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79화 (79/166)

# 005. 블랙 드래곤 보로미스

그게 메르헨과 보로미스가 처음 만났던 날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보로미스는 메르헨과 카렌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며, 보기 드물게 인간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드래곤의 맹세로서, 메르헨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공언했다.

동료 블랙 드래곤들도 쾌히 승낙했다. 자신들을 도와준 흑마법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표했던 것이다. 마나석을 선물로 주는 등, 인간과의 첫 접촉에 블랙 드래곤들은 열광했었다.

“훗… 그 때가 30년 전의 일인가. 더 됐나? 시간 감각이 이렇게 없어서야…. 메르헨, 당신은 죽었지만 아들이 살아있다니 다행이야. 당신이 죽기 전 부탁 했던 그것, 이제 전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보로미스가 주변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얼마 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파괴의 스켈레톤, 그것은 머지않은 곳에 3대 신성물을 가진 주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보로미스는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어 그 경로를 훑었다. 토끼 하나를 붙잡아다가 그 안에 통제 마법을 걸어놓고는, 마나의 미약한 흐름을 찾아내도록 했다.

3대 신성물만이 가지는 고유의 냄새. 토끼는 그 냄새를 따라 수도 안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전장터에 등장한 샤크론의 몸에서 신성물의 마나가 느껴졌다. 더불어 발데스의 신성물까지 감지해냈다.

보로미스는 토끼의 눈을 통해 그를 보았다. 그리고 알아냈다. 여관에서 예전에 보았던 그 사내였음을. 동시에 동행했던 인물 중에 타란트 부족의 외교관 젠카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결론은 간단했다. 젠카를 다짜고짜 찾아 간 보로미스는 샤크론을 찾아오라고 말했다. 수도 근처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으니, 그를 시킨 것이다. 그라면 어떤 의심도 받지 않고, 샤크론을 데려올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렇게 샤크론이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 * *

“거의 다 왔어. 이왕이면 만남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우리 같은 오크에게 드래곤은 두려움의 존재나 마찬가지라서.”

“괜찮아요. 별 일 없을 거에요.”

샤크론은 얼굴이 굳어가는 젠카를 안심시켰다. 자신의 부모와 관련 된, 그것도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어떠한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위잉]

‘텔레포트?’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아주 미세한 소리였지만 샤크론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눈치챘다. 누군가 바로 자신의 옆을 향해 텔레포트를 해 온 것이다.

“어디 볼까!”

[스르륵]

“핫!”

[깡!]

“어헛?”

세 가지 소리가 교차했다. 보로미스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샤크론의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받아쳤으며, 젠카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 바람에 마차가 멈추었다. 말들이 겁을 먹고 갑작스레 헛발을 짚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젠카와 샤크론이 중심을 잃고, 마차 안에서 흔들거렸다.

“무슨 짓입니까! 대체 당신은 누구지?”

“메르헨의 아들, 샤크론이 맞나?”

“블랙 드래곤?”

순간적으로 바뀌는 인간의 형체. 그것은 반짝이는 검은 피부를 가진 블랙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일순간 평온하던 숲길에 때 아닌 드래곤의 등장으로 짐승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보로미스. 드래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메르헨의 아들에게 이것을 전해주고자 기다렸다. 반갑다. 예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모른 체 했더구나. 이해한다, 조심 할 필요가 있었을테니까.”

“당신이….”

“그래.”

젠카는 아예 말조차 잃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 보로미스의 모습은 폴리모프 한 오크의 형체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보로미스는 언제라도 마차를 뭉갤 듯한 성체의 블랙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기습을?” “그 동안 아무런 발전 없이 성장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어. 그 나이에 근위기사가 될 실력이라면, 메르헨과 카렌의 힘이 컸을텐데.”

“어떻게 그걸?”

샤크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보로미스는 메르헨과 카렌의 힘을 이야기 했다. 이것은 마나 체인지에 대한 내막을 알고 있다는 셈이다.

“내게 유일했던 인간 친구의 일이야. 모를 수가 있나. 우선 이것부터 받아. 나에게는 별 필요가 없는 물건이거든.”

[텅]

보로미스가 가슴팍에 안아두고 있던 괴상한 모양의 해골을 던졌다. 파괴의 스켈레톤, 말로만 듣던 3대 신성물이었다.

“아, 이것은.”

샤크론이 조심스럽게 해골을 받아 들었다.

확실히 괴상망측한 모양이었다. 인간의 두개골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마치 여러 개가 중첩된 듯한 해골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콧구멍이 두개가 있어야 하지만, 수십개도 넘는 구멍이 해골에 한 덩어리로 뭉쳐 있었던 것이다.

“파괴의 스켈레톤. 남에게 양도할 수 있는 두 개의 신성물과 달리, 이것은 한번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신성물이야. 정말 강해지고 싶다면… 지금 사용하는 게 좋겠지. 아니, 이미 3개의 신성물이 한 곳에 모인 이상 쓰지 않을 수도 없어. 봐봐. 벌써 강한 인력이 세 물체 사이에 작용하기 시작했어.”

“어?”

반지를 낀 왼손을 당기는 듯한 강한 힘에 샤크론은 재빨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