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76화 (76/166)

# 005. 블랙 드래곤 보로미스

‘아! 텔레포트.’

4서클의 마법 텔레포트(Teleport)를 떠올렸다.

카다르 제국에는 제국의 정중앙을 가르는 4개의 교차 대로를 따라서 30km 간격으로 공식 좌표를 정해 놓았었다.

이것은 유사시에 빠른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마나석으로 좌표 자체의 힘을 고정시켜, 좌표의 변동으로 엉뚱한 곳에 텔레포트 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제국에 정해져 있는 공식좌표는 총 64개. 샤크론은 얼마 전에 마법 강의실에서 얼핏 보았던, 공식 좌표 지도서를 떠올렸다. 북쪽에도 길이 있으니,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위치가 있을 것이다.

‘북쪽이라면 역시 패론이야. 패론의 좌표 수식을 텔레포트 수식 가장 마지막에 적용하면 되겠지?’

패론은 예전에 젠카를 마지막으로 호위했던 도시였다. 그러나 여기서 패론까지는 100km가 훨씬 넘는 거리. 그 사이에 위치한 공식 좌표를 알아야 했다.

“어이, 샤크론! 안 따라올 건가? 눈 딱 감고 안 쳐다보려 했는데, 영 신경 쓰이는 군.”

“됐습니다! 먼저 가세요!”

“설마 텔레포트 스크롤 같은 괴상망측한 것을 쓰려는 건 아니겠지? 수도 주변에 텔레포트를 방해하기 위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건 당연한 일. 괜한 일 했다가 죽지 않도록 하게.”

“예? 텔레포트 방해요?”

“수도 문턱까지 텔레포트가 가능하면, 유사시에 적군의 마법사들이 수도 앞까지 밀어 닥칠 게 아닌가? 그런 단순한 것도 모르다니.”

“아!”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공식 좌표를 알고 있었더라면, 마나의 방해로 인해서 몸이 따로따로 텔레포트 되거나 엉뚱한 곳으로 이동했을 터였다.

“그러니 잔말 말고 타도록 해. 이 모포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국경까지는 별 문제 없이 갈 수 있을 거야. 따로 해야 할 이야기도 있으니,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그래도….”

“세 번 거절하고 나서 타겠다는 겸손인 모양인데, 난 참을성이 없어서 말이야. 여기서 거절하면 다시는 권유하지 않겠어.”

“하지만….”

“그럼 간다.”

“아, 예! 타, 타겠습니다.”

“자, 어서 올라와. 이 크기의 모포라면 충분히 다 가릴 수 있어. 내가 귀빈인 만큼, 마차 안을 검문할 리도 없고.”

젠카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샤크론에게 손짓했다. 샤크론도 텔레포트 마저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100km 이상을 중무장 상태로 뛴다는 건 역시 현실성이 없는 문제였다.

“웃차!”

발판을 딛고 올라 선 샤크론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자, 젠카가 모포를 꺼내 그의 몸을 덮어주었다. 100kg을 훌쩍 넘어서는 무게에 마차의 속도가 약간 더뎌졌지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만난 게 몇 달 만인가? 나의 유일한 인간 친구, 샤크론.”

“저의 유일한 오크 친구, 젠카. 반갑습니다.”

“내가 샤크론을 또 다시 찾은 건, 단순히 얼굴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니야. 샤크론이 반드시 나와 동행 할 필요가 있는 문제가 있거든.”

“제가 반드시 동행을 해야 한다구요?”

샤크론은 의문에 잠겼다. 젠카와 자신이 함께 가야만 하는 일이라… 과연 무엇일까?

“그래. 샤크론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분명 무언가 있긴 있는데, 기억이 나질 않고 있었다.

“글쎄요….”

“예전에 블랙 드래곤이라고 우겼었던 남자, 기억나지?”

“아…!”

그제야 샤크론은 기억을 떠올렸다. 책에 파괴의 스켈레톤을 가지고 있다고 적혀있었던 블랙 드래곤을.

“얼마 전 그 사람을 다시 만났어.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말이야. 그는 나에게 날카로운 손톱을 들이대며 예전에 함께 다녔던 기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지.”

“그래서 어떻게 대답하셨어요?”

“물론 카다르의 기사니까 그 곳에 있다고 했지. 수도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하니까?”

“수도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그러더군. 그래서 카다르 사람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물으니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어. 그리고 놀랐지.”

“블랙 드래곤이었나요?”

“그래.”

젠카가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이다. 다만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모습이었을 뿐.

“그렇다면 지금 가는 곳은….”

“북쪽의 길을 선택한 것도 이것 때문이야. 이번에는 패론을 거쳐서 가지 않고, 미리킬라 산을 넘어서 곧장 타란트로 들어 갈거야. 블랙 드래곤은 미리킬라 산 중턱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가 뭐라던가요? 저를 데려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부탁 했어. 기회가 닿는다면 샤크론과 함께 와달라고 말이야. 반드시 전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신적인 존재인 드래곤이 나에게 부탁하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샤크론을 무슨 이유에서 찾는지도 잘 모르겠어.”

파괴의 스켈레톤을 가지고 있는 블랙 드래곤이 자신을 찾는다. 드래곤과 만날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던 샤크론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맹주였던 부모를 도우거나, 혹은 친하게 지냈던 블랙 드래곤이 분명할 것이었다.

“이유가 있지요… 그를 꼭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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