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슈타인 기사단의 전지훈련
“종료 1분 전! 모래시계의 모래가 모두 떨어지면 그 이후로 오는 놈들은 다 무효다! 어서 뛰어라!”
근 이틀 만에 들어보는 슈타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위엄이 서려있었다. 기사들이 사냥을 떠난 이틀 동안 그는 무엇을 그리도 열심히 했는지, 갑주 전체가 흙투성이였다.
“야, 뛰어! 1분 남았대! 어서!”
사방에서 기사들이 갑주를 철렁이며 뛰어왔다. 어떤 기사는 갑주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체중이 앞으로 쏠려 구르기 자세(?)로 집합지를 향해 오기도 했다.
물론 샤크론 일행은 일찌감치 첫 번째로 달려와서, 다른 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내가 이틀 동안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다들 알고 있겠지? 팀들은 각각의 줄을 맞추어 정렬하고, 주머니를 꺼내도록 한다. 제군들의 주머니에 역겨운 오우거의 냄새가 가득하길 바란다.”
슈타인의 말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샤크론이 눈을 돌려, 대충 짐작을 해보니 50개도 채 넘지 않는 듯한 주머니가 수두룩했다. 빵빵한 샤크론의 주머니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기사들의 주머니는 헐렁했던 것이다.
“헉헉헉….”
다행히도 시간이 늦어, 결과 무효처리가 되는 기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5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전지훈련(희소성이 높다는 이야기다)인데 이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13조 도착했습니다. 전원 도착, 90명입니다!”
인원 보고를 맡은 기사가 거수경례를 하며 슈타인에게 상황을 보고하자, 슈타인이 만족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좋아. 도중에 부상을 입거나, 집합이 늦어 낙오되는 사람은 없군. 만족스럽다. 자, 그렇다면 각 조 별로 자신들의 실적을 보고하도록 한다.”
슈타인이 자신의 오른쪽에 달린 빈 가죽 주머니를 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슈타인은 적어도 100개 이상의 실적은 올렸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협회에 등록 된 카다르 기사단의 평균 획득량이 188개, 서열 4위의 페르네스 기사단이 평균 124개 정도이니 그 정도는 가볍게 넘길 것이라 생각했다.
“1조. 대표자 이름과 개수를 보고해라.”
“1조. 대표자 마르코스 진입니다. 총 합계, 78개입니다.”
“뭐라고? 78개? 겨우 39마리밖에 못 잡았다는 이야기인가? 자네 기사 맞아? 정규기사가 맞냔 말이야!”
“죄송합니다.”
1조의 보고에 슈타인은 실망으로 가득 찬 소리를 내질렀다. 1조는 샤크론 일행 다음으로 젊은 청년들이 모여있는 팀이었다. 그런데 예상 평균을 훨씬 밑도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네 사람이서 36시간 동안, 39마리의 오우거를 잡았다. 이동시간과 탐색시간을 고려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성적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처음이니까 간단히 혼내는 것으로만 그치겠다. 다음에도 이런 실적을 내놓을 때에는, 내가 직접 널 기사단에서 제명하겠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마르코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물러서자, 슈타인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믿었던 몇몇 유망주들 중에 첫 번째는 그렇게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다음은 2조. 앞서의 예를 따라 보고해라.”
“2조. 대표자 발렌시아 크리스 입니다. 총 합계, 82개입니다.”
“다음!”
슈타인에게 100개 이하의 수는 가치를 논할 필요가 없는 수였다. 그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다음을 외쳤다.
“3조. 대표자 에르난데스 테오도르입니다. 총 합계, 84개….”
“다음! 100개 이하의 성적을 거둔 조는 알아서 지나가라!”
슈타인은 아예 평균치 미달의 조는 보고를 나중에 듣기로 했다. 들을수록 분통이 터졌다.
기나긴 행군을 견디고 훈련에 참여한 것 까지는 정말 좋았지만, 실적이 형편없으면 결과적으로 소용이 없는 게 전지훈련이었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단장님.”
슈타인의 앞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사들이 지나갔다. 죄송하다는 말만이 거듭 되자 슈타인은 정말 아무도 평균에 도달하지 못했는 가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죄송합니다.”
“22조. 대표자 샤크론 케네스입니다. 총 합계, 248개입니다.”
