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43화 (43/166)

#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샤크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으응?”

잠시 눈을 감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을 뜨고, 아리온의 말을 들은 것이니까.

샤크론은 꽤 긴 시간을 이야기한 것 같았는데, 상황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일행은 아까처럼 계속 샤크론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어떻게 샤크론의 몸에서 오러가 나올 수 있는지… 숨기고 있는 게 있지, 샤크론?”

아리온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이렇게 동료들이 뭉쳐 싸우는 일에 앞서, 서로간의 불신이나 비밀이 있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생활까지 터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술에 관련 된, 그것도 오러를 쓸 줄 아는 동료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아리온….”

샤크론은 갈등에 잠겼다. 말하지 않기에는 너무 정도 많이 들고, 가까워진 동료들이다. 이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사라는 것은 제국 공통의 혐오적 관심사에 해당한다.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흑마법사는 싫다고들 한다. 그런 인식이 팽배한 현실에서 과연 동료들이 자신의 과거를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서로 숨기고 지내는 거라면, 이번 훈련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비록 어색한 출발이었긴 했지만 그래도 난 샤크론과 가까워지고 있다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맞아, 샤크론. 슈타인 기사단의 유일한 젊은 피, 우리 넷은 우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잖아!”

패커스가 아직도 목숨이 붙어 꿈틀거리는 오우거의 심장에 칼을 한 번 더 꽂으며 말했다.

[푸욱]

“꾸웩.”

잠시 오우거에게 쏠렸던 시선이 샤크론에게로 다시 향했다. 샤크론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좋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어? 언제까지나 비밀로 할 수 있어?”

샤크론은 마음을 독하게 품었다. 만약 자신의 과거에 대해 함구하지 않는다면, 오러의 힘으로 철저히 응징할 생각이었다.

비록 동료들이라고 해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버린 부모님에 비견할 수는 없다. 잔인해보이지만, 자신을 도울 수 없는 존재라면 죽이는 게 나았다.

“난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아. 게다가 이미 우린 한 배를 탄 존재잖아. 물론 제로스 대장님까지 합해서.”

아리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패커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대련에서 진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지만, 설마 그런거에 마음을 돌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카트라 역시 똑같았다.

샤크론은 믿음에 찬 동료들의 표정을 보며, 마음을 굳혔다.

“좋아, 말해줄게. 나는 말이야….”

[키르르르륵]

바로 그 때였다. 이미 목숨이 끊어져있는 오우거의 몸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벌레들이 내는 울음소리 같았다.

[쩌억]

갑자기 오우거의 몸이 쫙 갈라지더니, 검은빛의 딱지를 가진 곤충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당황한 것은 오우거의 바로 옆에 있던 패커스였다.

“아앗! 이, 이게 뭐야?”

“물러서! 어서 이쪽으로 와!”

샤크론이 손을 흔들며 패커스를 불렀다. 아리온과 카트라는 자신의 옆에 있었지만, 패커스만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아리온이 검날을 바로 세우며 대응할 자세를 취했다. 어림잡아 수 백 마리는 되는 듯 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밟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종속충(從俗蟲)인가? 이것도 흡성 계열의 사술인데….’

샤크론은 벌레들을 바라보며, 예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책에서 분명 본 적이 있는 곤충이었다.

종속충(從俗蟲).

자신에게 마나를 부여 한 시전자의 지시만 따르는 마충(魔蟲)으로 마인드 컨트롤과 디스 힐링의 기능을 수행한다. 불에 매우 약한 것이 특징이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충은 숙주를 선택하면, 어떻게든 몸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몸을 파고들어가 혈관에 위치하는 순간, 새끼를 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종속충의 활성화이다.

이렇게 되면 목표물은 가수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속충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그러면 시전자는 종속충을 이용하여 목표물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종속충은 그 안에서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시전자의 조종이 원활해 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부여받은 마나를 지속적으로 내뿜으며, 시전자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기억을 더듬어 사실을 알아 낸 샤크론은 재빨리 검을 들지 않은 왼손에 파이어 볼을 캐스팅했다. 검으로 때려잡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였고, 밟아 죽이는 것은 위험한 처사였다.

자칫 잘못하면 종속충의 접근을 허용, 몸에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종속충이야. 절대 접근전을 벌여서는 안 돼.”

“아앗! 그런데 샤크론, 네 왼손에 불이 붙었어!”

“아차!”

샤크론이 탄성을 질렀다.

마법을 쓸 줄 아는 사실만은 숨기려 했던 샤크론이 무의식중에 마법을 캐스팅해버린 것이다. 아직 쓸 줄 아는 마법은 파이어 볼 밖에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동료들에게 샤크론이 마나가 있음을 증명해준 꼴이 되어버렸다.

“파이어 볼…?”

“대답은 나중에 할게. 하앗!”

아리온의 물음을 뒤로한 채, 샤크론은 파이어볼을 오우거의 몸을 향해 날렸다. 종속충의 외피는 매우 얇아서, 약간의 열기로도 충분히 녹일 수 있었다.

[프츠츠츠]

아니나 다를까, 파이어 볼 한 번에 90%가 넘는 종속충이 몸에서 나오다 녹아버렸다. 샤크론은 재차 파이어 볼을 캐스팅 하며, 마무리를 위해 시전했다.

“오오오오!”

눈 앞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벌레들을 바라보며 패커스가 탄성을 질렀다. 그 자리에는 검은 핏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후우. 종속충이 왜 오우거의 몸속에 들어있는 거지?

샤크론이 파이어 볼 캐스팅으로 인해 약간 불이 붙었던 토끼의 귀를 훅 불며, 의문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난 그 사실보다 샤크론이 파이어 볼까지 보여줬다는 게 더 궁금한데.”

아리온이 물었다. 아리온의 시선은 오우거의 시체를 향하고 있었지만, 말은 분명히 샤크론을 향해 하는 것이었다.

“좋아. 이미 모든 걸 봤으니, 내뺄 수도 없겠지. 나도 아직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이야기 해 줄 수 있어.”

“음.”

진중한 분위기가 흘렀다. 때마침 옆에 놓여있던 바위에 걸터 앉은 샤크론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정한 동료라면 이 이야기는 죽는 날까지 비밀이 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샤크론이 사람을 잘못 본 게 될 것이다.

“난 오러를 쓸 줄 알아. 그리고 너희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마나도 가지고 있어.”

샤크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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