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46화 (46/166)

# 007. 제국에 드리우는 먹구름

# 007. 제국에 드리우는 먹구름

Chapter 1

“대공작 각하께서 이번 전지훈련에서 큰 실적을 올린 기사들을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데려 온 것이야. 황제폐하를 뵙기 전에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시고 싶다 하셔서.”

“아니….”

샤크론이나 일행 모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사석에서 테스타노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들어가시기에 앞서 무장을 해제해주시겠습니까?”

별관의 문 앞에서 경비병의 제지를 받은 네 사람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어, 경비병에게 주었다.

“어?”

칼을 넘겨주며 경비병을 바라보았던 샤크론은 철갑주의 어깨부분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소용돌이와 흡사하게 그린 무늬에 세세하게 글자를 새겨 넣었는데, 보통 마법진이 아닌 듯 했다.

“자, 들어가시지요. 대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니 어깨뿐만 아니라 갑주 전체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구름이 만들어 낸 그늘에 가려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고도의 실력을 바탕으로 새겨진 마법진이 확실해 보였다.

“자, 들어가도록 하세. 제국 제일 마법사라는 위치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 조금이라도 서두르는 게 좋아.”

“샤크론, 가자.” 계속해서 갑주를 주시하고 있는 샤크론을 아리온이 끌다시피 이끌었다.

‘별관의 일개 경비병에게 저런 마법진을 부여한단 말인가?’

샤크론은 아리온을 따라 걸어가면서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단순히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경비병에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마법진을 새겨준 것 같았다.

“샤크론.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 봐? 라칸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추릴 수 있어. 어서 고개를 돌려. 겉은 한없이 부드러워 보여도 놈은 살인병기야.”

패커스가 억지로 샤크론의 고개를 돌렸다.

라칸의 얼굴을 보면 전형적인 호남형의 얼굴이었다. 약간 각진 얼굴에 건강미 넘치는 까만 얼굴. 은색의 단발에 푸른 눈을 가진 평범한 사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럴 리가. 그냥 경비병 같아 보이는데.”

“마법진을 보고도 모르겠어? 저기 새겨진 마법진은 전부가 7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진만 새겨져 있어. 게다가 갑주의 다섯 군데에 마나석까지 박혀있지.”

“마나석까지!”

때 마침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라칸의 갑주를 비추었다. 그러자 등에 박힌 마나석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라칸의 몸을 감쌌다.

“이제 알겠어? 예전에 테스타노가 널 평가하겠다고 했던 것이 바로 저 놈과의 결투였다는 걸.”

[끼이이이익]

그 때였다. 아프란나무(카다르가 원산지인 강화목재 나무)로 만들어져 매끈매끈해보이는 별관의 문이 안에서 밖으로 열렸다.

이에 일행의 관심이 열리는 문으로 모두 쏠렸다.

“흐읍!”

문이 활짝 열림과 동시에 샤크론을 압도하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샤크론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느껴지는 기운의 압박을 옆으로 흘려냈다.

“환영하네. 슈타인 기사단의 영재들이라. 슈타인 단장님, 정말 그렇습니까?”

“예, 대공작 각하. 예상을 뛰어넘는 걸출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규정 및 측정 상의 오차는 없었겠지요?”

“기사의 이름을 걸고 말하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왜 자네는 고개를 돌리고 있는 거지?”

네 사람을 둘러보던 테스타노의 눈이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샤크론에서였다. 다른 기사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있는데 샤크론만 유독 몸을 돌리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침을 잘못 들이키는 바람에 기도가 막혀서… 콜록콜록.”

‘전보다 더 강해진 마기가 느껴진다.’

샤크론은 기침하는 시늉을 하며 대충 둘러댔다. 그와 동시에 계속해서 그를 죄어오는 마기를 버텨냈다.

