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4. 젠카의 두 번째 방문
그 때, 대신들이 늘어선 자리에서 한 사람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자 황제에게 미소를 날리며 지원 승낙을 요청하려던 테스타노의 얼굴이 일순간에 돌변했다.
“아니스 국방상. 그게 무슨 말이오? 동맹국을 돕는 일에 반대라니?”
아니스 피그니치.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데 있어 철처럼 단단하고 곧은 모습을 보이기로도 유명해 아아(아이언 아니스)로도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는 제국의 국방상으로서 타국과의 전투가 있을 때마다, 현명한 결정으로 상황을 타개해 온 유능한 관료였다.
“타란트 부족과의 외교관계가 긴밀한 것은 잘 압니다. 하지만 달란도르 왕국과의 전투는 쓸데없는 국력소모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백성들에게 인식이 좋지 못한 오크를 도우면, 자칫 황실 자체의 지지도 하락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오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선입견이오.”
“선입견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면 보편적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반란이 잠잠해진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백성들이 또 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아니스 국방상의 말을 듣자 하니,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명분 따위는 내치자는 소리 같구려?”
테스타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잠잠하던 녀석이 난데없이 튀어나와 말썽이란 말인가.
“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실리를 추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같은 세상에 명예를 추구하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전쟁터에서 기사도의 정신으로 싸우는 기사가 얼마나 됩니까? 어느 기사가 전쟁터에서 예를 갖추고 전쟁을 합니까?”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이오!”
“그만큼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에 따른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란도르 왕국은 페니키아 산맥을 경계로 우리 제국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록 행군로로 쓰기엔 부적합한 곳이긴 하나, 병력이 이동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타란트 부족을 돕게 되면, 왕국은 우리 제국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쾅!]
테스타노가 손에 들고 있던 스태프를 바닥에 쾅 내려찍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왕국 따위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오, 국방상?”
“달란도르 왕국은 우리 제국보다 많은 마법사를 보유하고 있기로 유명합니다. 비록 테스타놈이 9서클의 마스터로 제국을 지탱해주고 계시지만, 달란도르 왕국에는 8서클의 마스터가 일곱이나 있습니다.
얼마 전, 첩보원들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6서클 이상의 상위 클래스 마법사는 달란도르 왕국이 제국보다 3배가량이나 많다고 합니다.”
순간 어전회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국방상의 정보는 정확하기로 유명했다. 어쌔신의 정신을 이어받아 만들어진 ‘카다리스트’들의 정보 수집은 신뢰도가 높은 양질의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외무상 피오스 발언을 요청합니다.”
이 때 외무상 피오스 하이딘이 나섰다. 그는 아니스와 함께 탄탄대로를 달려온 엘리트로 국방상인 그와 더불어, 대외적인 일에 관해서는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기로 유명했다.
“말해보시오.”
테스타노가 노기를 가라앉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대신들의 논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젠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전 국방상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타란트 부족을 돕는 것은 동맹의 의리를 지킨다는 점에서는 매우 훌륭한 일이지만, 제국의 백성과 미래를 두고 볼 경우 최악의 결정이 됩니다.
제국은 국내외의 위협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흑마법사가 지난 반란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사들의 공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오스의 말에 힘을 얻은 대신들이 동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주변 정세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가만히 있는 것이 이득이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역시 안 되는 것인가….’
젠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내가 말하기를 ‘카다르 제국에는 테스타노가 있어, 반드시 타란트 부족을 도울 것이다.’라고 했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갈 분위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