알아서 포기한다.
아니, 기사로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이상 괜한 오기를 부리지 않는 게 미덕이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실패한 만큼, 그 이상의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슈타인은 20명 정도의 탈락을 예상했지만, 첫날부터 60명이나 빠져나가자 허탈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건 단장님 탓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련을 게을리 한 기사들 탓입니다. 그리고 단장님 곁에는 저희들이 있잖습니까!”
패커스가 넉살 좋게 슈타인에게 다가서서는 뺨에다 대고 볼을 비벼댔다. 한참 땀을 흘리고 난 터라 매우 끈적끈적해서 심히 불쾌한 스킨쉽이었다.
“패, 패커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슈타인의 기사단 설립 및 운영 목표가 ‘기사들과의 경계 없는 가르침’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했다. 패커스의 따가운 수염 공세에 슈타인은 기어코 오러를 보이고 말았다.
[파앗]
슈타인이 재빨리 검을 꺼내들고 패커스의 얼굴 앞에 갖다대자, 짙은 보라색의 오러가 검 끝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며 피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소드 마스터의 강력한 기운이 기사들을 압도했다.
“오오오!”
고된 행군의 끝을 장식하는 보랏빛 오러. 그것은 소드 마스터라는 목표를 두고, 내일을 개척해가는 기사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기사들은 저마다 오러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며, 얼굴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땀을 살며시 닦아냈다. 오러, 소드 마스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러.
나도 언젠가는 그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으응? 분위기가 이거 왜 이래?”
패커스를 겁주기 위해 뿜었던 오러가 오히려 기사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는 결과를 엮어내자, 슈타인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겁을 먹을 것이라 여겼던 예상과 다르게, 모든 기사들이 하나 된 것 마냥 자신의 오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꼭 저렇게 될 거야. 오러를 내뿜는 소드 마스터가….”
“역시 단장님은 저희들의 영원한 소드 마스터 이십니다.”
패커스가 그런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 채고, 무릎을 꿇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뒤에 있던 기사들이 패커스의 동작을 따라했다.
“단장님은 저희들의 영원한 소드 마스터 이십니다!”
순간 싸늘하게 흐르는 고요함. 슈타인은 이례적인 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파팟!]
“어서 숙소로 가지 못해! 오러가 실린 검으로 몇 대 후려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나! 선착순 50명, 숙소 내로 못 들어가는 40명은 나와 대련 할 줄 알아라!”
역시. 슈타인의 말이 만들어 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소드 마스터와의 대련, 로망이면 로망이겠지만 정규기사가 소드마스터와 대련 해봤자 남는 게 무엇이겠는가?
가지런히 잘려 진 검날이 전부가 될 터였다.
“뛰어!”
누군가가 지른 소리였던가. 그 소리가 신호탄이 되었고, 90명의 기사들이 철렁거리는 철갑주를 입은 채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물론 선두에는 샤크론과 아리온이 있었다.
“녀석들… 그래도 아직 날 소드 마스터로 인정해주는 녀석들은 너희밖에 없다. 내가 성격도 못 되고, 표현은 잘 못하지만 너희들이 없으면 세상 살아가는 낙이 없을 거다….”
슈타인이 숙소를 향해 어기적거리며 뛰어가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며 여느 때보다도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멸시를 받아오면서도 기사단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바로 기사들의 저런 모습 때문이었으리라.
역시 인정이란 무섭긴 무서운 것인 모양이다.
“자, 소드 마스터 나가신다! 게 섯거라!”
숙소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기사들을 따라, 슈타인도 달리기 시작했다. 힘든 하루의 행군이었지만, 몸은 여느 때보다도 가뿐했다.
숙소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슈타인을 포함한 90명의 기사들은 또 다시 죽음의 행군을 시작했다.
전날의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갑주가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지만 기사도에 있어 포기란 존재할 수 없었다. 포기는 곧 낙오를 뜻하고, 기사로서의 불명예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슈타인이 사기 고양 차원에서 특별히 스태미너 포션을 기사들에게 하나씩 먹였다. 스태미너 포션은 트롤의 피와 잡다한 약초들을 섞어 상점에서 파는 것으로 어딜 가도 흔히 구할 수 있는 장거리 여행용 포션이었다.
스태미너 포션은 일시적으로 섭취자의 근력을 강화시키고, 활동량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세 번의 행군방식을 따라 총 13시간 30분의 행군을 할 것이다. 포션을 먹은 값을 하려면 낙오자는 당연히 없어야 하겠지?”
“그렇습니다! 아자자, 힘이 팍팍 솟는데!”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환호를 지르는 건 카트라였다. 기사도로 똘똘 뭉치다 못해 그 자체인 그는 이번 훈련에 매우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훈련성적이 우수하면 알현권이 주어진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위대한 존재 황제를 만날 수 있다! 새내기 카트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설레이는 일이었다.
“기사님들, 몸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여관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슈타인 기사단원들은 잠시 쉬었던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다음 목적지인 토르노를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