다른 동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것이, 자신만이 느끼는 기운인 듯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구면인 것 같군. 기사단을 방문했을 때, 유일하게 고개를 버젓이 들고 있었던 청년이었던 것 같은데? 하하하. 그 때는 겁을 주듯 말했지만, 본심은 아니었어.”

테스타노가 웃음까지 곁들여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흑마법사 테스타노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적어도 어딘가에 숨겨진 어둠의 기운이 포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괜찮습니다. 대공작 각하께 누가 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스럽습니다.”

‘우선은 의심을 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게 좋겠지.’

일단 모든 의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샤크론은 고개를 푹 숙이고 진심이 담긴 듯한, 조금은 떨리는 말투로 테스타노에게 말했다.

“개의치 말도록 해.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져 가는 일이니까. 자, 여기서 머뭇거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 248개의 기록이라면, 충분히 만나 봐도 될 재목인 것 같으니까!”

“감사합니다.”

카트라가 고개를 더욱 숙이며, 감사의 예를 올렸다. 역시 기사로서의 예의가 인체의 ‘무조건 반사’보다 더 빨리 튀어나오는 카트라였다.

“자, 네 사람들은 대공작 각하를 따라가도록 해. 내가 네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까. 대공작 각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슈타인 단장.”

“그럼 전 이만.”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올린 슈타인은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테스타노가 마음에 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슈타인 기사단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질 듯 했다.

[끼이이익, 쾅]

문이 닫히고, 네 명의 기사와 테스타노만이 남았다.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고. 테스타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내 뒤를 따라오게. 그리 오래 이야기를 하지 않을테니,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

“예.”

테스타노가 앞장서자, 샤크론을 제외한 세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후우.”

이에 샤크론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자, 여기 앉도록 하게.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의자니까 굳이 신경 쓸 것은 없어.”

테스타노의 말에 네 사람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사실 갑주를 걸친 상태에서 그대로 온 것이라, 온 몸에 먼지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앉기를 망설이고 있었는데, 테스타노의 말이 들려온 것이다.

“자, 각자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하네. 딱딱하게 할 필요는 없어. 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야.”

“저는 패커스 류미르 라고 합니다.”

“카트라 프릭스입니다.”

“아리온 슈바르츠입니다.”

“샤크론 케네스입니다.”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들어, 예를 올리는 방식에 맞추어 네 사람이 자신을 소개했다. 샤크론은 이번에도 자신의 성을 바꾸어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케네스 가문이라면 마법사 가문으로 유명한데… 기사가 있었다니?”

테스타노가 왼쪽 눈을 찡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부분의 가문이 자신의 가업을 잇는 만큼, 마법사 가문에서는 마법사가 배출되기 마련이다.

물론 예외가 있긴 하지만, 꽤 드문 경우라 할 수 있었다.

“기사의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기사의 로망을 이루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샤크론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속으로 ‘침착하게,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하며, 테스타노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떨려오고, 숨막히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최대한 진정하려 애썼다.

“그러한가? 하긴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가문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시대니까. 내가 자네들을 부른 건 별다른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야. 다만 황제폐하를 뵙기 전에 그 면면을 보고 싶었던 것뿐이지.”

“예.”

“기록 서류를 보니 네 사람이 속한 조가 다른 조에 비해 월등한 실력을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카다르 기사단의 상위 수치보다 높게 나왔더군. 슈타인 단장이 조작을 했을 리는 없고….”

“조작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카트라가 말했다. 기사들의 실적을 두고 조작이라니?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알아, 알아. 그럴 리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쨌거나 그 정도 실력이면 슈타인 기사단에서 썩히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네. 서열 5위의 기사단은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 게 세상이니까.”

“…….”

일행은 침묵했다. 아무리 슈타인 기사단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기사단의 단원으로서 자신의 기사단에 회의를 갖는 건 좋지 않은 자세였다.

물론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사단을 떠날 수는 있다. 다만 기사단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은 마음으로만 끝내야 하는 것이다.

