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71화 (71/166)

# 004. 젠카의 두 번째 방문

그 사건이 있은 후, 아리온은 제로스의 관리 아래 황실 치료소로 후송됐다. 근위기사에게는 황궁의 치료소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리온이 실려가고 나서 제로스는 샤크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피를 토해 낸 자리에 남아있는 이상한 찌꺼기와 상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이에 샤크론은 아리온이 마셨던 와인에 커다란 벌레 한 마리가 들어있어, 그것을 삼키고 빼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대충 얼버무렸다. 정황으로 보아서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는 설명이었다.

그러자 제로스도 아리온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다음부터는 살펴서 와인을 마시라는 충고와 함께 휴게실을 나섰다.

샤크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음은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 * *

“오셨습니다. 폐하께서 알현을 허가해주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알았다. 폐하, 오크 족의 외교관이 방문했사옵니다.”

“어서 들라 하시오.”

“어서 드시라 해라. 이미 많은 대신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예.”

황제의 허가가 떨어지자, 경비병의 안내를 받으며 젠카가 어전회의실 안에 들어섰다.

카다르 식 전통 복장인 ‘카도르크’에 카다르 국기를 새겨 넣은 모자까지 쓰고 온 젠카의 모습은 영락없는 카다르 인의 모습이었다. 얼굴이 초록빛인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어떤 부족이나 국가를 대표해서 방문하는 외교관이 방문국의 전통복장이나 국기를 사용하는 것은 극친의 관계임을 의미했다. 다르게 말해서, 서로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하는 역할이기도 한 것이다.

젠카의 타란트 부족은 인간들과의 교류로 많은 이득을 보았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원했기 때문에 젠카는 그 여론을 받아들여 이런 복장을 선택했다.

“타란트 부족의 대표로 온 젠카, 고귀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젠카가 유창한 카다르 어를 구사하자 대신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오크어와 카다르 어를 배우고 자란 젠카다. 이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오오, 또 오셨구려. 제국과 같은 길을 걷기로 한 동지의 방문을 다시 한번 환영하오. 그래, 무슨 일이오?”

“무슨 일이야 있겠사옵니까. 양국의 친선을 돈독히 하자는 의미에서 온 것이옵니다.”

“흠,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꺼릴 필요 없소.”

“별 일 아닙니다만….”

젠카가 말끝을 흐렸다. 사실 요즘 타란트 부족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달란도르’ 왕국의 공격이 25년 만에 시작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실정이었다.

타란트 부족이 급성장하면서 달란도르 왕국을 위협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자, 왕국이 이에 위협을 느끼고 국경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5만의 철기대와 마법사들을 보낸 것이다.

순수 근접전을 고수하는 오크로서는 마법사들의 출현은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이곳저곳 떨어지는 다양한 전격 마법에 수 많은 오크들이 목숨을 잃었고, 두꺼운 갑주로 무장한 철기대에게 오크 전사들은 추풍낙엽이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6개월 전, 완공 된 ‘밀락’요새에서 힘겹게 왕국군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이것도 얼마를 버틸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달란도르 왕국의 침공 때문입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젠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제국이 정보 수집에 능하다고는 하지만, 외부인 출입이 극도로 통제되는 타란트 부족의 영토 정보까지 알고 있을 줄은 예상도 못했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요. 지원군을 원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직선적인 테스타노의 질문에 젠카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실제 방문 목적은 그러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덥석 이야기를 꺼내자니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것인가? 동맹국으로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오. 말해보시오.”

“사, 사실은….”

젠카는 결국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과 함께 이유를 밝혔다. 현재의 오크 전사들로는 당분간은 지켜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후에는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카다르 제국 이외의 국가들과는 적대 관계에 있는 절박함을 설명했다.

카다르 제국군의 도움이 있어야,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젠카는 자신의 의견을 계속해서 이야기해 나갔다.

“… 그래서 저희는 카다르 제국군의 지원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어떤 요구조건이 있으시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요구조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동맹국을 도우러 가는데 대가를 바라다니요. 다만 타란트 부족은 외부인 출입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하여 그것이 걱정입니다.”

테스타노의 말에 젠카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부족 전체가 멸하게 생겼는데, 통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밀락 요새로 향하는 지름길은 부족 영토의 정중앙을 가르는 대로였다.

젠카는 지원군을 그 쪽으로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지원군을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부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원군의 파견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에 그럴 수가 없지요. 지름길을 이용해서 지원군의 진격을 도울 생각입니다. 부족의 정예병 3만의 차출도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매우 다행스런 일입니다. 폐하, 동맹국으로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일입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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