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깨달음?
미첼이 뿜어내는 특유의 카리스마는 병사들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뭉치게 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이들은 역전의 용사이자, 강철같은 병사가 될 것이다. 미첼은 그렇게 자신했다.
[따각 따각]
기마대의 출발을 시작으로 제 1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쪽으로 불어가는 피바람. 고요하던 대륙의 평화에 종지부를 찍는 첫 걸음이었다.
* * *
“아직도 한참인가? 어떻게 보이는 게 숲 밖에 없는 거야?”
“타란트의 외부는 모두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요. 일종의 장벽과도 같은 셈입니다. 이 부분은 길이 잘 닦여있지 않아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기분도 그런데 마차를 통째로 텔레포트 시키는 건 어떨까?”
이틀 내내 마차는 쉴 새 없이 달렸다. 그런데도 아직 숲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샤크론도 점점 짜증이 났을 뿐더러, 보로미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는 그 무엇도 없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자연의 힘이 강한 곳에서는 오히려 텔레포트가 위험할 수 있어요. 재수 없어서 얼빠진 마법사가 만들어놓은 마법진에 걸리기라도 하면….”
사실 텔레포트라는 게 단순해 보여도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마법이었다. 공식적으로 인정 된 좌표가 있으면 텔레포트 하는 것이 수월하지만, 비공식 좌표의 경우에는 예상외의 변수가 여럿 개입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마법사가 개인의 수련을 위해 작은 마법진을 그려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주변의 마나가 그곳으로 쓸려 들어가면서 공백이 생기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 부분을 지나치는 텔레포트가 시전 되면, 마나의 간섭을 받아 좌표가 급격히 뒤틀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 거리는 이동거리가 멀 수록 매우 크게 변하기 때문에, 조심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재수 없으면 몸이 따로따로 텔레포트되는 끔찍한 상황도 연출 될 수 있다.
“하긴… 용언이 어지간한 방해 마법을 튕겨내긴 하지만, 텔레포트는 아직도 불완전한 마법이야. 옛날 드래곤 슬레이어들 중에는 드래곤을 한 곳에 몰아놓은 다음, 텔레포트를 유도해서 포획했다는 이야기도 많지.”
보로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다.
근 이틀 동안, 보로미스는 샤크론을 지켜보면서 그의 힘과 생각을 읽었다. 샤크론이 보로미스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로미스는 생각을 읽어내면서, 샤크론이 부모의 과거에 대해 끊임없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테스타노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부모의 죽음이 테스타노에 의한 것임을 잘 알지만, 그의 위험성을 체감하지 못해 뚜렷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샤크론의 눈에 비친 테스타노의 모습은 일반 관리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마법은 가르쳐주지 않을 건가요? 드래곤한테 쉽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이겠냐마는….”
“난 블랙 드래곤이야. 두렵지 않아? 적어도 불편해 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주었으면 좋겠는데….”
“어머니, 아버지와 가까웠던 드래곤 이잖아요. 무서워 할 필요도, 의심 할 필요도 없지요. 만약 흑심을 품고 있었다면, 스켈레톤 따위는 일찌감치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샤크론의 말에 보로미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물러 터진 생각이었다.
“언제나 그럴 때 뒤통수를 맞는 법이야. 세상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돼. 심지어 곁에 있는 동료까지도. 지금 네가 테스타노의 밑에 숨어 있다가, 힘을 길러 그 뒤를 치려는 것처럼 말이지.”
“음….”
“내가 좀 더 너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캐내고 난 후에 죽일 생각이었다면? 샤크론, 너는 꼼짝없이 죽게 되는 거야. 지금의 나 자신도 넌 믿어서는 안 돼. 내가 아닌 모든 것은 언제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크흠.”
보로미스의 말에 샤크론은 순간 마음이 착잡해졌다.
아직 멀기만 한 험난한 복수의 길.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었다.
누군가 자신과 함께 해 줄 동료가 필요하고,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보로미스의 말은 이런 샤크론의 속마음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그건 맞는 말이지. 오크들도 필요하다면 동족을 잡아먹기도 해. 이것은 일종의 묵인 하에 벌어지는 계획적인 살해라고 할 수 있지. 열 명의 오크 중에 일곱 정도만 찬성하면, 한 명의 오크는 깨끗이 처리될 수 있어.”
오크들이 재난 상황이나 식량을 구할 수 없는 경우에 행하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다수결의 살(殺)’. 다수의 오크들로부터 찬성을 얻게 되면, 그 대상이 된 오크를 잡아먹는 식사 풍습이었다.
이것은 오크들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모든 오크 부족의 전통 풍습이었다. 젠카는 이것을 두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넓은 세상을 가꾸어왔고, 또 발전 시켜 왔다고 생각해요. 오크들의 예는 너무 극단적이고, 보로미스가 말한 그런 예도 비슷해요. 두 분이 모르는 인간의 믿음… 그건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이라구요.”
샤크론은 아리온을 떠올렸다. 비록 친해진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에게 아리온을 얼마나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100%라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아리온에게 만큼은 샤크론은 솔직할 수 있었다. 또한 아리온 역시 샤크론 앞에서는 솔직했다. 서로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음… 어쨌든 조심하는 게 좋아. 지금의 샤크론은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으니까 말이야.”
“보로미스. 언제까지 함께 할 건가요?”
“글쎄… 샤크론에게 내가 필요 없다고 느껴지기 전 까지는 계속 같이 다닐 생각인데.”
“예에?”
놀란 것은 샤크론이 아니라 젠카였다. 저게 무슨 쌩뚱맞는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수도에서 같이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까지 참여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뭘 그리 놀라나? 난 샤크론과 함께 할 뿐이지 다른 것에는 관심 없어. 왜, 오크 부락이라도 통째로 날려버릴까 두려워서 그러나?”
“아, 그건 아닙니다만….”
“내가 있어서 불편하다면 비켜줄 수는 있네. 보아하니 자네도 샤크론에게 볼 일이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 같은데.”
“별 일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자리는 보로미스님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자리 잖습니까.”
“아, 말이 그렇게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