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8. 아리온의 과거
# 008. 아리온의 과거
Chapter 1
샤크론 일행이 네오시오 3세를 만나게 된 것은 보름이 지나서였다.
샤크론은 그 기간동안 꾸준히 하루에 다섯시간씩 짬을 내서 마시드 산에 올라, 안토니오를 만났다. 종속의 효과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샤크론은 그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더불어 마법 공식에 대해서 안토니오에게 수업을 받기도 했다.
생각보다 마법 공식은 간단했다.
정말로 지난번에 마왕이 말했던 대로, 그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생전 처음 접하는 수많은 공식들이었지만, 몇 번의 질문과 답변을 듣고 나니 익숙했던 것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샤크론은 수많은 마법을 미친 듯이 공부했다. 머리가 허락하는 한, 닥치는 대로 외우고 써 볼 생각이었다. 8서클의 그릇을 가진 샤크론이다. 이 정도쯤은 무난히 소화할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은 자신했다.
전격마법인 라이트닝 볼트, 3서클의 치료마법인 힐링(Healing), 4서클의 화염계열 마법 파이어 월(Fire Wall), 마법공격에 대해 장벽을 형성시켜주는 마나 쉴드(Mana Sheild) 등 다양한 마법을 익혔다.
이런 백마법은 물론이고, 4서클의 저주계열 흑마법인 마인드 컨트롤과 디스 힐링 역시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전격계열 흑마법 액시드 레인(Acid Rain)도 배웠다.
샤크론은 안토니오에게서 많은 지식을 얻어내길 기대했지만, 안토니오는 자신에게 필요한 마법들만 보유하고 있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이게 마법이라는 것인가? 왜 이렇게 단순하게 느껴지는 거지? 전혀 거부감도 들지 않을뿐더러, 어렵지도 않아. 이게 정말 4서클의 마법이란 말인가?’
“파이어 월!”
샤크론이 자신의 정면에 놓인 나무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파이어 월의 수식 계산에서 캐스팅, 캐스팅에서 시전까지는 2초 이상이 걸리지 않았다.
기존의 마법사들이 수식 계산에서 시전까지 5초 가량 걸리는 것에 비교할 때, 이것은 놀라울 만한 성과였다.
[화르르르륵]
나무를 중점으로 파이어 월의 수인이 터지자, 양쪽으로 균등한 속도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약 10m 가량을 번진 불길은 활활 타오르며 주변의 풀들을 집어삼켰다.
“퍼펙트 매직 미사일!"
카다르 제국에서 규정하기를 마법의 이름 앞에 ‘퍼펙트’가 붙는 경우는 하나의 마법이 아닌, 마법 여러 개를 시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두 번 이상의 연속 캐스팅으로 여러 다발의 마법을 시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좀 더 복잡한 식이 유도되어야 하는 것으로 4서클의 마법 ‘퍼펙트 메이커(Perfect Maker)’의 수식이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다.
퍼펙트 매직 미사일은 1.5초도 되지 않아 수식 계산에서 시전으로 이어졌다. 10개의 다발로 나뉘어져 생성 된 매직 미사일은 불이 집중적으로 타오르는 거점을 향해 날아들었다.
[슈우우우우… 화라락]
화마와 풍마의 대결. 결과는 풍마의 승리였다. 효과적으로 거점을 공략하여 공기를 날려버린 매직 미사일은 성공적으로 파이어 월의 진화를 마쳤다.
“여어, 샤크론! 황성에서 연락이 왔어. 지금 근위기사들이 단청에 도착했다고!”
“아앗, 깜짝이야!”
갑자기 뒤에서 들이닥친 패커스의 모습에 샤크론은 가슴이 철렁함을 느꼈다. 다행히도 아직 흑마법에 관련 한 전격마법을 시전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패커스가 보기라도 하면 큰일 날 터였다.
“매직 미사일, 멋있던데? 그런데 검을 들고 싸우는 기사에게서 마법이라니…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음, 근위기사들이 왔다면 서둘러야 겠네. 빨리 내려가자.”
“그래.”
패커스의 말을 대충 얼버무린 샤크론은 단청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 이상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네 사람은 신속하게 황성으로 출두하도록 전하는 바이다. 제국의 지존이신 황제폐하의 말씀이신 만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예,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20분 내로 준비를 마치고 나오시오. 황제 폐하의 배려로 황성 앞까지는 말을 타고 가게 될 것이오. 자,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정문으로 나오기를.”
“예.”
근위기사의 표정은 차분하고도 무뚝뚝해보였다. 하긴 일개 기사들에게 미소나 배려 따위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제국을 향한 임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니까.
“이 때를 대비해서 체인 메일을 준비해 두었으니, 입고 가도록 해. 자네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지, 암.”
