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84화 (84/166)

# 006. 깨달음?

보로미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긴 젠카가 샤크론을 만날 목적으로 카다르를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도중에 보로미스를 알게 되어, 샤크론을 데려오라는 명령 비슷한 것을 받았을 뿐. 어떻게 보면 젠카가 샤크론을 꼭 만나야 할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수도로 가서 시간이 날 때마다 샤크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는 생각 정도만 있을 뿐,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 보로미스 님께서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비켜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럴 것 없어. 그나저나 당신은 참 예의 바른 오크인 것 같군. 어지간한 놈들은 바람 빠지는 소리나 갈겨대면서 덤벼들던데…. 무지한 것들은 무서운 것을 못 알아보는 법이지.”

“오크라고 다 똑같은 법은 아닙니다. 근 수천 년 동안 인간만큼이나 오크도 발전을 거듭해 왔지요.”

“발전이라고 해 봤자, 거기서 거기야. 드래곤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

삼자(三者). 그것도 이(異) 종족 간의 이야기는 근 며칠 간 계속 이러했다. 보로미스가 볼 때, 오크의 발전 따위는 미미한 것이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역시 드래곤의 자존심은 그걸 허용치 않는 모양이었다.

“취익… 관문입니다. 동료들이 보입니다.”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타란트를 향한 첫 번째 관문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젠카님. 옆에 있는 두 분은 설마….”

“이봐! 잠깐 내 손을 보겠나?”

“예?”

“rldjrxhdwp."

인간으로 폴리모프 한 보로미스가 용언을 외우자, 흰색 섬광이 일며 오크 병사의 표정이 탁 풀렸다. 일시적으로 기억을 통제하고, 지워버리는 마법이었다.

“괜찮은 것 맞습니까?”

“기억만 지우는 거야. 자, 가자고.”

제국의 허락을 맡은 이상 샤크론은 괜찮았지만, 문제는 보로미스였다. 보로미스는 불법 입국(?)이었기 때문에 마법으로 기억을 지운 다음, 통과하는 방식을 취했다.

오크로 폴리모프만 하면 간단하거늘, 이 자존심 센 블랙 드래곤은 죽어도 오크로는 폴리모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다섯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샤크론과 보로미스 일행은 타란트의 젠카 저택에 도착했다. 오크들이 만든 건축물이라 높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크기는 황궁에 버금갈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설마 이게 젠카의 집?”

“그래. 부족장들이 만들어 준 집이지.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는데, 울타리가 워낙 단단해서 어지간한 몬스터도 뚫을 수 없어.”

젠카가 입가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란트 족의 관료사회에서 권력의 척도는 집의 크기였다. 이것은 타란트 족 내에서 젠카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샤크론과 여러 가지 수련을 해보기에는 딱이겠군. 괜찮다면 저기 보이는 공터를 좀 빌려줄 수 있나? 보아하니 울타리가 집보다 더 높아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듯 한데.”

“얼마든지 사용하셔도 됩니다. 전 부족 내 일이 바쁘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누가 들어오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고 계십시오.”

“다녀오세요.”

“샤크론, 일주일 정도 여기서 머물고 아마 카다르 제국군과 합류해야 할 거야.”

“알고 있어요. 사전 탐색을 명령받은 만큼, 미리 요새 쪽으로 나가봐야 하니까요.”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됐어. 좋은 시간 보내게. 나는 좀 일정이 바빠서 말이야, 하하하.”

젠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애써 바람 빠지는 소리를 참으려는 모습이 매우 웃겼지만, 그것도 노력의 산물이 아니던가. 샤크론은 참기로 했다.

젠카가 나가고 나자, 보로미스와 샤크론이 있는 공터의 모든 문이 닫혔다. 마치 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듯이 문이 자동으로 닫히자, 주변은 하나의 거대한 울타리 안에 갇힌 곳이 되었다.

“좋아. 내가 샤크론과 함께 하겠다고 얘기는 했지만, 카다르에 있을 때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어. 알다시피 테스타노는 흑마법에 민감하기도 하면서 가장 강력한 존재니까. 내가 카다르 제국 내로 들어가게 되면 폴리모프 이외의 일은 하기가 힘들거야.”

“명색이 블랙 드래곤인데… 인간을 무서워하다니요?”

“그러지 않았으면 테스타노가 죽어도 벌써 죽었지. 놈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 너도 알다시피 테스타노보다 더 무서운 건 어디 숨어있을지 모르는 녀석의 끄나풀들과 어둠의 힘이야. 놈은 지나치게 강해졌어.”

“왜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거죠?”

