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60화 (60/166)

# 002. 나이블로의 소드

“아아….”

로네스는 계속해서 쓰러지는 기사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것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발데스의 몸에 검을 쑤셔넣은 기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가 내뿜는 마기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기에 압도당한 기사들은 오러에 갑주와 심장을 내주며 죽어 나갔다.

명색이 근위기사였지만, 발데스 앞에서는 어린아이와도 같아 보일 정도였다.

발데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오러와 기 분출을 반복하며, 지치지 않고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근위군 측 마법사들이 체인 라이트닝 등의 마법을 기습적으로 시전 하기도 했지만, 발데스는 별다른 문제  없이 검을 움직여 마법 자체를 튕겨내 버렸다.

“역시 흑기사는 달라도 다르군. 같은 소드 마스터지만 저 사람은 진정한 소드 마스터임이 틀림없어.”

제로스가 여러 기사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발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사들이 죽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가 신경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합니다. 근위기사 급의 기사들을 저렇게 농락하다니… 안 그래, 샤크론?”

‘대체 이게 왜 이러는 거지?’

샤크론은 계속 반짝이는 반지를 바라보며 의문에 잠겨있었다. 그 덕분에 아리온의 말도 듣지 못하고, 계속 반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샤크론!”

“으응?”

아리온의 외침에 반지를 보던 샤크론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거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저길 봐봐. 근위기사들이 싸우지도 못하고 죽어나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다 전멸할 것 같아.”

“정말….”

샤크론은 느낄 수 있었다. 발데스의 마기는 샤크론에게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탁하지 않고 순수한 것이 테스타노와는 상반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근위대장이 퇴각을 결정하지 않는 이상, 전군 돌격을 명령할 것 같다. 대기해라. 가급적이면 저 흑기사와는 싸우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보기에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인 것 같구나.”

제로스가 아리온과 샤크론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끄덕임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안 되겠다. 마법사들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고, 근위기사와 검사를 비롯한 모든 병력은 공격에 나선다! 마법사들은 근접전에 약하기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만 하면 죽이는 것은 시간문제다!”

로네스가 외쳤다. 그도 마지막 각오를 굳게 결심한 듯, 의연한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한치의 떨림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제국의 미래를 위하여!”

기사들이 복창하며 나섰다. 이것은 샤크론이 소속 된 분대도 예외일 수 없는지라, 제로스와 아리온 그리고 샤크론 역시 전투에 나서야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피한다거나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확실한 승부를 내자, 발데스. 너의 그 마음은 잊지 않겠다.”

로네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날카롭게 날이 선 검을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조금씩 오러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국력 200년의 전쟁 이후, 이렇다 할 전투를 치러본 적이 없었던 로네스의 20년 만의 전투였다.

“드디어 몰려나오는 군. 바라던 바다. 가자!”

발데스가 공격 조의 흑마법사들을 향해 외쳤다. 이에 흑마법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달려 나오며, 파이어 볼과 라이트닝 볼트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공격 마법을 펼쳤다.

[샤아아아아]

모래 바람이 일었다.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모래 바람은 전장터를 휘몰아치듯 둘러쌌고, 그 안에서 양쪽의 숨막히는 혈투가 시작되었다.

발데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기사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겼다. 그의 오러는 보통 검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를 주입해서 오러를 튕겨내려던 수 많은 기사들의 검이 반으로 두 동강 났다.

이어서 발데스는 심장을 노리는 것을 잊지 않았고, 기사들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근위군 쪽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고도로 정화 된 백마법으로 무장한 마법사들은 계속해서 흑마법사들을 향해 다양한 공격을 펼쳤다.

흑마법의 퇴치를 위해 만들어진 5서클의 마법 클린(Clean)은 흑마법사들의 몸을 감싸면서,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수식 자체가 흑마법과 완벽하게 대조되도록 만들어진 이 마법은 흑마법사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마법이었다.

“끄아아아….”

클린에 걸려 든 흑마법사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몸이 산화하는 고통을 겪었다. 사정없이 몸을 파고 든 마법은 온 몸의 모든 통로에서 마나와 반응했고, 흑마법사의 몸은 모래성이 무너지듯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클린… 학살의 날에 수 많은 흑마법사들을 죽였던 마법이지. 아이러니하게도 마법을 만들어 낸 사람은 테스타노이고 말이야. 참 모순이야, 그렇지?”

“시끄럽다, 이 반동분자! 테스타노님은 제국을 진정으로 생각하시는 충신이시다.”

기사 하나가 발데스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검법을 전개해 왔다. 다른 여타의 기사와 다르게, 절도가 있고 힘이 실려 있는 것이 가전검법을 익힌 기사인 것 같았다.

“흠… 다른 놈들보다는 실력이 나은 것 같지만, 그래도 조무래기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겠구나. 원한다면 살려줄 수는 있는데.”

“기사가 목숨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기사가 될 자격을 잃은 것과 같다. 차라리 당신 같은 사람과 싸우다가 죽는 게 명예롭지 않을까?”

“패기 하나는 좋구나. 덤벼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주변에서 수십명의 마법사가 죽어 나갔다. 거의 소모전에 가깝게 펼쳐지는 마법전은 양측의 마법사 수만 계속해서 줄여나가고 있었다.

“간다!”

[깡. 깡. 깡!]

마법강화검(강제로 검의 내구성을 높임)을 들고 나온 모양인지, 발데스의 오러와 검이 교차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반으로 두 동강 나지 않았다. 발데스는 마법강화검이 일시적으로는 극강의 내구력을 자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공격 패턴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오러는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만큼 검과의 충돌로 힘을 흘리는 것은, 매우 지나친 낭비였다.

하지만 바로 그 때, 트루카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입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마법진의 완성이었다. 로네스를 비롯한 마법사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마법진, 어둠의 원이었다.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마법진이었기 때문에, 알아낼래야 알아낼 수가 없었던 마법진이었다.

[스파팟! 파팟!]

[찌이이익]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텔레포트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발데스도 오러를 뿜어내어 기세좋게 달려들던 기사를 밀쳐내고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뭐, 뭐지?”

로네스와 기사들은 상대의 돌발적인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로스도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어둠의 원이다. 이게 우리가 너희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일 것이다. 너희들의 이동 좌표는 제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 ‘에브리카’다. 그럼….”

트루카스가 미소를 지었다.

이어 마법진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로네스를 비롯한 원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우연스럽게도 일렬로 서 있던 제로스와 아리온은 원 안에 갇히고, 샤크론 혼자 원 밖에 위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샤, 샤크론!”

“아리온! 교관님!”

“젠장… 산화 마법진인가?”

“공간 이동 마법진인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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