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63화 (63/166)

# 002. 나이블로의 소드

[툭]

상황이 돌변하는 바람에 근처의 숲으로 숨었던 샤크론은 때 아닌 벼락을 맞아야 했다. 파이어 볼을 얻어맞고 날아간 발데스가 샤크론의 바로 옆에 떨어졌던 것이다.

“아앗!”

갑작스런 등장은 샤크론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무것도 없던 옆에 떡 하니 사람이 하나 놓여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크으으으….”

“이, 이 사람은 아까 보았던… 아, 뜨거!”

피범벅이 되어 누워있는 사람을 보니, 방금 전까지 열심히 싸우던 그 흑기사였다. 검은 망토하며 느껴지는 기운이 흑마법의 기운이 분명했다.

샤크론은 그와 동시에 반지를 낀 왼손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에 화상을 입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크으으, 죽일테면 죽여라… 크으으.”

뼈가 완전히 부서진 것 같았다. 도저히 팔이고 다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나마 힘을 줄 수 있는 곳은 몸통과 머리뿐이었다. 발데스는 눈을 돌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기사의 갑주를 보았다.

기사단의 문양이었다. 어느 기사단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근위군 쪽 기사임이 확실했다. 아마도 이전의 마법진 공격에서 유일하게 걸려들지 않은 한 명의 기사였던 것 같았다.

“괘, 괜찮습니까?”

샤크론은 상대의 힘에 대한 위압감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어디까지나 같은 흑마법 계열의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동질성을 부여하는 듯 했다.

“젠장… 어서 죽이란 말이다… 크으윽.”

발데스는 손발이 묶여 어쩌지도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어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이다.

“당신… 정말로 흑마법사 연합의 맹주가 맞습니까?”

샤크론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나타나면서 더더욱 반지의 고통이 강해진 것을 보면, 그와 관계가 있는 듯 했다.

게다가 제로스는 그를 일컬어 연합의 맹주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부모님의 뒤를 이은 2대 맹주가 되는 셈이다.

“너 따위의 놈에게 말할 만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 않느냐… 어서 죽이지 않고 뭘 하느냐….”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발 대답해주십시오. 정말 흑마법사 연합의 맹주 맞습니까? 카렌과 메르헨이라는 1대 맹주를 섬겼던 분이 맞습니까?”

“그래… 맞다. 크으윽… 됐느냐?”

발데스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말이나 해두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고 말이다.

“저는 그 분의 아들입니다. 샤크론 오르네스. 지금은 대가 끊긴 오르네스 가문의 7대 독자란 말입니다.”

“내가 환청을 듣고 있는 건가… 허무맹랑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죽여라.”

샤크론은 발데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가 정말 2대 맹주가 맞다면, 부모의 과거에 대한 비밀을 풀어줄 수 있을 터였다. 어쩌면 자신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것입니까?”

“두 분은 마왕의 반지를 지니고 계셨다. 그게 있다면 몰라도… 크으으으….”

“이걸 말하는 겁니까?”

샤크론이 왼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세상의 빛을 받은 반지가 폭발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일련의 작용인지, 옆에 놓인 나이블로의 소드까지 빛을 냈다.

“아… 아니. 이, 이것은….”

발데스가 계속되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며 반지를 보았다. 확실했다. 반지는 마왕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3대 신성물에만 반응하는 나이블로의 소드가 반지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의 과거, 아니 부모님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과연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흑마법사들은 어디에 어떻게 살아남아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강해져서 부모님의 복수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제 부모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샤, 샤크론? 맹주님께서 낳으셨다는 그 아드님이 당신?”

“그렇습니다. 제가 그 분의 아들이자, 오르네스 가문의 7대 독자인 샤크론 오르네스입니다.”

“매, 맹주님! 여기서 이렇게 뵙게 될 줄이야.”

감격에 북받쳐 일어나려던 발데스는 뼈를 통해 전해지는 고통을 느끼며, 다시 몸을 뉘었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했는지, 기가 산만하게 흩어져 소멸하고 있었다.

설사 몸이 낫는다 하더라도, 예전의 힘을 되찾기는 힘들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당신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내 온 힘을 써서라도 당신을 치료하고, 여길 벗어나고 싶습니다.”

“쿨럭… 전 틀렸습니다. 생각보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헬 파이어 두 방에 이렇게 몸을 상할 줄이야… 전부터 맹주님의 아드님을 보면 꼭 드리려던 말씀이 있었는데… 드, 들어주시겠습니까?”

발데스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수 많은 기사들의 목숨을 거둔 발데스도 테스타노 앞에서는 무력했다. 얼마나 강한 존재이기에 소드 마스터 반열을 넘어서려 하는 기사조차 어쩌지를 못한단 말인가. 발데스는 누워서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양미간을 찌푸렸다.

“아…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건가….”

“이미 늦었습니다. 샤크론 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이 말을 전하기 위해 15년을 넘게 기다려왔습니다. 그 동안 간직해왔던 비밀을 이제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군요. 쿨럭.”

“으음….”

샤크론이 보기에도 발데스의 생명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샤크론의 감각은 발데스의 몸에서 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끼게 해 주었다.

몸속의 마기와 생명의 기운이 세상 속으로 빠져나오며 그 흐름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로… 맹주님의 고향 베토스에는 두 분이 마법을 연구하시던 지하통로가 있습니다. 그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넓은 방이 나오는데, 그 방에서 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두 분 밖에 모릅니다.

그 분들은 살아생전에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쿨럭. ‘오로지 나의 혈육, 그 대를 이을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자만이 이 곳을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너희들은 만약 우리가 죽거든, 이 사실을 전하여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야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군요… 베토스에는 꼭 가보셔야 합니다. 두 분이 이루어놓은 성과와 업적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혹시 두 분으로부터 마나 체인지의 시전을 받으셨습니까?“

샤크론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발데스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마나 체인지는 두 분이 이룬 성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내용입니다. 더 많은 미지의 마법과 사실들은 그 곳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 봉인을 풀 열쇠는 샤크론님 뿐입니다. 쿨럭쿨럭, 우욱!”

발데스가 가쁜 숨을 내쉬다가 강하게 기침을 토해냈다. 그러자 검붉은 핏덩어리가 함께 나오며, 주변을 피로 물들였다.

“아, 아앗!”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직 말할 게 더 남아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