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1. 철저한 패배, 무너지는 어둠의 꿈
한편, 천 여명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테스타노가 병사들과 동물 사냥을 나갔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그 뒤를 추격하고 있었다.
때 아닌 사냥 소식에 의아한 것은 반군들이었지만, 크게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가끔씩 사기 진작 차원에서 마법사나 기사들이 무리를 이루어 동물 사냥을 나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기사들은 목검을, 마법사들은 매직 미사일만을 사용하곤 했다.
“근위사령부나 남문으로 밀고 들어간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쪽에서 본대의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걸릴 듯 하고, 저주받은 자들도 북쪽 멀리서 내려올 테니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말입니다.”
“음… 남문으로 밀고 들어간 동료들은 지금쯤 철수했겠지. 우리의 명분 상, 테스타노 이외의 인물은 제거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테스타노 추격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카다르 기사단의 최고 검술 교관이었던 레노만 교관이었다.
“테스타노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사실 좀 의심스럽습니다. 누가 뭐래도 9서클의 대마법사가 아닙니까?”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 백이 넘는 마법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어. 마나의 흐름을 끊는 방해 마법진만 생성해도, 테스타노는 마법 시전에 차질을 빚게 될 거야. 한 두 명도 아니고, 200명이야. 그것을 명심하라고.”
“하긴 그렇습니다. 놈이 그것으로 우왕좌왕할 때, 우리가 놈의 가슴팍에 검을 박아주면 그만이겠지요.”
“마법사는 그래서 단순하다는 거야. 주변의 마나를 끌어 모으지 못하면, 곧 자신의 마나를 다 소모해버리고 말거든.”
레노만은 승리를 자신했다. 주변에서 마나를 끌어 모은 후, 유도과정을 거쳐 마법을 시전 하는 마법사들의 특성 상, 마나의 소통을 방해하는 마법진은 매우 유효한 것이었다.
만약 테스타노가 대단위마법을 시전하려 하는데, 마나의 응집이 지체된다면 캐스팅 자체가 무위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그러면 그 틈을 타고 기사들이 달려들면 되는 것이다. 이래뵈도 레노만은 오러를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소드 마스터 반열의 기사였다.
“라시엘,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어?”
레노만은 마법사들의 총 지휘를 맡고 있는 6서클의 마법사 라시엘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테스타노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에는 마법사를 통한 마나 흐름의 포착이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거의 꼬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만.”
“이미 놈도 알아챘겠지?”
“제가 알아 챈 이상, 테스타노 정도라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기의 흐름이 강해지는 것을 보면, 방향을 전환한 것 같기도 하고….”
“아, 저깁니다!”
그 때 였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언덕 너머로 한 떼의 군마가 몰려오는 게 눈에 보였다. 많이 잡아도 백 명 남짓. 선두에서 백마를 타고 오는 검은 로브의 사내가 테스타노인 듯 했다.
“준비해라! 마법사들은 지금부터 가능한 한 반경을 크게 넓혀 마법진을 형성한다.”
“별도의 과정 없이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뿐이니, 문제없습니다. 맡겨주십시오.”
라시엘이 오른손을 들자, 기사들의 뒤를 따르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각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공기 중에 흘려, 테스타노의 마법 시전을 방해하려는 의도였다.
이것은 디스펠은 아니었으나 시전 자가 많을수록 마법 캐스팅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고의든 아니든 타인의 마나를 끌어다 쓸 경우에는 고도의 정제 과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마나를 흘려버리면, 테스타노의 마법 시전은 엄청난 차질을 빚을 터였다.
“마법사는 약 열 명 가량으로 보이는 군. 테스타노의 조심성이 이렇게 없을 줄은 또 몰랐지. 우리를 유인해내기 위해 의도한 것이라고 해도, 이건 전력 차이가 너무 나는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9서클의 마법사라고 해도, 대다수의 기사와 마법사가 함께 공격을 하게 되면 견뎌내기가 힘든 법입니다. 게다가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녀석들도 경비병 급으로 보여집니다.”
라시엘의 말에 레노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테스타노가 대단위마법을 시전하게 되면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마법사들의 마법 방해진이나 기사들의 접근만 어떻게든 이루어지면, 테스타노는 순식간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레노만은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대체 너희 반군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그 때 언덕 너머에서 테스타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림잡아 1km는 족히 넘는 거리였지만, 소리는 언덕을 타고 넘어와 차가운 음성으로 그들의 귀에 들려졌다.
“역적의 목이다. 제국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무모한 사람들의 목을 치는 마법사는 죽어 마땅하다. 이 나라는 기사 가문들이 만들어 낸 국가다. 마법사 따위가 최고의 자리에서 국정을 논할 그런 곳이 아니란 말이다!”
레노만은 큰 소리로 외쳤다. 레노만 역시 기사 가문의 자손으로서 테스타노의 전횡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게다가 원로회의의 가문 대부분이 귀족 기사 가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의욕적으로 이번 일에 적극 가담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번 원로회의 해산 사태를 기사들의 권위에 대한 테스타노의 도전이라 여기고 있었다.
“어리석은 놈. 비리를 저지른 관리를 붙잡아 감옥에 처넣고, 질서를 바로잡은 것이 죽어 마땅한 일이란 말이냐? 이유가 어쨌든 간에, 수도 내에서 이런 행위를 벌이는 것은 국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정 불만이 있거든, 황성 밖으로 나가서 황제 폐하께 정식으로 항의서를 올리라는 것이다.”
“황제 폐하의 곁에 네 놈이 붙어 있어, 이래라저래라 할 것인데 어찌 그것을 믿겠느냐? 네 놈의 사악한 마기에 이끌려, 황제 폐하께서는 과거의 성스러움을 잃으셨다. 네 놈을 하루빨리 제거해야, 제국은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딜 가도 한심한 놈이 있다더니, 역시 이번에도 똑같구나. 한 가지 경고 정도만 해주자면, 황궁을 넘보려 했던 기사들은 모두 죽었다. 그것을 명심하도록.”
“뭐라고?”
테스타노의 말에 레노만은 순간 움찔했다.
황궁으로 파견 된 기사는 500명. 에드손을 비롯한 모두가 실력 있는 기사였다. 그 정도라면 경비병의 제지를 돌파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근위사령부 앞 역시 기사들이 몰려갔으니, 지원군으로 근위검사나 기사들이 오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죽었다니? 레노만은 순간 자신의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테스타노의 거짓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일체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건 제국의 건국 당시 나르만 태제께서 공언하신 것들 중에 하나이자, 제국의 기둥을 받치는 원리니까.”
“그렇다고 역적을 처단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테스타노,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 여기서 끝내도록 하자.”
“좋을 대로 해라.”
테스타노는 입가에 가득히 자신감에 찬 미소를 흘렸다. 표정의 동요 없이 그대로였다. 마치 올 테면 오라는 식이었다. 주변에 쫙 늘어선 경비병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모두 준비한다. 테스타노만 제거하면 황제 폐하께선 우리의 뜻을 받아주실 것이다. 이건 기사로서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기사로서 역적을 처단하는 것만큼, 명예스러운 일도 없다!”
“와아아아아아!”
“마나의 흐름을 방해하는 마법진인가? 아, 이런. 캐스팅이….”
테스타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수인이 맺혔다 풀리고, 맺혔다 풀리는 것을 본 레노만은 본능적으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