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77화 (77/166)

# 005. 블랙 드래곤 보로미스

“무슨 이유에서?”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젠카. 일단 그를 꼭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가는 길이 미리킬라 산으로 가는 게 맞지요?”

“약속대로 그를 만나고 가게 될 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마워요, 젠카. 덕분에 뜻밖의 행운을 맞이하게 된 것 같군요.”

“뜻밖의 행운이라… 도통 짐작이 가질 않는 걸.”

“곧 알게 될 거에요.”

마차는 쉴 새 없이 숲을 가르며 북쪽을 향해 달렸다.

* * *

“보로미스. 들려? 보로미스….”

“메르헨…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떻게 된 거지?”

“마지막 통신 마법이 될 것 같아, 하하. 상황이 좀 어렵게 됐어. 지금 보로미스를 만날 수 있다면 발데스와 함께, 테스타노를 물리칠 수 있을텐데….”

“메르헨! 그런 소리 하지마.”

블랙 드래곤 하나가 푸른빛을 발하는 넙적한 돌에다 절박한 마음이 담긴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유일한 인간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이었던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젠장… 완전히 갇혀 버렸어. 놈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어. 동료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가고 있고… 나 역시 미래에 희망을 걸을 수밖에 없….”

같은 시간, 베토스의 어느 작은 집 안에서 한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샤크론의 아버지 메르헨 오르네스였다. 그는 머지않은 곳까지 피 냄새가 다가왔음을 알아차렸다.

“메르헨!”

“내 아들 샤크론을 부탁해. 나중에 어떻게든 샤크론을 만나서, 우리가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 줘. 잊지 말고, 꼭 샤크론을….”

“메르헨! 메르헨!”

[드드드드]

통신석의 푸른빛이 사라지고 원래의 검은빛으로 돌아왔다. 상대가 교신을 끊었다는 표시였다. 보로미스는 동료가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성년이 되길 기다리고 있던 헤츨링 시절, 산속을 방황하다가 드래곤 슬레이어들에 의해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황실에서 파견 한 마법사 둘과 기사 다섯이 어린 보로미스의 드래곤 하트를 노리고 달려든 것이다.

그 당시 보로미스는 인간들의 무서움을 몰랐고, 드래곤들이 살 수 있는 구역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해 위험지역까지 멋모르고 들어왔던 상태였다.

그 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고 있던 메르헨과 카렌이 그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난 너희들을 해칠 생각으로 내려온 것이 아냐. 그냥 날 보내 줘.”

“하하하… 드래곤이 귀엽기도 하지. 헤츨링의 드래곤 하트는 순도가 꽤 높다던데…?”

“적어도 수 만 골드는 벌겠는걸.”

“당신들 어린 드래곤을 두고 이럴 수 있습니까?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들만 잡는 존재이지, 무고한 드래곤까지 잡는 존재가 아닙니다.”

갑작스런 두 사람의 등장에 마법사 둘과 기사 다섯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헤츨링 정도를 잡는 것은 문제될 것도 아니었는데, 불청객이 나타나 상황을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이다.

제국의 국법으로 정당성 없는 드래곤 사냥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메르헨과 카렌의 입을 막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봐.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면 천 골드를 주지. 어때? 입 다물고 있는 대가치고는 괜찮지 않나?”

마법사 하나가 타일르듯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차피 드래곤을 잡고 나면 헤츨링이라 해도 3만 골드 이상은 받기 때문에, 천 골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고 하는 것은 잘못 된 일입니다. 게다가 제국의 번영을 위해 힘써야 할 기사분들과 백마법사 분들께서, 이런 사악한 일을 벌이시다니요. 저희 흑마법사들도 이런 몰지각한 일은 하지 않습니다.”

“뭐, 뭐라고? 흑마법사? 저주받은 존재들!”

마법사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에게 흑마법사는 저주와 죽음의 존재였다. 악의 화신이었다.

“그건 오해입니다. 흑마법사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마나를 쓰는 방식이 다른 것뿐입니다.”

“죽여 버려! 흑마법사를 본 이상, 죽이지 않으면 우리도 저주를 받게 돼!”

그 당시, 제국에는 ‘흑마법사를 만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의 힘에 의해서 자신도 저주를 받게 된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 테스타노가 흑마법사의 효과적인 제거를 위해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파급효과를 발휘하여, 흑마법사 타도의 여론에 일조를 했다.

“우린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이에요. 돌아가세요.”

메르헨과 카렌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으며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드래곤 하트보다 흑마법사를 때려잡는 게 훨씬 낫겠지. 네 놈들의 목을 가져가면 계급 상승은 물론이고, 엄청난 포상금까지 받게 되니까!”

“경고합니다! 오지 마십시오!”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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