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39화 (39/166)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훈련 3일째. 경비가 전액 지원되는 7일 중에서 3일이 지났다. 첫 날에 엄청나게 많은 탈락자가 생겼던 것에 비해,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탈락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슈타인이 먹인 스태미너 포션의 효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탈락하지 않고 남아있는 기사들의 각오가 대단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었다.

둘째 날의 행군에서 슈타인 기사단은 당초의 목표를 초과해서 토르노보다 30km 정도 더 간, 관광도시 엠피스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다음날의 행군에서도 초과 목표를 달성해, 게르하르트 계곡에서 50km 남짓 떨어진 메피토까지 도착했다.

슈타인의 계획대로라면 5일째에 행군을 끝마치고, 2일 간의 훈련 과정을 밟은 후에 복귀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초과목표 달성에 힘입어, 일정은 이틀이나 앞당겨졌고 슈타인은 그런 기사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소드 마스터는 오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나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절대로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없다….”

“샤크론, 정말 틈틈이 그 책을 읽는구나?”

아리온이 잠시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있는 샤크론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리온도 책을 많이 읽는 편에 속했지만 저렇게 열성적으로 책을 읽는 편은 아니었다.

행군 도중에 오른손에 책을 펴놓고 읽으며 달리는가 하면, 밥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양손 중 하나에 꼭 끼고 밥을 먹었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 저렇게 독서광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러와 관련한 분야를 읽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리온은 샤크론이 오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응. 오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대체 어떻게 해야 마나를 오러로 바꾸어낼 수 있을까?”

“푸하하하. 고기도 넣기 전에 스프 먼저 맛본다는 말은 너를 두고 하는 소리인가 보다.”

아리온이 샤크론을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고기도 넣기 전에 스프 먼저 맛본다. 이 말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을 다 한 것 마냥 여기는 사람을 두고 말하는 카다르의 속담이었다.

아리온이 아무리 샤크론을 높게 평가한다고 해도 오러를 뿜어낼 수 있는 수준이 되는 4서클의 마나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그러는 게 반.드.시 불가능 했다.

적어도 네 번의 마나 순환이 있어야 오러가 생성이 되는데, 저렇게 어린 녀석에게 4서클의 마나는 무리였다.

마나 숙련이 빠른 마법사라고 해도 저 나이에는 고작해야 2서클 정도가 전부였다. 정석을 제쳐두고 속성과정만 밟아도 3서클의 엑스퍼트가 고작이다.

그런데 예전부터 계속해서 샤크론이 오러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아리온으로서는 그런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직 기사로서 거쳐야 할 단계를 지나지도 않았으면서, 머나먼 미래의 일을 대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오러를 왜 못… 으읍.”

마나가 있는데 오러를 왜 못 쓰냐고 말하려던 샤크론은 얼른 손을 들어 자신의 입을 막았다. 동료들 앞에서는 아직까지 새내기에 불과한 기사일 뿐이었다.

자신의 몸에는 8서클의 마나, 그것도 두 마왕과의 동등한 관계에서 공급되는 힘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비밀이었다.

샤크론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내가 오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건… 음, 음. 청년 기사로서 한번쯤 가져보는 기사의 로망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그래서 그렇게 열성적으로 책을 보는 거야? 로망 치고는 너무 열광적인데?”

샤크론의 어색한 대답에 아리온의 웃음이 또 이어졌다. 더더욱 가관이었다. 나이를 먹었으면 얼마나 먹었다고 기사의 로망을 운운하는 건지! 아리온 자신은 샤크론의 나이였을 때, 로망은커녕 계속되는 수련에 지친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그런 과거를 밟아 온 아리온이 여유의 차원을 넘어, 오러를 꿈꾸는 샤크론을 보자 가소롭기(?) 그지 없었다.

“그나저나 아리온, 테스타노 말이야.”

“으응?”

“지난번 마시드 산에서 있었던 일 말이야. 테스타노가 알아채지 않았을까? 제로스 대장님이 도와주시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샤크론에게 있어 이제 테스타노는 최종적인 복수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존재다.

9서클의 흑마법사. 아직 샤크론의 힘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당장은 비굴하더라도 어떻게든 그의 관심을 최대한 받지 않아야 했다. 자칫 잘못해서 자신의 정체를 들키게 되면, 교단의 사람이 아닌 이상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테스타노가 트롤들이 출몰한다고 해서 금지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라 문제가 되긴 하지만, 제로스 대장님이 가만히 계시면 문제는 없어. 테스타노가 그 곳을 금지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너도 알다시피….”

