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41화 (41/166)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Chapter 4

“자, 이제 계곡의 초입이다! 이번 훈련은 기사 협회에 실적으로 등록되는 만큼, 긴장을 잔뜩 하고 임해주기 바란다. 증거물로는 오우거의 귀 두 개를 한 놈으로 치겠다.”

“단장님! 왜 하필이면 귀 입니까? 찝찝하게….”

패커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우거의 귀는 질기고 쫀득(?)해서 잘라내기가 힘들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귀를 자르면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액체가 엄청난 압권이었다.

“그러면 찝찝하지 않은 게 뭐지? ‘거기’라도 잘라 올 생각이야? 그러면 그건 하나에 한 놈으로 인정해주도록 하지.”

“‘거기’라뇨! 단장님도 참… 기사로서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럼 잔말말고 시키는 대로 해. 카트라처럼 기사도 운운했다가는 오우거 피로 목욕을 시켜줄 줄 알아. 자, 테스트 시간은 다른 기사단과 동일하게 36시간이다. 식량으로는 개인당 토끼 두 마리가 배급되며, 기타 식사문제는 팀내에서 알아서 해결한다! 정확히 36시간 후에 이곳으로 집합한다.”

“예!”

“그리고 만약 비상사태가 생기게 되면….”

슈타인이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그 끝을 흐렸다. 그러자 제대로 듣지 못한 기사들이 혹시 슈타인이 도와준다는 소리인가 하며 재차 물었다.

“단장님이 도와주시는 겁니까?”

“기사도의 정신에 입각하여 당연히!”

“당연히?”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역시. 기사들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움켜쥐었다. 만약에 비상사태가 생긴다고 해도,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 부족에 달린 몫이라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믿을 것은 오로지 동료들 뿐인 것이다.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자신은 팀 밖에 있는 ‘관심 외의 대상’일 뿐이다.

샤크론도 슈타인의 어설픈 유머센스에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꽉 쥐었다. 그의 철갑주의 왼쪽 주머니에는 힐링 포션이, 오른쪽 허리에 맨 두 개의 칼집에는 날카롭게 다듬어진 검이 들어가 있었다.

이제 식량을 지급받는 대로 토끼의 귀를 묶어, 뭉뚝하게 판 고리에 넣으면 준비는 끝이다.

“질문 있습니다!”

그 때 였다. 카트라가 손을 번쩍 들더니 슈타인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슈타인이 ‘저 놈이 또 무슨 속셈이지?’하는 생각을 하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뭔가? 무엇이든 말해보게.”

“36시간이 지났는 지 어떻게 아는 겁니까?”

“…….”

“예?”

카트라가 재차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데, 슈타인은 이것이 장난을 치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오러를 한 대 맞아야 출발할 건가? 기사가 그런 시간 감각도 없어? 그런가, 카트라 군?”

“예?”

“자, 전원 출발! 시간 초과시 팀 내 실적은 전원 무효화 된다. 그리들 알아라!”

훈련의 시작이었다. 슈타인의 외침은 그 자체로 36시간의 카운트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좋아. 아리온, 태양의 위치를 파악해두면 시간을 예측하기가 수월하겠지?”

샤크론은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태양의 위치를 알아두기로 했다. 예전에 베토스에서 살던 시절에, 시간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 태양의 고도를 매번 관측하곤 했었다. 그것이 이런 경우에 쓸만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덕분에 샤크론은 눈대중으로 거리를 맞추어, 36시간 후에 태양이 위치할 지점을 예상했다. 예상 지점은 이곳을 기준으로 동쪽의 다섯 번째 산봉우리 정상인 듯 했다.

“그래야지. 자, 이제 제대로 한 번 싸워보자고! 그 잘나빠진 황제 폐하와 테스타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도 1등은 당연하겠지? 그래야 놈을 제대로 상대할 것 아니야?”

순간 샤크론은 테스타노와의 첫 대면을 떠올렸다. 너무나도 차가웠던 그와의 첫 만남. 그건 전율이었다.

그와 동시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카다르의 속담도 떠올렸다.