“용언 마법은 좋든 싫든 많은 마나의 수반을 필요로 해. 1서클의 마법인 파이어 볼을 시전하려고 해도 용언 마법은 많은 마나를 빨아들이지. 테스타노 정도 되는 녀석이 그런 이상한 흐름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어.”

“하지만 제가 파이어 볼을 쓰고 그랬을 때에는 아무 일 없었는데요?”

“허접한 파이어 볼 따위까지 테스타노가 알아챌 필요는 없잖아?”

“쳇….”

샤크론이 보로미스를 흘겨보며 파이어 볼을 캐스팅 하고는 재빨리 시전 했다. 장난스럽게 던진 파이어 볼이었다. 그런데…

“어? 이 녀석이… 퍼펙트 파이어 볼!”

“와악!”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했던가? 아무 생각 없이 장난스럽게 던진 파이어 볼은 보로미스에 의해 10개가 넘는 화염 덩어리가 되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도 설마 막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놓고는 지금 공격한 거에요?”

“먼저 공격한 건 너야.”

“으이이… 하아앗!”

마땅히 방어할 마법이 생각나지 않자, 샤크론은 재빨리 나이블로의 소드를 꺼내 들고는 힘을 잔뜩 실었다. 그러자 보랏빛 오러가 힘차게 뿜어져 나오며 기운을 발산했다.

[스르릉 스르릉]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파이어 볼을 향해 오러가 실린 검을 휘두르자, 파이어 볼이 궤적을 잃고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1서클의 간단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오러의 힘을 견뎌낼 수 없었던 것이다.

샤크론의 검로를 따라 파이어 볼이 하늘로 솟구쳤고, 이내 주변의 마나에 동화되기 시작한 덩어리들은 자연스럽게 산화했다.

“마법보다 먼저 나오는 검이라… 지금은 검술이 더 자연스러운 건가?”

“부모님의 과거를 알기 전까지는 죽어라 검술만 연습해왔으니까요.”

“그 나이에 그 정도 검술에 오러 라면… 꽤 쓸만한 녀석이구만? 역시 메르헨과 카렌 다운 아들이야.”

“그런가요?”

샤크론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왠지 이런 칭찬에는 얼굴이 붉어지는 그였다.

“마검사를 꿈꾸나?”

“가능하다면요.”

“당돌하군.”

“제 몸이 남들과 다른 건 잘 알잖아요?”

“8서클의 마나와 오러를 쓸 줄 아는 검술. 그 정도면 마검사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서대륙의 마검사는 빛이 투과되지 않은 진한 광채의 오러와 7서클 이상의 마법, 그리고 검술서와 마법서에 조예가 깊은 자로 규정한다.’라고 나와있거든요.”

“하지만 넌 아직 5서클 이상의 마법을 구사할 줄 몰라.”

“배우면 되죠.”

“그리고 한가지 더 간과한 게 있어. 뒤의 단어를 다시 읽어 보겠어?” “검술서와 마법서에 조예가 깊은 자로 규정한다?”

“그래. 네가 읽은 검술서와 마법서는 얼마나 되는 거지?”

“그건….”

보로미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뭔가 실망했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샤크론이 읽은 검술서라고는 두, 세권 정도였고 마법서도 마법을 배우기 위한 책이 전부였다.

병법서 류의 책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내가 인간들의 세상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전설의 마검사 정도는 잘 알아. 그 마검사는 병사를 부릴 줄 알고, 병법에 능하며, 마법사들을 기사처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하지. 진정한 마검사는 마법과 검술을 병용하는 자가 아니야. 그건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지킬 줄 아는 정도에 불과한 거지.

샤크론, 넌 특별한 사람이야. 지금 지하 어딘가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흑마법사 연합의 후계자를 기다리는 수 만의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거지. 넌, 좋든 싫든 언젠가는 테스타노와 싸우게 되어 있어.

나도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샤크론 너 혼자만의 싸움은 절대 아니야. 너를 따르게 될 수 많은 연합군과 너를 죽이려 하는 수 많은 적군과 싸우게 될 그런 운명이란 말이야.

그런데 마법과 검술만 쓸 줄 알면 마검사니까, 그거면 충분하다고? 통째로 부모님의 꿈을 말아먹을 생각이야, 샤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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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연참합니다. 나름대로 절단마공이라는 걸 써봤는데, 제대로 먹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_- 끊는 타이밍을 잘 모르겠어요.

추천은 필수, 코멘트는 백호의 동물원 탈출의 원동력, 선작은 원 샷 노 수거(삭제)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2005.1.2 동물원에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상상하며 백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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