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뒤 이어 펼쳐진 것은 카트라의 공격이었다. 그것도 갑작스레 가전검법이라는 외침과 함께. 순간 일행들은 깜짝 놀랬다.
아무리 친한 동료라고 해도 대놓고 가전검법의 이름까지 호명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검술을 전개하는 카트라의 모습은 이상할 수 밖에 없었다.
[깡!]
카트라가 날을 바로 세우고 달려들자, 오우거가 반사적으로 팔을 감고 있던 사슬을 이용해 후려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트라도 필살의 각오였는지, 침착하게 검을 비틀어 사슬의 궤적을 차단했다.
그리고 동시에 무방비 상태에 빠진 오우거의 가슴 오른팍을 향해 찌르기로 검술을 전개했다.
“으랴?”
공격의 성과가 없을 때 이어지는 허무함이란 순간적인 공황을 만들어내는 법. 오우거는 허탈한 표정으로 어떠한 자세도 취하지 못한 채,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자!”
[푸욱]
검을 타고, 손을 이어 느껴지는 감각에 카트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전 처음 몬스터를 죽여보는 이 쾌감! 무언가 둔탁한 충격과 함께 들어가지는 칼의 느낌은 최고였다.
“쿠에에에엑….”
오우거가 진녹색의 피를 토하며, 카트라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뒤로 나자빠졌다. 카트라의 검이 박힌 심장에서는 분수를 연상시키듯이 녹색의 피가 역동적으로 치솟았다.
“오! 카트라가 놈을 해치웠어!”
오우거의 떨어진 손가락과 카트라의 공격을 번갈아보던 아리온이 탄성을 내질렀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오우거가 힘없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전검법이야?”
샤크론이 궁금한 것은 그것이었다. 오우거야 여러 번 잡아본 경험이 있으니, 별다른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오우거를 잡았어! 잡았다고!”
“아니, 그러니까 그게 카트라 가문의 가전검법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 대충 갖다 붙여서 공격했는데, 오우거가 한방에 죽었다! 크하하하하!”
카트라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피가 묻은 칼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샤크론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자축하는 카트라가 또 한심했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는 생각에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좋아. 잘 했어. 자, 이것 챙겨야지.”
[서걱서걱. 설컹설컹]
“우, 우웩!”
샤크론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내어 카트라의 앞에 내민 것은 오우거의 양쪽 귀였다. 악취가 가득한 초록 피가 뚝뚝 흐르는 귀의 모습에 카트라는 헛구역질을 했다.
“이걸로 한 놈 추가인가? 시작이 괜찮은데? 그래, 죽음의 공격인지, 그거 네 가전검법으로 해라. 생각보다 어이없는 검법이라 주목을 받을 만 하다.”
아리온이 조롱하듯 말했지만, 카트라는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프릭스 가문의 유일한 기사라더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오우거 하나에 열광하는 저 모습을 보라!
“내가 잡았다고, 우욱! 자, 잘 했지?”
“그래. 잘했다.”
아리온이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자, 카트라가 칭찬받은 어린애마냥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잠깐. 샤크론, 이번에는 정말 믿을 수 없어. 너, 진짜 오러를 쓸 줄 아는 거야?”
카트라의 자축이 끝나고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패커스가 샤크론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전에 물어보려 했었지만, 아리온의 외침에 질문이 묻혔던 탓이다.
그러자 아리온도 깨끗하게 잘려나간 오우거의 왼팔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건 검에 잘려나간 상처가 아닌데…. 오러가 아니면 피 한방울 안 내고 절단할 수가 없어.”
“정말 그렇잖아?”
카트라도 아리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에 합류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샤크론도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몸에 8서클의 마나가 있다는 사실밖에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 오러가 뿜어지는지, 발동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힘을 가득 실어 검을 휘두르니, 오러가 나온 것 뿐이었다. (샤크론이 느끼기엔 그것이 전부였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힘을 실어 휘두른 게 오러가 된 것 뿐인데. 왜 오러가 나오는 거지?”
“그럼 아까의 방식대로 검을 휘둘러봐.”
아리온이 턱의 골에 검지를 짚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18살의 나이에 오러를 쓸 줄 아는 기사라면, 이것은 평범한 발견이 아니다. 제국의 기사가 만들어 온 역사를 갈아 치울 수 있는 일대 파란이 될지도 모른다!
“으음. 하앗!”
샤크론은 기합을 지르는 척 하며, 힘을 약간만 주어 칼을 휘둘렀다. 동료들 앞에서 오러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신이 편한 동료였으면 했다.
[부웅]
“아니야. 그건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어.”
아리온은 샤크론의 의도적으로 힘을 실어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재촉했다.
“아리온….”
“널 못 믿는 게 아니야. 이미 우리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고 있잖아?”
아리온의 말은 샤크론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네 사람 모두 테스타노의 신도들 중 하나였던 안토니오를 보았고, 흑마법을 보았다. 제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규정된 흑마법을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이것은 샤크론에게 올가미나 다름없었다. 서로가 금단의 비밀을 알고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위협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알았어.”
샤크론은 더 이상 숨겨서는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제로스라면 테스타노의 비밀을 샤크론이 알아챈 이상, 멀어지려 하면 가차 없이 자신을 제거하려 들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왕 마음먹은 대로 샤크론은 검에 최대한 줄 수 있는대로 힘을 가득 주었다. 그러자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용솟음치며 두 팔을 단숨에 지나, 물 쏟아지듯 손으로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스파팟!]