‘하긴… 오히려 피하는 것 보다 가까워지는 게, 또 조금씩 알아가는 게 현명한 것이겠지? 오크 굴에 들어가야 오크를 잡는 다는 말처럼.’

샤크론은 바꾸어 생각했을 때, 오히려 테스타노를 피하는 게 더 좋지 않을 거라고 느꼈다. 그에게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려면, 당당해야 했다.

테스타노는 아직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당당하게 그의 앞에서 행동한다면 그도 쉽게 자신의 과거를 알아채지는 못할 것이다.

샤크론은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칼잡이의 매끄러운 접촉 부분이 손에 착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리온을 향해 외쳤다.

“당연하지! 가자고! 새끼 오우거나 성체 오우거나 떄려잡아 죽이는 건 매한가지니까!”

훈련이 시작되자 저마다의 조를 나눈 기사들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기사단의 실적과 재능을 평가하는 것인 만큼, 가급적 다른 조와 이동경로를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괜히 함께 다니다가 애매하게 오우거를 사냥하기라도 한다면, 소유권을 두고 머리만 아파지게 될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물론 슈타인 기사단은 그 수가 적어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적었다. 되려 90명 남짓의 기사들이 3000마리가 넘는 오우거들의 구역에 들어서고 있으니,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카다르 기사단의 경우, 한 번의 훈련에 적어도 1000명이 넘게 참가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했었다. 그래서 기사들끼리 소유를 주장하며 검을 섞는 일도 다분했었다.

슈타인 기사단이 그럴 일은 없을 터였지만, 유비무환. 기사들은 대비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우거라…. 이야기만 들어봤지. 그 하찮은 미물을 이 카트라님이 봤을 리가 없잖아?”

카트라가 가장 선두에서 걸어가며 말했다. 그것도 어깨를 쫙 펴고 아주 당당하게. 마치 오우거를 못 본 게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사가 되어가지고 기초적인 몬스터조차 본 적이 엇다니. 대체 그 검술 실력은 그럼 어디서 나오는 거야? 오우거를 잡아 본 경험도 없으면….”

샤크론이 톡 쏘는 말투로 카트라에게 물었다.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지겹게 보아왔던 오우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니? 그럼 무엇을 상대로 힘을 키워 온 걸까.

“기사는 오로지 검을 상대하는 법! 함께 수련했던 동료들과 검을 섞어 실력을 키웠지. 암, 기사는 인간만을 상대하는 거야.”

카트라가 어깨에 힘을 잔뜩 주며 으스댔다. 샤크론은 헛된 공상과 왜곡된 기사정신에 매달리는 카트라가 한심해, 인상을 찌푸렸다. 이 녀석은 대체 어떤 기사도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동료들은 지금 뭘 하는데?”

“수련을 하고 있지.”

“아~ 나이 스무살이 넘도록 수련만? 그래서 카트라도 트롤의 한 방에 갔구나?”

이런 걸 정문일침이라고 하던가? 카트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젠장, 왜 하필이면 열받게 그 이야기를….”

나름대로 찔러준답시고 한 말이 카트라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뿌웅]

괴상망측한 소음.

“이런 제길!”

때 마침 카트라의 뒤를 따르던 아리온이 코를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카트라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가문 내력인가봐… 열만 받으면 속이 안 좋아지네.”

카트라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어색해진 건 샤크론이었다.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던 미래는 온데간데없고, ‘가문의 내력’을 운운하며 사과하는 카트라의 모습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분위기도 미지근해질 수밖에 없었다.

“가문 내력이 무슨 가전검법도 아니고, 그게 뭐냐? 중요한 때마다 이럴래? 지난번 너가 이랬을 때, 트롤이 나왔던 것 몰….”

[바스락]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던가? 샤크론 일행이 걸은지 겨우 3분. 아직 계곡의 초입이라는 안내판이 버젓이 붙어있는 장소였다. 이런 장소는 인적이 드물지 않은 곳이라, 오우거가 나서지 않는 장소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오우거였다. 마시드 산에서 트롤이 등장했던 타이밍과 매우 흡사했다.

