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깨달음?
# 006. 깨달음?
“모처럼 찾아온 평화에 느닷없이 전쟁이라니….”
한 동안 일이 없어 느슨한 생활을 해 왔던 제국 정규군 병사 하나가 아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제국의 병사로서 훈련이나 무기 관리에 태만했던 것은 아니지만,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하는 전쟁이 없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것이다. 때 아닌 피바람에 늘어나는 건 두려움이요, 보이지 않는 건 미래였다.
“아무리 오크와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잖아?”
“당연하지. 오크와의 교류가 사실 진귀한 드워프의 물건이나 카다르에서 얻을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어 좋긴 해. 하지만 우리의 피를 바쳐서까지 지켜내야 할 것은 절대 아닌데….”
“이번 전쟁의 결정은 테스타노 대공작이 내렸다던데?”
“정말?”
“그래. 왜, 전쟁에 나가서 죽는 게 두려운 거냐?”
“아앗! 미첼 대장님!”
느닷없이 나타난 불청객에 병사들은 깜짝 놀랐다.
상관이나 국정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자를 처벌하는 것은 불문율과도 같은 일. 그런 일을 벌이고 있던 병사들은 미첼의 갑작스런 등장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내는 게 좋아. 나도 이번 전쟁이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명심해라. 황제 폐하께서 내리는 명은 신성한 것이고, 과정이 어찌 되었든 우리는 그 결과만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미첼 대장님께서 맡으신 저희 부대는 최전방에 투입된다고 하기에 더더욱….”
“내가 있는 한 누구도 죽지 않아. 난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희들을 지켜내고, 임무를 완수할 테니까.”
미첼 제라드.
A급의 근위기사로 몇 안 되는 기사 출신의 군사령관들 중 하나다. 나이는 27세로 어느 한 부대를 맡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역시 샤크론처럼 어릴 적부터 특출 난 재능을 보여 가파른 상승 출세의 길을 겪어온 사람이었다.
대부분 기사들은 기사의 길을 걸으며 기사단의 검술교관이 되거나 개인이 사설 용병대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전쟁에 직접 참여해서 실적을 올리고, 이에 따른 수당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미첼의 경우에는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촉망받는 인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A급 근위기사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그는 중앙 관리로의 진출, 돈벌이가 좋은 기사단의 검술교관이 되라는 주변의 권유를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바로 선발 정규군이었다.
선발 정규군은 기사들과 전쟁을 함께 치르는 혼합 정규군과 달리 언제 전쟁에 투입될지 모르고, 항상 최전방으로 배치되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그런 부대였다. 한마디로 정규군 중에서 가장 대우도 나쁘고, 구성원도 시원치 않은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가 원했던 건, 돈과 명예가 아닌 피가 흩뿌려지는 숨막히는 전투였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선발 정규군이 모두 차출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경비대 소속을 제외하고는 전부 투입된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확실하게 승부를 보겠다는 거겠지. 오늘까지 푹 쉬어두도록 해라. 내일 출발이니까.”
“예.”
미첼의 격려에 병사들은 힘을 얻은 듯, 다시 얼굴에 생기를 되찾았다. 선발 정규군은 정규군, 더 나아가 근위군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고, 승리만 거둔다면 정규군의 편입도 가능해질 터였다.
“제 1군 사령관 미첼 제라드 경 계십니까?”
그 때였다. 급하게 미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 1군은 선발 정규군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내가 사령관 미첼이다. 무슨 일이냐?”
“지금 출군하라는 명령이십니다. 혼합 정규군은 이틀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이건 당초 명령과 다르잖은가?”
“변경됐습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테스타노 대공작 각하의 말씀이 계셨습니다.”
“알았다.”
하루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미첼은 그리 생각했다.
물론 오크들의 입장에서는 요새의 함락이 달린 문제겠지만, 카다르에서 필사적으로 그들을 지켜줄 필요는 없었다. 생색내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미첼은 분명 이 일을 주도했을 테스타노의 심사가 궁금했다. 대체 놈은 무슨 생각으로 제국군을 곤경에 빠뜨리고, 쓸데없는 분쟁에 개입하는 것일까.
“젠장. 꽤나 재촉하는 군.”
“말을 삼가라. 조용히 출발하는 거다. 내가 있는 한, 어느 누구의 목숨도 함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믿어라.”
미첼은 입술을 꼭 깨물며 병사들을 향해 강한 눈빛을 뿜어냈다. 자신에 대한 강렬한 믿음, 그것이면 충분했다. 믿음으로 뭉친 제 1군의 병사들은 강제로 징집 된 왕국군과는 각오부터가 달랐다.
“미첼 대장님. 오래간만에 몸 좀 풀어볼까요?”
“후후.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샤크론인가 하는 녀석… 한 번 보고 싶은데. 그 나이에 근위기사에 오를 실력이면….”
“얼마 전, 오크 외교관을 호위하고 타란트로 갔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밀락 요새로 가는 길에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겠군. 자, 전군 출발한다! 목적지는 밀락 요새. 질풍같은 속도로 놈들을 쓸어버리는 거다!”
“출발~!”
사기충천. 용기백배. 각오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