오러였다. 손을 통해 전율을 일으키며 검날을 통과한 기운은 보랏빛의 짙은 오러를 만들어냈다. 엑스퍼트 급의 소드마스터가 보이는 안개형의 오러가 아닌, 마스터가 보이는 응축형 오러였다!
“아아아아!”
“정말 오러였어!”
동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오러, 그 오러를 만들어낸 사람은 자신들의 나이도 되지않은 젊은 청년이었다. 기사의 나이와 등급으로 따지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경력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러라니! 이건 감탄을 지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오러가 맞아. 맞아… 그것도 1m를 족히 넘어서는.”
아리온이 넋을 잃은 듯이 초점이 흩어진 눈으로 오러를 바라보았다. 샤크론의 오러는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짙은 보랏빛을 발산했다.
“샤크론. 다시 기운을 흐트렸다가, 오러를 만들어 봐.”
여기서 샤크론이 또 한번 오러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최연소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인증 절차를 거쳐야하겠지만, 적어도 그 이름에 맞는 자격은 갖출 수 있었다.
[프스스스]
샤크론이 기운을 거둬들이자, 빨려들어가듯 기운이 탄력있게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이게 마나인가? 나는 지금 마나의 흐름을 통제할 줄 알고 있는 것인가?’
노력하긴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마시드 산 사건에서 마나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몸속을 감도는 기운을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었다. 또 마법의 주문이나 발동은 알지 못해 사용할 수 없지만, 단순한 발산형태의 오러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크흐흐흠.”
샤크론이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했다. 몸으로 느껴지는 일정한 길을 따라 기운이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어깨를 타고, 심장 주변을 한바퀴 순환한 기운은 다시 어깨를 타고 양팔을 향해 물밀 듯이 쏟아져왔다.
[스파팟!]
“오오오오!”
또 한번 펼쳐진 진보랏빛의 오러! 세 사람은 탄성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어떠한 말도 이을 수 없었다.
그것은 당사자인 샤크론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기사들의 로망, 오러가 자신의 몸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아아… 단순한 깨달음이라고 하기엔 오르기 힘든 경지이거늘… 더군다나 마나의 양도 방대해야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오러인데….”
아리온의 말이 이어졌다. 그 순간 샤크론은 의문이 떠올라 자신에게 되물어보았다.
‘난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나 마나를 활용하는 용도를 확실하게 익히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거지?’
‘궁금한가?’
그 때 들려온 낯선 목소리. 아니, 한번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바로 마시드 산에서 잠시 정신을 잃었을 때 보았던 붉은 눈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뭐지?’
기억의 심연 속에서 피어올라오는 말에 샤크론은 되물었다. 생각만으로도 그에게 말이 전달되는 듯 했다.
‘마왕. 바보가 아닌 이상, 네 부모와 계약한 마왕이라는 것은 잘 알 것이다.’
목소리는 두 개가 중첩되어 들려왔다. 아마도 메르헨이 계약한 마왕과 카렌이 계약한 마왕이 서로 달라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너는 잘 모르겠지만 마왕의 반지는 유일하게 마족과 인간의 의사소통을 연결해주는 고리다. 다시 말해서, 일반 흑마법사들은 마족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네가 마왕의 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네 몸을 빌어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내 몸을 빌어?’
샤크론을 알지 못했지만 마왕의 반지는 유일하게 마계와 인간계를 잇는 열쇠와도 같은 존재였다.
일반적으로 흑마법사가 마족과 계약을 맺어 흑마법을 쓴다하더라도, 그것은 계약에 의한 일방적인 마나 공급에 불과하다.
하지만 마왕의 반지를 지닌 자에게는 여러 가지 특혜가 주어진다.
첫째, 마왕과의 대등한 위치에서 계약을 성립시킬 수 있다.
둘째, 위험에 처하게 되면 자체적으로 반지가 자각을 일으켜, 착용자를 지켜줄 수 있도록 반발력을 만들어낸다.
셋째, 마왕의 힘을 통해 지식의 습득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왕의 말을 바꾸어 말히자면 그의 능력을 빌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힘을 기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마왕의 입장에서는 그 반대로 인간을 이용한 행위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 오러에 관한 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에 쉽게 네가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
‘명심해라. 네가 낀 마왕의 반지는 마왕인 나와 인간인 너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이걸 끼고 안 끼고는 너의 자유다. 미래의 결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결정을 네게 맡기겠다.’
마왕과의 대화. 샤크론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느닷없는 마왕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울 리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늘어놓는 일련의 설명들은 섬뜩하게 만드는 내용들도 담겨 있었다. 반지가 매개체라니… 마왕과 샤크론이 하나라는 이야기인가?
‘내가 마왕의 반지를 끼지 않는다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데?’
‘우선 마나 체인지가 반지를 매개로 이루어진 만큼, 네 몸속에 있는 마나는 계약파기로 인해 모든 것이 소멸될 것이다.’
‘뭐라고!’
어이가 없었다.
반지를 끼지 않으면 그와의 관계가 재정립되는 것만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마나 자체가 소멸될 것이라니! 한마디로 계약 상 공급자로서 마나의 공급을 끊어버리겠다는 의미였다.
‘네 부모가 무엇을 바랄 것인지 잘 생각해라.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반지를 끼고 있는 한, 나는 너의 일부일 뿐이니까.’
그 말과 함께, 붉은 눈빛의 마왕은 허공 속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