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57화 (57/166)

# 002. 나이블로의 소드

Chapter 2

“그만! 저주받은 자들이 저 앞에 있다.”

“아아아….”

임시로 근위대를 비롯한 기사, 마법사 연합군의 총 지휘를 맡게 된 로네스가 명령했다.

저주받은 자들. 200년 당시의 전투에 참가한 적이 있는 중년의 근위기사들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탄성을 뱉었다.

그 당시 많은 흑마법사들이 죽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증가했던 것이 바로 근위대와 정규군들의 피해였다. 항마 능력이 전혀 없는 정규군을 투입하기에는 흑마법사 연합의 규모가 컸기 때문에, 근위대와 마법사단이 당연히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흑마법사 연합의 마법사들이 호락호락 당할 성질의 자들이 아니었다. 물론 연합 소속이 아닌 흑마법사들은 제각각 각개격파 되어 목숨을 잃었지만, 거점을 중심으로 뭉친 흑마법사들은 얘기가 달랐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마법진을 설치하고, 경비병들과 근위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마법진의 파훼를 위해 마법사들을 이끌고 오면, 수 많은 전격마법을 뿌려가며 제거했다. 또, 흑마법사를 죽이기 직전까지 이르게 되면, 자신의 몸 자체를 산화시켜 자폭을 하고는 했다.

그러다보니 당시 1만을 육박하던 근위대의 병력은 사상 최고의 감소치를 기록하며 뚝뚝 떨어졌고, 이후 타국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고 나서야 그 감소량을 줄일 수 있었다.

1만 명의 병력들 중, 9천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던 흑마법사들의 투지. 지금까지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는 근위대의 기사들은 그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리온. 저주받은 자들?”

그 틈에는 샤크론도 당연히 있었다. 단, 그들은 근위검사였고 편입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근위검사의 지휘를 맡고 있는 제로스도 최후방에서 그들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저주받은 자들, 흑마법사를 말하는 거야.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흑마법사 연합의 마지막 생존자들.”

“뭐라고?”

흑마법사 연합이라 했다. 흑마법사 연합은 샤크론의 부모가 이끌었던 단체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들이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자신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라고?

샤크론은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번 반란에 흑마법사 연합이 관련되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자신들과 싸우게 될 지는 전혀 몰랐었던 그였다.

게다가 저렇게 많은 수가 아직도 살아남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만약 저들의 존재를 일찍 알았더라면, 자신의 과거를 되찾고 힘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텐데!

샤크론은 적의 편에 서서 싸워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보지 않았다면 그런 생각도 덜 들었을텐데, 그들을 보고 난 이상 복잡해지는 심사를 어찌할 길이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보면 저들이 가장 대표적인 희생자라고 할 수 있지. 테스타노의 욕심에 희생되어야만 했던….”

혹여 다른 사람이 들을까, 제로스는 작고 낮은 목소리로 샤크론에게 말했다.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일체의 행동을 금한다. 전군 대열을 정비하고, 언제든지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

로네스는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차례차례 전달했다. 눈앞의 적들은 자신도 경험한 적이 있는 흑마법사 연합의 생존자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로네스도 쓸데없는 유혈 전투는 원하지 않았다. 근위대는 자신이 아끼는 소중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비록 모르는 후배 기사들도 많았지만, 근위대라는 이름으로 뭉쳐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자식은 아니더라도 한 덩어리라 할 수 있는 기사들의 피를 보고 싶지 않은 게, 로네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멈췄습니다. 아직도 근위대장은 여전한 것 같군요. 20년 전에 보았던 로네스가 아닙니까?”

트루카스가 바스타드 소드를 검집에 꽂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로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발데스도 감회가 새로운지 계속해서 로네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때 근위대장으로 전쟁에 참가했었지. 그는 흑마법사들을 죽이면서 외쳤어. 내가 원하는 살인은 이런 것이 아니라고.”

“동정심이었을까요?”

“기사로서 정의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겠지. 적으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군.”

“어떻게 대응하실 겁니까?”

“대기상태 유지해. 나도 피를 흘리고 싶지는 않아.”

발데스는 검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대기상태임을 표시했다. 그러자 마법사들이 일렬로 늘어서서는 마법의 캐스팅 자세만 취한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휘이이이]

벌판을 가르는 한 줄기의 찬 바람이 모래먼지를 일으켰다.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한 모래가 소용돌이를 만들고, 그 소용돌이가 더 많은 모래들을 쓸어 담으며 하늘로 날려보냈다.

발데스는 모래가 만들어내는 형상을 바라보며, 죽은 맹주 부부의 뼛가루를 날려보냈었던 그 날을 떠올렸다.

“두 분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어. 정말로 민중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치려 하셨지. 테스타노에게 죽기 전까지도 그 분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어.”

“휴… 소문에 의하면 카렌 맹주께서 낳으신 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찾을 길은 없지.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맹주님 부부에 대한 정보는 그 당시에도 극히 제한적이었으니까. 만약 아드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든 도와야 할 텐데….”

“반군의 대장은 앞으로 나와라!”

그 때 근위대 측 진영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네스였다.

그러자 발데스가 약간 비뚤어진 갑주를 다시 고쳐 입고는, 오른손에 검을 쥔 채로 나가려 했다.

“발데스,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트루카스가 제지했다. 혹시나 유인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부르는 데 나가야지. 적어도 기사 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치졸한 계략 따위는 쓰지 않을 거야.”

“그래도 좀 위험해보입니다.”

“위험할 것 같으면 가지도 않아.”

트루카스의 제지를 부드럽게 밀쳐 낸 발데스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품고서는 나섰다. 마침 로네스도 호위 없이, 단신을 이끌고 벌판의 한가운데로 나서고 있었다.

[터벅터벅]

[휘이이]

발소리와 바람 소리가 교차했다. 두 사람은 바람에 흩날리는 긴 흑발을 내버려둔 채로 서로를 응시하며 걸었다.

발데스는 검은색의 망토와 갑주 그리고 군화를 신고 있었고, 로네스는 흰색의 망토와 갑주, 백색 군화를 신고 있었다. 명확하게 양쪽의 성격이 갈리는 그런 복장이었다.

서로간의 거리가 좁혀지고, 온몸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발데스와 로네스는 여전히 검에 손을 댄 채,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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