슈타인은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자신의 기사단에서 저런 인재들이 나온 것도 기뻤고, 이로서 입지가 크게 강화된 슈타인 기사단의 현실도 기뻤다.
물론 그들의 행보를 볼 때, 더 이상 슈타인 기사단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안타깝긴 했다. 하지만 능력있는 후진을 양성해 낸 기쁨을 그것이 억누를 수는 없었다.
“야, 단장님께서 이렇게 까지! 정말 감사드립니다.”
카트라의 얼굴 표정이 슈타인과 완전 판박이었다. 체인 메일이라는 말에 카트라의 얼굴은 일찌감치 활짝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입는 것이라고는 고작 경갑주나 훈련용 철갑주 뿐이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더 했을 것이었다.
“황제 폐하를 뵙는 자리야. 소홀해서는 안 되지. 제로스는 요즘 경비대의 업무가 바빠져서, 찾아오진 못했지만 축하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네.”
“아, 저에게 말입니까?”
카트라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슈타인이 고개를 매우 강하게 저으며 답했다.
“아니, 아리온과 샤크론에게 말이야. 자네 둘에게는 전할 말이 없냐고 물었더니, 엉덩이에 힘이나 주지 말라고 전해달라더군.”
“뭐라고요! 정말 제로스 대장님은 맨날 왜 저희를 차별하시는 건지.”
패커스와 카트라가 소리쳤다. 말은 화난 것 같이 해도, 제로스가 일부러 한 농담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하하. 어쨌거나 잘 된 일이야. 그럼 패커스와 카트라는 이적을 하고, 아리온과 샤크론은 근위검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건가?”
“예, 변동 없습니다. 근위검사가 되면 적어도 카트라의 냄새랑은 이별할 수 있으니 저로서는 반가울 뿐이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네 사람은 서로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서로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서 연이 끊기는 것은 아니지만,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에 비견해보면 서로의 관계가 소원해질 수도 있는 법이었다.
“잘난 체만 하는 아리온님께서 어떻게 되시는지 지켜봐야지! 난 카다르 기사단으로 가서 더 많은 실력을 쌓고, 기사의 길을 걸을 테니까.”
“흥, 좋을 대로 하라구.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안 될 녀석은 안 되기 마련이거든!”
“하하하. 어쨌든 기회가 닿는대로 수시로 만나자. 내가 유일하게 정 붙인 녀석은 너희들 밖에 없는 것 알지?”
패커스가 다정한 목소리로 세 사람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말했다. 그 말에 아리온과 카트라, 샤크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열심히 노력해서 제국의 기사들을 호령하는 소드 마스터의 자리, 더 나아가 그랜드 마스터까지 나아가자!”
“그랜드 마스터가 무슨 장난인 줄 알아!”
카트라의 말에 이어지는 슈타인의 목소리. 그리고 충격.
[빡]
머리를 짖궂게 짓누르는 슈타인의 꿀밤에 카트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기분 좋게 소리를 질렀건만, 돌아온 건 꿀밤이라니.
“꿈은 클수록 좋잖아요. 단장님, 이만 가 볼게요. 오늘 떠나는 건 아니니까, 울지 마시구요.”
“그래! 잘 다녀오도록 해!”
슈타인의 배웅을 뒤로 한 채, 샤크론 일행은 근위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에 올라탔다.
네 마리의 말들은 하나같이 잘 조련 되어 군살 없이 튼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게다가 잘 손질 된 은백색의 털은 마치 전설의 말이라고 하는 ‘유니콘’을 연상시키는 듯 했다.
“따로 채찍질을 하거나 충격을 줄 필요는 없소. 황성 안으로 향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으니, 그냥 균형만 유지하면 될 것이오. 그럼, 이랴!”
근위기사가 말의 엉덩이를 대고 툭 치자, 일제히 네 마리의 말이 질풍과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호위의 임무를 맡은 근위기사 여섯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네 명의 미남들과 그 뒤를 따르는 은발의 근위기사들. 마침 길을 따라 걷던 처자들은 뜻하지 않은 미남들의 행렬에 잠시 말을 잊은 채, 넋을 잃었다.
“가자! 가자!”
기분이 한층 올라있는 패커스와 카트라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리온과 샤크론은 다소 어두워보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더 큰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워워.”
“크르릉. 크르릉.”
백마가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할 무렵, 바로 그 때 샤크론 일행은 황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황실의 인증을 받은 백마를 타고 왔기 때문에, 일체의 검문절차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말에서 내린 네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황성 안의 풍경에 신기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먼저 그들의 이목을 끈 것은 대리석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10층의 제단 꼭대기에 놓여있는 기마상이었다. 60도에 가까운 각도로 다리를 치켜들고 있는 백마의 위에는 강렬한 인상의 기사가 조각되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공을 들여서 만든 기마상에 불과한 듯 보였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기사가 붙잡고 있는 칼에 칼날이 없고, 그 대신 짙은 오러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조각 된 오러가 아닌 실제의 보랏빛 오러가 말이다.
