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2. 나이블로의 소드
[스파파팟!]
아리온의 절망적인 한마디와 함께 공간이동이 일어났다. 육체가 고기 조각을 썰은 듯, 잘게 부서지며 가루로 산화하더니 하늘을 향해 빨려 올라갔다. 마치 한 줄기 연기로 타오른 것처럼 말이다.
마치 땅에서 하늘로 빛이 나아가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데에는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3초 후, 벌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황량한 바람만이 부는 곳이 되어버렸다.
“으응?”
순식간에 사라진 기사들과 동료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공간 이동 마법진에 걸려들지 않은 유일한 기사는 샤크론 뿐이었다.
발데스가 모두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트루카스에게 말했다.
“성공적으로 된 것 같긴 한데… 저 기사는 뭐지? 뒤에 있던 마법사들도 모두 걸려들었는데.”
발데스는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는 기사를 가리켰다. 아닌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샤크론 하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제거할까요?”
“아니, 그럴 것 까진 없다. 적당히 정신계 마법으로 제압하고, 잠시 정신만 잃게 하면 되겠지.”
그러자 흑마법사 10명 정도가 앞으로 나서더니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라이트닝 쇼크(Lightining Shock)였다. 라이트닝 쇼크는 목표 대상의 몸에 전류로 충격을 가해서,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게 만드는 마법이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전격 계열의 라이트닝 마법에 속한다.
[그르르르]
갑자기 지축이 진동하더니, 땅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샤크론도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뭐지?”
갑작스런 지진에 흑마법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균형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움직이는 땅은 서 있을 수 조차 없게 만들었다. 샤크론은 직감적으로 수상함을 알아채고는 전속력으로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달렸다.
“인사가 늦었군. 잘 왔다. 그래, 날 찾아왔나?”
“테스타노?”
하늘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데스는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목소리의 정체는 흑마법사의 원수 테스타노였다.
“죽지 않고 잘들 살아남았군. 명단에 없었던 자들인 것을 보면… 맹주 녀석이 숨겨놓았던 비밀병기인 모양이지?”
“흑마법사라고 해서 정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 네 놈은 정도를 벗어나 왜곡된 길을 걷는 것이냐?”
발데스가 테스타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테스타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양손에서 붉은 섬광이 빛을 발했다.
“우오오오오오….”
그 빛이 신호였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엄청나게 큰 입을 가진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와아악!”
수 십 마리는 족히 넘는 괴물들이 일제히 치솟아 오르자, 거의 붕괴에 가까울 정도로 땅이 꺼져 내렸다. 흑마법사들은 비행 마법인 플라잉(Flying)을 캐스팅하려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플라잉은 캐스팅조차 어려웠다.
“그르르르…”
[와각와각]
[우적우적]
[빠가각]
괴물들의 입질에 걸려든 흑마법사들이 가차 없이 물어 뜯겨졌다. 어떻게 마법을 캐스팅해 볼 새도 없이 물린 흑마법사들은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면서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고도의 훈련을 거친 이 괴물들은 의도적으로 흑마법사들의 손과 스태프를 집어 삼키는 공격으로, 그들의 반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설마 버서커 웜(Berserker Worm)?"
온 몸의 기를 극성으로 분출하며, 자체의 힘으로 몸을 띄운 발데스는 테스타노에게 물었다. 버서커 웜은 제국에도 몇 안 되는 몬스터로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워, 사냥 대상으로도 꺼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
몸길이 15m에 순수한 입의 크기만 5m. 1m는 족히 넘는 56개의 거대한 이빨은 그 자체만으로도 버서커 웜이라는 이름을 무색하지 않게 만드는 특징이었다.
버서커 웜은 주로 인간을 잡아먹으며, 때에 따라서는 트롤이나 오우거까지 잡아먹는 육식성 몬스터였다.
“종속충 앞에서는 버서커 웜도 개에 불과하지. 저 녀석들은 내 명령만 따르도록 되어 있어.”
“비겁한 놈. 몬스터를 이용해서 싸울 셈인가?”
“나를 상대로 1000명이나 끌고 온 네 놈의 발상은 비겁하지 않고?”
“망할 놈….”
버서커 웜을 상대로 흑마법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약 1초 정도면 어떤 마법이라도 캐스팅이 가능하지만, 버서커 웜은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흑마법사들의 몸을 물어뜯었다.
그들의 출현에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흑마법사가 목숨을 잃었고, 450명에 가까운 흑마법사가 손과 발을 잃어야했다.
“으아아아아!”
“내, 내 손이!”
“가, 간다. 체인 라이트닝!”
“퍼펙트 디스펠(Perfect Dispel)."
흑마법사라고 해서 고통에 초연할 수는 없는 법. 여기저기에서 고통으로 가득 찬 절규가 터져 나왔다. 몇 곳에서 캐스팅을 마친 흑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 했지만, 그것마저 테스타노의 디스펠 마법에 걸려 무산되어 버렸다.
[빠가각! 우적우적]
“크아아악!”
디스펠로 인해 마법 시전이 무산 된 흑마법사는 이어지는 버서커 웜의 공격에 몸을 물어뜯기고 말았다. 결국 그 역시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는 시뻘건 고기조각이 되어 떨어졌다.
“이름이 뭐지?”
테스타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그의 차가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잔혹의 미소였다.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날 죽일 자신이 있나?”
“자신이 없으면 오지도 않았지.”
“네 놈이 흑마법사 연합의 마지막 후계자냐?”
“쓸 데 없는 것만 묻는 군.”
테스타노의 물음에 발데스는 냉기가 가득 어린 말투로 답했다. 여기저기서 흑마법사들이 죽어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흔들릴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마저 그 틈에 휩쓸려 죽게 되고 말 것이다.
“좋아. 그러면 네 놈이 그렇게도 원하는 고통을 선사해주마. 저런 조무래기 흑마법사들은 버서커 웜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덤벼라, 흑마법사들의 한을 내가 풀어주겠다.”
“흐흐흐… 네 놈을 위한 마지막 예우 정도는 해 줘야겠지. 잠시만 기다려라, 곧 아래로 내려갈 테니.”
테스타노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공중에서 싸우게 되면 기사에 속하는 발데스가 힘을 쓸 수 없으니, 지상에서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테스타노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하강했다. 조금씩 조금씩… 이윽고 그의 몸이 땅에 닿았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의 땅이 잠잠해졌다. 그것은 오로지 발데스와 테스타노 사이에 국한 된 변화였다.
“한 수 양보해주겠다. 어디 맹주의 실력이나 한 번 보자.”
“양보 따윈 필요 없는데? 주둥이만 나불거리지 말고, 실력을 보여라!”
“그것마저 싫다면 어쩔 수 없군. 덤벼라.”
“하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