놈은 기세등등한 표정과 자세로 일행들의 앞에 나타났다.

“미친 오우거인가?”

샤크론이 오우거를 쳐다보며 황당함에 가득찬 어투로 말했다.

오우거가 개개인의 독립적인 삶을 영위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그들의 구역 내에서 해당하는 이야기다. 자신의 영역 밖이나 다름 없는 곳에 나타날때에는, 반드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게 정상이었다.

“꾸오오웩!”

[붕붕]

오우거가 보기에도 위압감이 팍 느껴지는 통나무를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다. 더불어 기다란 침 한 방울을 흘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름 50cm에 길이 5m는 족히 되어보이는 통나무. 얻어맞으면 최소 5초 이상, 무료 공중비행을 경험하게 될 크기의 둔기였다.

“대열 상으로 볼 때, 나와 아리온이 놈의 관심을 유도하고, 패커스와 카트라가 놈을 노리는 게 좋겠어.”

샤크론은 오우거를 상대하는 법을 잘 알았다. 놈은 한 가지 표적을 두고 집중적인 공격을 가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미끼가 되어주면 반드시 그 미끼만 노린다.

그러면 놈은 미끼에 정신이 팔리게 되고, 그 틈을 타 제 3자가 오우거를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서대륙의 오우거가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이자, 사냥의 핵심 포인트였다.

[츠측]

패커스와 카트라가 검으로 바닥을 살짝 긋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쿵]

그 순간 오우거의 다리가 반원의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초동(初動)! 이제부터 필요한 건 신속한 공세 전환과 빠른 움직임이었다.

[타타탁]

거의 동시라 해도 무방할 속도로 네 사람의 신형이 이동했다.

샤크론은 정면을, 아리온은 북동향을, 그리고 나머지 둘은 파편이 흩어지듯 양쪽으로 동시에 흩어졌다. 이것은 정면대결로 승부를 보는 일반 기사들의 파티플레이와는 조금 다른 패턴이었다.

“꾸루루룩!”

오우거가 가소롭다는 듯이 무어라 지껄이며 통나무를 휘둘렀다. 마치 짧은 단검을 휘두르는 마냥, 그 움직임이 매우 날렵하고 경쾌했다.

“어림없지!”

[부웅]

오우거의 통나무가 샤크론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경로를 예측하고 있었던 샤크론은 어렵지 않게 통나무를 피했다. 그것도 놈이 끝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아슬아슬하게.

[푸욱]

역시나 힘이 가득 실린 통나무는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갔고, 통나무가 통째로 바닥에 박혔다. 매번 베토스 마을 뒷산에서 오우거를 잡을 때 써먹었던 작전이 여기서도 먹혀든 것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샤크론은 두 팔에 힘을 가득 실어 검을 내질렀다.

[스팟!]

‘으응?’

그 때였다. 알 수 없는 기운이 검을 통해서 빨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진 보랏빛 섬광. 샤크론은 직감적으로 오러의 발산을 알아챘다.

[서걱]

“뀌에에엑!”

오러에 깨끗하게 왼팔을 절단 당한 오우거가 비명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오우거의 경험상, 이곳에는 오러를 쓸 줄 아는 기사들은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않았던 오러가 자신의 팔을 피 한방울 내지 않고 잘라버렸으니, 고통은 물론이고 황당하기 까지 했다.

“샤크론 설마….”

“자, 간다!”

패커스의 황당한 표정은 아리온의 공격에 묻혔다. 놈이 고통에 빠져 이성을 잃은 틈을 타, 정확하게 오른팔을 겨냥하여 몸을 날렸다.

[서컹!]

절단음과 함께, 이번에는 오우거의 오른손가락 네 개가 단숨에 잘려나갔다. 검이 바람을 가르고, 차가운 감촉이 자신의 손에 닿고, 그리고 고통이 이어졌다.

오우거는 그제서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보고, 고통의 근원을 실감했다.

“끄으으으아아!”

“이번에는 내가 간다. 프릭스 가문의 가전검법, 죽음의 공격(Attack of Death)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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