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59화 (59/166)

# 002. 나이블로의 소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결의에 가득 찬 함성을 질렀다. 그들에 눈 앞의 적은 흑마법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그들에게 있어서 흑마법사는 제국이 규정한 역적일 뿐이다.

로네스 같이 흑마법사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로네스와 다르게 의욕적인 표정이었다.

[척척척척]

기사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가 싶더니, 폭죽이 터지듯 넓게 산개하며 흑마법사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만, 기사들은 뒤에 있는 마법사들을 믿었다.

“각자 맡은 바 임무만 수행하면 된다. 엄호 조만 매직 미사일을 이용해 날 엄호하도록 해라. 전방의 적들은 내가 상대한다.”

“발데스 님 혼자서 저 많은 기사들을?”

트루카스가 말했다. 그가 발데스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유일한 기사인 그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맹주 자리는 거저먹는 게 아니지. 하앗!”

발데스가 마기를 양껏 뿜어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가 뿜어내는 마기가 강했던지, 그를 둘러싼 반경 3m 가량이 검은 기운으로 물들어버릴 정도였다.

“크하하하….”

발데스가 달려나가자, 대마법진 조의 흑마법사들의 눈빛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하에서 피눈물나게 준비해왔던 마법진, 어둠의 원(Circle of Darkness)이었다.

“좋아. 마법진이 발현되기 전까지 공격 조는 근위군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장거리 전격 마법을 퍼붓는다! 수적으로 우리가 우세하니, 반격할 틈만 주지 않으면 된다.”

어둠의 원은 일종의 차원 왜곡 마법진이었다. 상대가 죽지 않기를 원하는 흑마법사들이 자주 쓰는 마법진이었는데, 원 안의 공간을 왜곡시켜 타 차원으로 보내버리는 강제 이동성 마법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 약화 된 마법진으로, 마법진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상대를 보내버리는 마법이었다. 한마디로 살인의 목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트루카스는 이 마법진을 선택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발데스도 싫어하진 않을 터였다.

“혼자 나오는 건가? 달려 나가는 기사만 해도 백을 헤아릴 정도인데, 단신으로 상대하려 하다니.”

로네스가 호위 없이 혼자서 달려 나오는 발데스를 바라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지금 달려 나간 기사들은 C급 근위기사 이상의 수준을 가진 자들이었다.

저마다 3서클 이하의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마법진이 새겨진 갑주를 걸치고 있었고, 마법 검을 가진 기사도 여럿 있었다.

로네스는 그들의 실력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 다른 기사가 검사들은 후방에 배치해두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수가 많은 만큼, 대단위가 움직이게 되면 오히려 마법에 의한 사상자가 늘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로네스는 조용히 서서 싸움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미 하늘에서는 양쪽에서 시전 한 전격마법이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었다. 다만, 기사들에게 떨어지는 마법은 없었다.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는 것이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적으로 만나지만, 나중에는 동지가 되길 바랄 뿐.”

“저주받은 놈들과 동지가 되는 것은 치욕이자 모욕이다. 죽어버려, 저주받은 새끼야!”

“틀에 박힌 생각이 안타까울 뿐이군. 하앗!”

발데스가 자신의 옆구리를 찔러오는 기사의 칼을 가볍게 튕겨내며, 역으로 내지르는 검법을 펼쳤다. 그러자 날 끝을 통해 오러가 분출되면서 기사의 심장을 단번에 관통했다.

“크으윽….”

칼날도 아닌 오러에 가슴을 찔린 기사는 한마디 비명만을 지른 채,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쓰러졌다.

“미첼! 미첼! 이 새끼가…!”

“용서하지 않겠다!”

미첼이라는 이름의 기사가 죽었는지, 동료들이 격분해서는 발데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사들과 발데스의 거리가 좁혀져, 언뜻 보면 발데스 하나를 기사들이 둘러싼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트루카스의 지휘 아래, 엄호 조의 마법사들이 매직 미사일을 쏘고 공격 조의 마법사들이 전격 마법을 펼쳤지만, 근위군 쪽의 마법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극성의 상성관계를 갖는 흑마법과 백마법은 충돌하자마자 격한 반응을 일으키며 파쇄되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양쪽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워낙 이질적인 마법이 부딪치다보니, 쉽게 그 위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법이 수 없이 난무했지만, 정작 피해는 없고 발데스와 근위군 기사들이 힘을 다투는 상황이 전개 되었다.

“날 원망하지는 마라. 차라리 죽은 척이라도 하란 말이다.”

“동료가 죽었는데 죽은 척을 하라고? 네 놈을 베고 죽어도 죽을 거다. 받아라!”

“그럼….”

이번에는 네 명이었다. 네 명의 기사들이 사방에서 발데스를 덮쳐왔다. 저마다의 검법을 펼치며 달려드는 모습은 언제라도 발데스의 목을 날릴 기세였다.

[깡, 까깡! 깡! 스윽.]

달려들기도 전에 발데스가 검을 휘두르며 오러를 분출하자, 그 기운과 기사의 날이 부딪히며 쇳소리를 만들어냈다. 언뜻 보기에는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하는 것 같았지만, 엄연히 그것은 오러와 진검과의 승부였다.

“하아아압!”

오러의 분출과 함께, 발데스가 마기를 폭발적으로 분출시켰다. 그러자 흙으로 덮인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생기며, 기의 폭풍이 일었다. 그 바람에 달려오던 기사들이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끝내는 것은 한 가지. 생명의 근원을 끊는 것 뿐이다.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배려다. 날 원망하지는 마라.”

[푸푹. 푹. 푸푹. 푹]

발데스가 오러를 더욱 강하게 분출하자, 여러 갈래로 오러가 갈라지며 바닥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에 폭풍으로 쓰러진 기사들이 누운 상태로 왼쪽 가슴을 내주어야 했으며, 그들은 그 자세로 절명했다. 이번에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를 틈이 없는 단 한번의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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