“와! 오러가 어떻게 저기서….”
“꿈의 마법진이지. 오러를 무한으로 발현시켜 줄 수 있는 오러의 마법진. 저것은 카트라 네가 그렇게도 존경하는 에르치오 파네스의 기마상이야. 저 오러는 안에 박힌 마나석을 근원으로 해서 전설의 마법사 ‘마흐르 파텐샤’가 새긴 마법진을 통해 발현되고 있는 거지.”
“와, 정말이야?”
“괜한 걸로 거짓말 하겠냐?”
샤크론도 처음 듣는 정보였다. 베토스에서 세상과 단절되다 시피 살아온 샤크론에게 마흐르 파텐샤라는 인물은 아무래도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 기마상의 모델이 에르치오 파네스인 것도 몰랐다.
“자, 따라 오시오. 우선 응접실로 가서 무장해제와 간단한 검문조치를 한 후, 테스타노 대공작 각하와 함께 황제폐하를 뵙게 되실 것이오.”
“그렇습니까?”
“질문은 하지 마시오. 안전함이 판별되지 않은 외부인에 대해서 우리 근위기사들은 일체 질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소.”
“그런데 지금은 왜 대답했답니까?”
“…….”
막상 그러고 보니 대답할 것이 없었던 건지, 그 예를 따르기로 한 건지 근위기사는 입을 다문 채 응접실을 향해 걸었다.
질문을 던진 패커스도 조금 어색했는지, 머리를 긁적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또각 또각]
군화의 밑창이 부드러워 소리가 잘 나지 않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에서는 한걸음을 내딛을 때 마다 소리가 났다. 매우 청아하면서도 깨끗하게 울리는 공명음은, 샤크론 일행으로 하여금 ‘역시 이런 곳이 황성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대리석의 바닥을 지나, 녹색 카펫이 깔린 통로를 지나가고 나니, 이번에는 카달락(대리석과 비슷하나 색이 푸른 색이다)으로 만들어진 방이 하나 나왔다. 바로 응접실이었다.
“자, 이곳부터는 예정 절차에 따라 황실에서 당신들을 안내할 것이오. 그럼, 이만.”
“안녕히 가십시오!”
“…….”
근위기사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샤크론 일행을 쳐다보았다. 물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어이없는 웃음만을 입에 머금었을 뿐.
“안녕하십니까. 외부인들의 몸 수색 및 안전여부를 판단하는 황실의 검문사 이그노스입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시면, 검문은 금방 끝납니다. 먼저 의심을 받을 만한 무기를 소지하고 계시거든, 미리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검문사요? 그런 것도 있나요?”
“황제 폐하를 해하려는 불순분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 진 직책입니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고위급의 인사인데다가 직접적인 몸수색을 꺼리기 때문에, 마나를 이용해 기의 흐름을 읽어내고 무기를 감별해야 하죠. 아이고, 서두가 길어졌군요. 어쨌든 양손을 벌리시고, 검사에 임해주십시오.”
“아, 예. 예.”
이그노스의 말에 네 사람은 양팔을 들어올렸다. 체인 메일의 무게 때문에 팔의 모든 근육을 써야 했지만, 힘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잠시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간지러워도 좀 참아주십시오. 5초면 됩니다. 하앗!”
마법 주문 대신 기합을 넣자, 이그노스의 손에서 네 개의 마나 덩어리가 생겨났다. 그가 손을 휘젓자, 네 개의 덩어리는 갈라져 네 사람의 몸속을 파고들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야릇한 기분에 네 사람이 몸부림을 칠 무렵, 벌써 시간은 5초를 지나버렸다.
“자, 끝났습니다. 두 번째 분의 속옷이 철제인 것을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군요.”
“야, 카트라! 너 설마?”
“자, 잠깐. 여긴 공적인 곳이야. 나중에 이야기 하자.”
“카트라 이 새끼, 정말 망사… 읍!”
가까스로 패커스의 폭로를 막은 카트라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그노스에게 인사하며, 재빨리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테스타노 대공작 각하께서 곧 오실… 아, 저기 오셨군요.”
이그노스가 문 밖의 형체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샤크론은 일찌감치 그가 뿜어내는 이질적인 기운을 통해, 등장을 예측하고 있었다.
“왔군. 검문사, 이상은 없었지?”
“예, 대공작 각하.”
“자, 네 사람은 날 따라오도록 하게. 황제 폐하와의 알현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니 개의치는 말게. 이미 모든 결정을 폐하께서 내리셨으니.”