“황제 폐하의 앞에 서게 되면 간단한 격려와 함께, 제안을 받게 될 거야. 실력 검증도 되고, 유능한 인재인 만큼 나는 자네들이 근위검사나 혹은 카다르 기사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샤크론,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예?”

“근위검사나 카다르 기사단으로 가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순간 샤크론은 잘못 들었나 했다. 카다르 기사단은 단원들의 나이 평균이 26를 웃돌고, 제국의 엘리트 기사들만 들어가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자신들을 보내주겠다는 건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근위검사의 자리는 근위기사 바로 아랫 단계. 하는 일은 근위기사에 비해 비중이 낮았지만, 이것도 무시 못 할 지위의 자리였다.

샤크론은 어떤 대답을 할 까 하고 고민했다. 카다르 기사단으로 가게 되면, 좀 더 심도있는 검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근위검사가 된다면, 자기가 그토록 열망하고 바라고 있는 근위기사의 자리에 매우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대답을 두고 생각하기를 약 10여 초. 테스타노의 재질문이 들려왔다.

“샤크론?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대공작 각하, 저는 근위검사의 자리가 더 마음에 듭니다. 단, 슈타인 기사단을 떠난다는 것이 좀….”

“걱정 할 필요는 없어. 근위검사의 경우, 소속 기사단은 바뀌지 않으니까.”

“음….”

샤크론에게 있어 검술은 부수적인 기술이었다. 지금까지는 검술을 수련하며 살아왔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몸 속에 흐르는 피는 마법사의 피였다. 그것도 흑마법사의 강력한 피.

그런 그에게 검술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카다르 기사단 보다, 마법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근위검사가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렇다면 패커스의 생각은 어떤가?”

“전 카다르 기사단으로 가고 싶습니다.”

“카트라는?”

“저 역시 패커스와 같습니다. 좀 더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제국의 기사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카트라 답지 않은(?) 명언이었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준비된 멘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테스타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을 것임은 분명했다.

“아리온은?”

샤크론이 궁금해 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과연 아리온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샤크론이 지금까지 아리온과 함께 지내오면서 그에게 느꼈던 감정은 ‘나에게 딱 맞는 동료다.’ 라는 것이었다. 패커스와 카트라가 좀 경망스러운 면이 있었다면, 아리온은 침착하고 차분한 자신의 성격과 어울렸던 것이다.

“저는 근위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정형화 된 검술은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당돌한 청년이군. 카다르 기사단의 검술을 정형화된 것이라고 여기는 건가?”

테스타노가 특이하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만 말아올려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려도 한참 어린 청년의 패기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제게 맞는 검술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정형화 된 검술은 정형화 된 기사를 만들어내는 것 밖에 못 됩니다. 이건 카다르 기사단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 있어 카다르 기사단의 검술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좋아. 그럼 두 사람은 근위검사의 자리가 마음에 들고, 두 사람은 이적을 원한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테스타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샤크론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표정과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패커스나 카트라는 마냥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럼 이 정도로 폐하 알현에 관련 한 이야기는 끝내도록 하고… 간단하게 티르(녹차의 일종)나 한 잔 하겠나?”

“대공작 각하께 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대공작이라고 거리감을 두지 말라니까 그러네. 말 한마디에 목을 치는 그런 얼빠진 사람은 아니야. 굳이 원하지 않은다면 강요는 하지 않겠네. 나도 바쁘니까 말이야.”

카트라의 겸손한 말에 테스타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샤크론은 이 모든 것이 그의 가식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카트라는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리온, 패커스, 샤크론. 괜찮지?”

“으음….”

“거기 세실 있느냐?”

“예, 나으리.”

“티르 다섯 잔만 타오너라.”

“예, 나으리.”

세실이라는 흑색 피부의 하녀는 테스타노의 말에 머리를 직각에 가깝도록 숙이며, 뒷걸음질 하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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