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철저한 패배, 무너지는 어둠의 꿈
“하앗! 타앗!”
[푸푹, 푹]
[빡]
날카로운 절단음과 둔탁한 격타음이 이어지고, 경비병과 기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에드손은 어느 정도 오러를 뿜어낼 줄 아는 엑스퍼트 급의 소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경비병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무자비하게 자신을 파고드는 수 십 개의 검날이었다.
[챙챙! 챙챙!]
“이, 이런 젠장!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 뭐, 뭐지?”
“에드손! 끝이 없어. 마치 언데드(Undead)가 된 것처럼, 죽지 않은 이상 달라붙고 있어. 크아아악!”
에드손의 곁에서 싸우던 카스키가 무자비하게 밀려드는 검을 막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파고 드는 검날에 무참히 찢겨졌다. 그것은 이윽고 새로운 감염을 불러왔고, 카스키 역시 초점을 잃은 언데드처럼 되고 말았다.
“제기랄….”
“으악!”
“크으으으… 으윽.”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쓰러져갔다. 죽어가는 기사들만큼이나 언데드들도 수없이 죽어나갔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제 살 깎아먹기였다.
테스타노에게는 전혀 손해될 것이 없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내분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툭. 툭. 툭]
에드손의 주변을 지키던 기사들을 모두 제거한 언데드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에드손을 향해, 천천히 주변을 감싸며 다가왔다. 아직도 수 백의 적이 남아있었다. 에드손은 점점 약해져가는 오러에 한숨을 내뱉었다.
“흑마법사가 버젓이 살아있었다니….”
그것으로 끝이었다. 검을 휘두를 힘조차 잃어버린 에드손은 주저할 것 없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검날을 당겼다.
[푹]
“크윽….”
테스타노의 개가 되어 살아가는 것 보다야,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에드손의 최후였다. 거창한 명분을 가지고 일어났던 봉기와 다르게, 싱겁기 짝이 없는 마지막이었다.
Chapter 2
봉기를 일으킨 기사들은 총 2000여 명. 그 중에 500명이 황궁으로 향했고, 또 500명은 근위사령부로 향했다. 근위사령부는 수도의 근위병력들을 관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반군이 중요 점령 거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근위사령부만 장악한다면 수도의 방위 기능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다.
“근위검사와 근위기사들을 모두 사령부 내로 재배치하고, 모든 문을 봉쇄한다. 전원 무장을 확실하게 갖추고, 대기하라!”
갑작스런 반군의 봉기에 근위대장 로네스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근위대장 답게 차분히 상황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사령부 외곽의 병력들을 모두 철수시켜 수비병력으로 전환하는 한편, 황궁으로 전령을 보내 사실을 알리도록 했다. 더불어 대규모 마법에 대비하여 15년 전, 근위사령부 주변에 설치했던 마법진을 재가동시켰다.
약 10여 년 간, 마법진이 발동된 적이 없어 마나석이 제 힘을 내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곧 마법진은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은 외부의 마법에 대해 저항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유사시에 힐링을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 된 백마법 계의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마나석이 10개 이상 박혀있어, 4서클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고급 마법진이었다.
“근위대장님! 제국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저희들의 마음을 이해해주십시오! 원로회의의 분들은 나라에 해를 가하시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잠시 협조만 해주시면, 이 소요는 금방 잠잠해질 것입니다!”
문이 닫히고, 접근이 어려워지자 반군에 가담한 기사들이 밖에서 외쳐댔다. 무턱대고 뛰어들자니 마법진이 가동되고 있는데다가, 근위기사들까지 주둔하고 있어 큰 피해가 예상되었다.
이래저래 피해를 각오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들은 회유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 리가 없었다.
“너희들이 무엇인데 황실의 직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근위사령부를 넘보느냐? 게다가 무슨 권한으로 제국 최고 마법사 테스타노 경의 목숨을 취하려는 것이냐?”
근위대장의 우렁찬 목소리는 높은 성벽을 타고 밖으로 이어졌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주변의 사람들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한편, 제로스와 아리온, 샤크론은 서쪽 후방에서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테스타노는 역적입니다. 황제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나라의 질서를 해치려드는 간신입니다. 누명을 뒤집어씌워 대신들을 내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놈을 두고 볼 수는 없잖습니까?”
“황궁을 향해 검을 빼드는 행위는 역적질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어디까지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근위대장께서 협조만 해주신다면 이 사태는 금방 진정될 것입니다.”
“좋다.”
예상과 다르게 쉽게 승낙을 하자, 주변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근위기사들의 표정이 일제히 바뀌었다. 반군을 상대로 이렇게 쉽게 협조할 줄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정말입니까?”
“다만 근위사령부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나서, 그 때 질서를 바로잡든지 해라. 너희들이 모반이 행동으로 드러난 이상, 어느 한 쪽이 죽어야 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왜 테스타노를 두둔하려 하시는 겁니까!”
문 밖에서 원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로네스의 표정은 의연했다.
“제국에 망조가 들은 건가… 기사들이 국정에 개입하다니… 기사들은 검을 따라 움직이는 법. 세상일에 휘둘릴 그런 것이 아닌데….”
“도와주십시오!”
“들어올테면 들어와라. 말리지는 않겠다. 역적 모의나 하는 더러운 칼이라면 얼마든지 상대해주겠다. 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뿐이다.”
문 밖의 기사들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근위검사 정도면 기사들이 상대할 수 있을 테지만, 근위기사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소드 마스터 엑스퍼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근위기사들은 일반 기사들이 마땅히 볼 그런 상대가 아니었다.
“역시 안 되겠다. 황궁으로 가자.”
“…….”
로네스가 기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테스타노의 전횡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더불어 원로회의의 사람들과도 친분이 꽤 깊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근위대장이고, 황실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적인 감정에 이끌려 공사를 그르칠 수는 없다. 단, 황궁으로 향하는 그들을 저지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정말 세상이 어지럽긴 어지러운 모양이야. 그렇지?”
로네스가 힘 빠진 얼굴로 옆에 있던 근위검사에게 물었다.
“…….”
그러나 함부로 세상일을 논할 수는 없는 법. 근위검사는 침묵을 유지했다.
“하긴 쉽게 말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 이제 근위대장이라는 자리도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군… 정말 그만 둘 때가 된 건가?”
적막이 흘렀다. 로네스는 그렇게 서서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