“예.”
테스타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그노스를 비롯한 모든 하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의 힘이 얼마나 황실에서 큰 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샤크론은 또 한번 테스타노의 힘을 실감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과연 테스타노가 자신을 두고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들은 모르는 두 사람만의 심리전이 어쩌면 지금부터 펼쳐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황제가 머물고 있는 어전회의실까지 가는 거리는 길었다.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황제가 머무는 곳인 이상, 수많은 암살자들로부터 위협을 받기 쉽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통로를 복잡하게, 그리고 길게 만들어서 만일의 사태에도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해야했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게 되면, 그 동안 마법사나 근위기사들이 달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변동 사항은 없다고 들었어. 예정대로 일주일 후에 두 사람은 카다르 기사단으로 이적될 것이고, 나머지는 근위검사의 자리에 임명될 거야. 이것은 모든 기사단에 적용되는 특례인 만큼, 일체의 공정성 이의제기나 문제시 삼는 것을 금하겠네. 알겠지?”
“예.”
어차피 샤크론 일행의 입장으로 볼 때는 뜻하지 않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었다.
“대공작 각하, 오셨습니까?”
이윽고 어전회의실 앞에 당도하자 근위기사 둘이 앞을 막았다. 비록 테스타노가 대표로 있기는 하지만, 형식상의 검문을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수고가 많군. 안전은 내가 보장할테니 어서 통과하도록 해주게. 정 믿지 못하겠다면 검사해보도록 하고.”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근위기사가 문을 쭉 밀자,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문이 활짝 열렸다.
입구를 따라 황제가 앉아있는 옥좌까지 연결 된 붉은색의 카펫. 이것에는 카다르를 상징하는 드래곤의 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오, 테스타노 경이 말한 인재들이군. 어서 오라, 제국의 유망주들이여.”
“샤크론 케네스, 고귀하신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옵니다.”
“아리온 슈바르츠, 고귀하신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옵니다.”
“카트라 프릭스, 고귀하신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옵니다.”
“패커스 류미르, 고귀하신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옵니다.”
“그래, 테스타노 경에게 이야기는 들어서 잘 알고 있네. 이번 전지훈련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지? 나이에 맞지 않게 뛰어난 검술을 가진 청년들이라고 슈타인이 보고서에 작성해 올렸더군.”
“그렇습니다, 폐하. 특히 샤크론이라는 이 청년의 나이는 스무 살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 사람 중에 가장 검술이 뛰어나다고 하니 제국의 보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테스타노의 칭찬에 샤크론은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칭찬을 받은 부끄러움에 그런 것이 아니라, 테스타노의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운 탓이었다.
“지금까지의 관례에 따라, 그리고 테스타노 경의 추천에 따라 카트라 프릭스와 패커스 류미르는 카다르 기사단의 이적을 허용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아리온 슈바르츠와 샤크론 케네스를 황실 직속의 C급 근위검사 직에 임명하오.”
“황제 폐하의 덕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옵니다.”
네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테스타노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에 새긴 임명장을 가져와서는 네 사람 앞에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늘 이후로 샤크론 케네스를 포함한 세 명의 기사들에게 황제의 명으로 아래와 같은 조치를 시행하도록 한다. 이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 지어다. 먼저 카다르 기사단에 … (중략) … 샤크론 케네스를 C급 근위검사에 임명한다. 이상.”
C급 근위검사라면 근위검사의 다섯 계급 중에 네 번째에 해당하는 위치다. S, A, B, C, D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네 번째라면, 대부분 25세 이상이 되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S급이 40세 정도가 되고 말이다. 물론 똑같은 조건이라면 대부분 S급의 근위검사보다는 D급의 근위기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국은 언제나 자네들과 같은 인재들을 발굴해서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있네. 그러니 언제나 실력 배양에 힘쓰도록 하고, 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라!”
“예, 폐하!”
네 사람이 기사의 예를 표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잠시 몸을 담았던 슈타인 기사단은 이제 끝이다. 이제 두 사람은 더 큰 기사단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나가게 될 것이고, 자신과 아리온은 근위검사의 자리에서 기사의 길을 걸을 것이다.
샤크론은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두려운 마음 역시 감출 수 없었다. 근위검사가 된 이상, 테스타노와 가까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자신에 대해 얼만큼 비중을 두고 대하는 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적어도 그의 관심권 안에 자신이 존재하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일주일의 정리기간을 주도록 하겠네. 카트라와 패커스는 일주일 후에 카다르 기사단의 단청을 찾아가서, 단장을 직접 만나도록 하고. 아리온과 샤크론은 황실 근위사령부에 가서 근위대장을 만나보면 될 것이야. 알겠나?”
“예, 대공작 각하.”
* 다음 편이면 1권이 마무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