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5. 블랙 드래곤 보로미스
보로미스의 말처럼 자신이 들고 있는 스켈레톤과 나이블로의 소드, 그리고 마왕의 반지가 푸른 광채를 발하며 삼각형의 무늬를 자아내고 있었다.
“행운인 줄만 알아. 신성물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행스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거지. 테스타노였던가. 놈이 알아챘다면 넌 벌써 죽었을 거야.”
“하지만 이건 무기에 걸 맞는 힘이 없으면 위험하잖아요.”
샤크론은 책에서 보았던 문구를 떠올렸다. 죽음의 고통에 준하는 아픔. 만약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인체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고통을 받아들여야 할 터였다.
“쓸데없는 말이야. 시간이 없어. 겉으로는 내가 덤덤해 하는 것 같이 보이겠지만, 나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단 말이다. 진정한 마왕의 힘이 발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보로미스가 눈가에 광채를 발하며 샤크론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신성물이 모인다고 해서 얼렁뚱땅 강자가 되는 것이라면, 수많은 흑마법사들이 신성물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은 3대 신성물을 모두 얻은 후에도 무언가 뛰어넘기 힘든 장벽이 있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걸 얻기 위해, 그리고 보로미스를 만나기 위해 이 곳으로 오긴 했지만… 단순히 3개의 신성물이 만난다고 해서 강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아니, 강해진다. 세 개의 신성물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어. 이렇게 쉽게 모든 신성물을 얻게 된 것이 믿기지 않아서 그러는 건가?”
“이렇게 힘을 얻는 게 쉽다면, 누구나 다 했을거에요.”
샤크론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보로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2개의 신성물을 가지고 있던 샤크론에게 떡하니 스켈레톤까지 던져줬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어이마저 없을 터. 그러나.
“파괴의 스켈레톤을 찾기 위해 부신 동굴만 몇 백 개가 되는 지도 짐작이 안 간다. 지금 네 앞에 있는 스켈레톤은 10년 가까이를 보내서 겨우 찾은 물건이야. 그것도 지하로 한참 파고 들어간 괴상망측한 동굴에서.”
“어떻게요?”
“말하자면 복잡해. 어쨌든 네가 이렇게 모든 신성물을 손에 넣게 된 건, 쉽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거야. 마왕의 반지도, 나이블로의 소드도 맨 처음 주인들에게는 엄청난 수난을 거쳐 들어오게 된 것이니까. 자, 파괴의 스켈레톤에 손을 얹고 마나를 불어넣어봐. 천천히….”
“이게 무슨 일인가…?”
젠카는 느닷없이 벌어지는 드래곤과 인간의 대화를 흥미롭게 살펴보았다. 3대 신성물이고 뭐고 아는 것은 도통 없었지만, 이질적인 세 종족이 모여 있는 이 상황이 흥미 그 자체였던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오크와 인간, 드래곤이 한데 모이기는 힘들 것이다.
“괜찮을까요?”
이와 함께 샤크론은 스켈레톤을 잡고 있던 양손에 마나를 흘렸다. 그러자 조금씩 마나가 흘러나가며 스켈레톤의 외골을 감싸기 시작했다.
“보면 알겠지. 사실 나도 잘 몰라.”
“뭐라구요?”
샤크론은 당황했다. 보로미스의 말만 믿고 일을 벌였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니?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이 일을 두고, 장난스럽게 넘기듯이 말한 보로미스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느끼는 네 힘은 그 상상을 초월하고 있어. 그 조그마한 육체에 8서클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니… 메르헨과 카렌의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마나 하나 흘려내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네 육체도 탐구대상인 것 같군.”
“…….”
샤크론은 대답할 수 없었다. 파괴의 스켈레톤에 마나를 불어넣자, 해골이 조금씩 산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고, 그 가루가 샤크론의 코를 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신 지금 샤크론에게 무슨 일을 한 겁니까?”
“가만히 있어. 저건 힘을 받아들이는 의식이야. 너 따위의 녀석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보로미스의 차가운 대답에 젠카는 조용히 마차 안에 앉아있어야 했다. 아무리 타란트 족의 고위급 관리라고는 하지만, 드래곤 앞에서는 한낱 미물에 불과할 뿐이다.
[츄르르르]
나선의 모양을 그리며 흩날려온 가루는 샤크론의 코를 통해 온 몸으로 파고 들었다. 샤크론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신성물이 마치 자신을 붙잡기라도 하는 듯 몸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크으으….”
기도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강한 열기를 느꼈다. 마치 몸속에 있는 덩어리들을 터뜨리고 태워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더불어 움직일 수도 없었다. 신음도 내기가 버거웠다. 그러나 고통은 상당했다.
심장에서부터 온 몸을 향해 고통의 자극이 퍼져나갔고, 뻣뻣해진 손과 발에서 후끈거리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여전히 가루는 코를 통해 계속 유입되었다.
“고통이 느껴질 거다. 파괴의 스켈레톤은 흑마법사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성물, 샤크론의 몸에 알맞지. 백마법사의 경우, 이 파괴의 스켈레톤의 가루에 감염되면 온 몸이 녹아내리는 저주만 받게 될 뿐이야.
그러나 흑마법사들에게는 어둠의 마나들을 순화시켜주며, 주변의 마나와 몸을 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부여해주는 게 바로 스켈레톤이다. 지금 느껴지는 고통은 불순한 찌꺼기들이 제거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야.”
“읍….”
몸 속의 세포가 터지는 것 같은 기분. 알갱이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는 기분과 매우 유사했다. 뭉친 것은 터뜨리고, 힘을 실어 몸 가운데를 향해 밀어내는 듯 했다. 마치 눈을 모아모아 덩어리로 한 곳에 모으는 것처럼.
“스켈레톤이 전부 산화해 버렸다. 샤크론, 괜찮나?”
젠카가 남김없이 날아가 버린 스켈레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샤크론에게 물었다. 그러나 샤크론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두 눈을 감고 침묵에 잠겨있을 뿐이었다.
[파파파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