“내가 100개 이하는 보고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48개를 실적이라고 내미는 건가!”
[쾅!]
샤크론의 보고를 48개로 잘못 들은 슈타인이 탁자를 내리치며 벌떡 일어서서 샤크론에게 화를 냈다. 앞서의 모든 조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알고 그냥 지나갔는데, 샤크론이 아무렇지도 보고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닙니다, 단장님. ‘이백 사십 팔’개입니다.”
“뭐라고? 다시 말해 보게.”
“22조. 대표자 샤크론 케네스입니다. 총 합계, 248개입니다.”
“우와! 248개라고?”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248개라면 카다르 기사단의 평균 수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였다. 이 평균수치라는 것도 카다르 기사단 내에서, 자체적으로 정한 참가조건을 만족하는 6년 차 이상의 기사들이 일구어낸 성적이다.
그런데 기사단에 들어온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샤크론과 동료들이 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을 낸 것이다.
슈타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샤크론에게 말했다.
“주, 주머니를 꺼, 꺼내 봐. 봐봐봐!”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어졌다. 이 정도 나이에는 많아야 100개정도일 뿐이라는 게, 슈타인의 추측이었기 때문이다.
“단장님의 기대에 못 미치지 않을 까 두렵습니다.”
이런 걸 반어적 어법이라고 하던가? 생일잔치 때, 잔뜩 선물을 준비해 와서는 ‘별로 준비한 게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후두두둑. 후두두둑. 두둑]
오우거의 귀로 빵빵하게 채워진 주머니가 계속해서 귀를 뱉어냈다. 어찌나 꽉꽉 눌려져있었는지, 짓눌려저 푸르게 염색이 되어버린 것도 있을 정도였다.
“우와아….”
어떠한 말 한마디 없이 기사들의 탄성만 이어졌다. 자신들의 실적에 비했을 때, 최소 2배는 넘는 양의 성과물이었다.
“내가 직접 세 보겠다. 어디 보자. 하나, 둘… (중략) 이백 마흔 여덟 개.”
10여 분 가량을 자신이 직접 세어 본 슈타인은 정확히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서야,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248개면, 카다르 기사단의 최상위권 기록인 250개와 비슷한 숫자였다!
“단장님. 이게 제 실력입니다. 어떠십니까? 이 카트라가 만들어 낸 성과란 말입니다! 푸하하하!”
카트라가 허리춤에 팔을 끼고는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자 옆에서 패커스가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며 말을 이었다.
“장난도 정도껏 해라! 단장님, 저희 팀이 만들어 낸 실적입니다. 아직도 기대에 못 미치는 숫자인가요?”
“아, 아니다. 훌륭하다! 아리온, 샤크론.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이렇게 많은 수의 오우거를 잡다니. 믿을 수 없어.”
“오우거 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저희들이 모두 잡은 겁니다. 기사는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훗.”
아리온이 긴 머리를 휘날리며 샤크론에게 살짝 미소를 짓자, 샤크론도 윙크로 응수했다.
“훌륭해. 이건 기사 협회에 보고하기만 해도 커다란 이변이 될 거야. 기사단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도 될 것이란 말이다!”
“와아아아아!”
슈타인의 외침에 성과 보고로 잔뜩 기가 죽어있던 기사들이 이에 질세라 소리를 질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슈타인의 기분을 띄워주고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정말이지 눈치 하나는 빠르게 돌아가는 기사들이었다.
“훌륭해, 정말 훌륭해!”
Chapter 6
기사가 어떤 방식으로 훈련에서 실적을 올렸든 간에, 그것을 묻지 않는 것은 일종의 불문율과도 같다. 그래서 슈타인은 샤크론 일행에게 일체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사흘이 걸려 돌아온 수도 카다르의 슈타인 기사단청. 90명의 기사들과 슈타인이 단청으로 돌아오니, 이전의 행군에서 탈락한 기사들의 제각기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부족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는 것으로 기사들과 슈타인을 맞이했다.
슈타인은 우선 도착하자마자 모든 기사들에게 이틀의 휴식을 공식적으로 허가하는 증서를 써 주었다. 대부분의 기사단이 전지훈련 이후, 사흘에서 나흘을 쉬는 만큼 슈타인도 그 예를 따르려는 것이었다.