“트롤들과 인간들을 이용해 흡성술을 전개하기 위해서?”

“그런 셈이야. 네오시오 3세는 테스타노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옳은 줄 알아.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자리에 금지구역이 생기는데도 전혀 알아채지를 못하지. 이미 전권을 그에게 넘겨버렸거든.”

“정말?”

“테스타노는 제국을 집어삼킬 속셈을 가지고 있어… 그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지금 제국은 너무 심각해.”

아리온의 말대로 카다르 제국의 현실은 심각했다.

테스타노의 측근이나 황실의 일에 깊이 관여하지 않는 사람을 알지 못했지만, 현재의 국정은 황제가 아니라 대부분 테스타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었다.

과연 테스타노는 어떤 길을 걸어 왔길래, 제국에서 이러한 위치까지 차지하게 된 것일까?

테스타노가 관료의 자리에 처음으로 발탁된 것이 30년 전이다. 그 당시, 제국 제일 마법사였던 바르샤의 수행 마법사가 되면서 황실의 서고를 관리하게 되었었다.

그 때 바르샤의 수행 마법사가 다섯이나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테스타노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게다가 바르샤는 이미 자신의 뒤를 이을 마법사로 디온이라는 수행 마법사를 지목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르샤와 수행 마법사 다섯이 황궁의 실험실에서 마법 실험을 하던 도중, 마나의 분열로 인해 실험실 자체가 날아가는 대폭발이 있었다.

마나의 배열 고리를 바꾸어, 새로운 전격마법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였는데 그 과정에서 마나의 균형이 깨졌던 것이다. 그 폭발의 효과는 엄청나서, 대마법진으로 충분한 방어벽을 두른 실험실도 반이 넘게 허물어졌다.

바르샤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리고 네 명의 수행 마법사는 중상을 입고, 의원들의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실험 당시 밖으로 나서던 테스타노 뿐이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제일 마법사의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마법사 협회는 당황했다. 원래의 예를 따르자면 디온이 뒤를 이어야 정상이겠지만, 디온 마저 죽고 테스타노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제일 마법사의 수행 마법사가 그 후계를 잇는다는 원칙에 따르면 테스타노가 후계를 이어야 했지만, 바르샤가 작성한 ‘후계증명서’가 없으면 이것은 불법이었다. 그런 연유로 제국 마법사 협회 회원의 일부가 후계증명서의 제출을 요구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제일 마법사의 자리가 빈 상태로 마법사 협회의 회원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후계증명서가 없어도 인정할 수 있다는 인정파와 반드시 후계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정통파의 대립이었다.

그렇게 대립이 과열되어 가던 어느 날, 테스타노는 자신의 손에 후계증명서를 들고는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군중들 사이에서 후계증명서를 들어 보이며 외쳤다.

“바르샤님의 후계 증명서가 여기 있다! 제국력 170년을 기준으로 나 테스타노는 바르샤님의 후계를 물려받아, 제일 마법사의 자리를 잇는다!”

“그럴 리가 없어!”

디온을 지지하던 세력의 회원이 외쳤다. 1년 전, 자신의 후계로 디온을 점찍었던 바르샤다. 결정을 번복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필체의 대조와 황제의 허락을 받았다는 증명의 옥새가 떡하니 문서에 찍혀 있었다. 게다가 뒤 이어 달려 들어온 전령의 목소리가 그것을 확정 지었다.

“테스타노 구스타프를 제국 제일 마법사로 임명한다는 폐하의 분부이십니다! 테스타노 구스타프는 황명을 받들어, 이 혼란을 수습하고 마법사 협회의 내분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속히 조치하시오!”

“알겠습니다.”

순간 테스타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날 이후로 테스타노는 제일 마법사로서 마법사 협회의 회원들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시작했다.

뇌물을 받았다거나 황실 서고의 마법서를 빼돌린 혐의가 있는 자들이 주 대상이었다. 제국 황립 치안청이 그 선두에서 회원들의 정보를 캐내었고, 그 과정에서 79명의 회원의 혐의가 인정되어 투옥되었다.

이게 테스타노가 부른 피바람의 서곡이었다.