다만 슈타인 기사단은 참가자가 적고, 훈련 이후의 정리가 비교적 쉬워 이틀의 휴가면 충분했다.
“자, 모두에게 48시간의 휴식을 허락하겠다. 단, 이번 훈련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올린 샤크론의 조는 나를 따라 오도록 한다.”
슈타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득 띄우고서는 샤크론과 그 일행을 불렀다.
지금까지 슈타인 기사단에서 200개 이상의 성과를 올린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만족감은 더더욱 고조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야… 역시 기사는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 단장님이 우리를 대하는 게 예전과 엄청 달라졌어.”
카트라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슈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장난기 많은 자신을 애물단지 보듯 여겼던 슈타인이, 지금은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기사는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게 맞는 말이긴 하지. 그런데 너는 해당사항이 아니잖아?”
아리온이 익살스런 말투로 카트라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그러자 카트라의 얼굴이 또 다시 굳어버렸다.
“너… 당하고 싶냐?”
“아, 아니. 제발 그것만은…”
카트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엉덩이를 내미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아리온이 기겁을 하며 양손을 휘저었다. 카트라가 방구를 뀔 때면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재수 없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곤 했기 때문이다.
“제발 강조 좀 하지 말란 말이야.”
카트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리온이 답했다.
“알았어, 알았어. 어쨌거나 조만간 황제를 보게 될 텐데, 샤크론의 느낌은 어때?”
“어허! 황제 폐하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고, 황제라니! 아리온, 말조심 하도록 하게. 그건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언제 흘려들었는지 앞에서 걸어가던 슈타인이 뒤를 홱 돌아보고는 아리온을 야단쳤다.
네오시오 가문의 황족 계승 이후에 벌어진‘황제 신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추가된 제국 법조문 99항의 글을 보면, ‘국가와 황제, 황족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언행을 했을 시, 그 경중에 관계없이 징역형 이상의 처벌을 선고한다.’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
아리온이 슈타인의 꾸짖음을 듣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활짝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아리온의 성격 상 반발을 예상했던 슈타인은 ‘아리온, 예의 있게 행동하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하려했던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덕분에 그의 말은 이상하게 꼬였다.
“아리온, 예의 있게 행동하지 못… 하면 안 되지.”
“예?”
“아,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
슈타인은 어색한 분위기만을 만들어준 채,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갔다.
이에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다 생각한 샤크론은 아리온의 물음에 답했다.
“황제가 누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황제가 누군지는….”
“역시 너도 그 놈을 생각하는 거지?”
“그래.”
아리온은 샤크론과 자신이 하나의 공감대로 묶여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일을 바로잡기 위해 움직이는, 또 왜곡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몇안되는 동료들 중 하나라고.
하지만 샤크론은 그런 의미에서 테스타노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복수의 굴레, 샤크론에게 세상의 구원 따위를 꿈꿀 여유는 없었다. 테스타노에 대한 증오는 복수심이 만들어 낸 산물일 뿐이다.
서로 목표하는 것은 같으나, 이유는 다른 현실이었다.
“자, 다 왔다. …… 별관이다.”
“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슈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별관이라고 하는 듯 했다.
“테스타노 대공작 각하의 별관이다.”
순간 샤크론과 일행 모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 잡담 ……………………………
리메가 거의 끝나갑니다. 1권 후반부는 리메라기 보다 문맥 수정이 75% 정도입니다.
제가 쓸데없는 표현을 많이 써서 글 흐름을 잘 끊어먹더군요. 예를 들면 뭐뭐했다는 것을 알았다 --> 뭐뭐 했었다는 것임을 알았음이다. 이런 식으로 -_- 참 고질적인 문제더군요.
마저 교정보면 내일 중으로 1권 분량의 연재는 끝입니다. 생각보다 진행이 좀 빠르네요. 2권 연재는 빠르면 내일 모레부터 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저희 출판사(제가 계약한)에서 책이 나왔습니다. 스카이, 헬리언 이라는 책인데 매우 재미있습니다. 헬리언은 솔져, 명왕전기의 작가이신 우각님이 쓰신 것입니다. 재미는 제가 보장하고요, 스카이는 소재가 매우 흥미롭고 흡인력이 강합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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