황실의 기강을 잡고 제국의 발전을 도모하는 구원자 적인 존재로 테스타노의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마법사 협회 회원들의 비리를 알게 되면서, 테스타노의 공정성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테스타노는 혐의가 있는 마법사들을 모두 잡아들였고, 네오시오 3세는 마법사에 대한 감사 권한을 테스타노에게 넘겨버렸다. 어지간해서는 황제가 전권을 위임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네오시오 3세는 테스타노를 적극적으로 신뢰했다.

그 결과, 테스타노에게는 마법사들을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리고 제국력 180년 테스타노는 흑마법사 토벌론을 주창하기에 이른다. 그가 제출한 타국과의 연합을 통한 대대적인 섬멸계획을 본 황제는 물론이고, 민중들까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저주받은 존재, 죽음을 부르는 존재 흑마법사들의 토벌은 백성들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20년 간의 대 계획이 진행되었고, 잘못 된 오해를 받아오던 흑마법사들은 드디어 엄청난 대학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가 테스타노가 9서클의 자리에 오르던 제국력 200년의 일이었다.

언뜻 보면 운이 좋아서, 혹은 직접 앞장서서 시대의 흐름을 탔다는 점에서 그의 출세가 정당화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의 이면에는 어둠의 마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매우 교묘하게 숨겨왔고, 지금도 그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거라… 그렇다면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 명목으로 마법사들을 내쫓고, 금지구역을 설정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생명력을 끌어 모은다는 이야기잖아.”

“그렇지.”

아리온의 말을 듣고 나니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보고 있던 책의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치밀하게 조금씩 조금씩 과정을 밟아 온 녀석이라면 만만하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실험실 폭발 사건도 테스타노가 꾸민 음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흑마법사라는 건 확실해. 그렇다면 네오시오 3세나 기타 주변 인물들도 어쩌면 정신적인 종속 관계에 있을지도 모르겠지.’

샤크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계 마법은 4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면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그 능력을 이용해서 황제를 종속시키는 것 따위는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황제와 주변의 측근들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테스타노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짙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자신이 테스타노라도 그렇게 할 것 같았다.

“흠….”

“걱정할 것은 없어. 제로스 대장님께서 그런 비밀을 말하실 분도 아니고, 테스타노에게 있어 그런 신도 하나 죽은 건 대수로운 일도 아닐 거야. 신도의 수는 최소 수 만을 넘을테니까.”

“아리온. 그럼 너도 제로스 대장님처럼 무서운 사실을 알고 있는 거구나. 남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후후, 그런 셈이네.”

아리온이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 곧 메피토를 떠나 훈련지로 출발한다! 이 속도만 유지하면 2시간 내로 훈련지 근처의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다. 오우거가 제군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 때, 슈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출발한다는 이야기였다.

“오우거, 기다려라! 내가 엉덩이를 두드려 줄테니!”

“간만에 돈 좀 벌어볼까!”

기사들은 제각각 한마디씩 하며, 잠시 벗어두었던 철갑주를 걸치기 시작했다. 샤크론도 보던 책을 잠시 접고는 철갑주를 다시 착용하기 위해 일어섰다.

“샤크론, 파이팅이다! 내가 했던 말들 다 장난이었니까 신경쓰지 마. 중요한 건, 그 순수함과 의지를 잃지 않고 싸워나가는 강인한 기사로서의 자세니까!”

“고마워, 아리온. 꼭 보여주겠어. 네 앞에서 오러를 휘날리는 나의 잘난 모습을.”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먼저야. 하하하.”

“하하하하.”

아리온과 샤크론이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는 정면으로 부딪혔다. 의지와 열정, 잘 해보자는 의미의 제스쳐였다.

“자아, 출발!”

슈타인이 외쳤다.

“이제 시작인가!”

[우드득]

아리온이 양손을 마주잡고 비틀어 소리를 냈다.

말은 훈련이지만 엄연히 오우거와 목숨을 두고 싸우는 작은 전쟁이다. 피를 보는 일인만큼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샤크론도 책을 품 안에 잘 집어넣고는 검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언제든지 오우거의 목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좋아… 오우거 사냥이라.’

샤크론은 이번 훈련을 마치는 대로 안토니오에게 마법에 대한 지식을 모두 얻어 낼 생각이었다. 마법을 통해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오러의 분야에도 마나를 응용할 수 있을 터였다.

자신 있었다. 지금의 샤크론에게 문제가 되는 건, 마나가 아닌 그 활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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