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7. 다크 엘프 리나
“뭐라고, 전방이 무너져?”
“기사 하나가 함정은 물론이고, 아예 전방의 병사들을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황당했다. 기사 하나 때문에 함정이 모조리 날아가고, 병사들이 쓰러진다니? 그 함정들은 기사 따위가 검을 휘두른다고 없어질 그런 게 아니었다.
함정 하나하나마다 장전 된 석궁만 수십 개. 아무리 검의 움직임이 빠르다 한들,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 십 개의 화살을 어떻게 막겠는가?
“리나를 보내라. 리나가 있으면 오크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아. 마법사 에르난스와 제3군 소속의 정예 100명을 딸려 보내라. 리나에게 시간을 끌라고 전해. 난 서쪽의 전선을 맡아 최대한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보겠다.”
“예, 사령관님!”
그래도 메트니는 매우 침착했다. 상황이 어떤 기사라는 놈 때문에 이상하게 흘러갔긴 했지만, 리나는 비밀병기였다.
다크 엘프 리나.
메트니가 길을 잃고 헤메는 것을 데려다가 길러 온 여자 엘프였다. 그 매혹적인 몸매와 매력에 반해서 흑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리나는 그런 것에 호락호락 당할 엘프가 아니었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어디서 왔는지 조차 말하지 않는 리나. 그녀는 메트니가 응큼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 마다,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그를 위협했다.
그의 귀에다 대고,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날 이길 자신이 없다면 손도 대지 않는 게 좋아. 내가 살아가는 데 지장만 없도록 도와주면, 원하는 건 들어주지. 특히 손에 피를 묻힐 수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어차피 세상에 널린 것이 여자다. 괜히 고귀함 운운하는 엘프 건드렸다가, 피를 보느니 리나의 말대로 하는 게 나을 듯 했다.
그래서 메트니는 리나를 전투병기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2년 전에 있었던 달란도르 왕국과 미트란 공국과의 전투에서 423명의 병사를 베었다. 오른손에는 단검, 왼손에는 특수 제작한 갈고리를 끼운 채 말이다.
이런 리나의 과거는 메트니의 자랑이었다. 대외적으로 리나가 올린 성과는 메트니의 공이 되었고, 그것이 사령관으로서의 메트니를 만들었다. 물론 그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리나의 공이 컸던 셈이다.
숱한 전투에 참가하며 죽인 병사만 천 명이 넘고, 기사도 수 십을 베었다. 그런 리나와 100명의 병사라면, 오크 따위는 움직이는 표적일 뿐이다.
“자, 서쪽으로 가자. 리나면 적어도 하루는 북쪽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메트니는 자신했다. 리나는 일당 백, 아니 일당 천이었다. 거기에 보조 마법사와 100명의 정예가 있으면 충분했다.
한편, 샤크론은 보로미스의 지원 아래 달란도르 군의 진영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퍼펙트 쉴드로 둘러싼 몸에 강한 힘이 실린 검면. 검면에 갑주를 얻어맞은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고, 보로미스가 쓰러진 병사들에게 살짝 충격을 주어 기절시켰다.
타란트 오크들은 대항하지 않는 적들은 포로로 잡는다고 했으니, 아마 잡히다 한들 먹이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역시 병사는 기사와 차원이 달라. 검면에 얻어맞았다고 쓰러질 정도라니… 아니면 샤크론의 힘이 강한 건가?”
보로미스는 쓰러지는 병사들을 각각 적절히 요리하며, 부지런히 샤크론의 뒤를 쫓았다. 샤크론은 마나 실드의 전개로 계속해서 마나를 소비하고 있었지만, 이 놈의 마왕의 마나는 끝이 없는지 계속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너무 나서고 있는 것 아니에요?”
“네 능력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잖아. 타란트 오크들은 포로를 죽이지 않아. 걱정 마. 샤크론 덕분에 목숨을 구할 병사들이 많을 테니까.”
보로미스의 말은 진심이고, 또한 사실이었다. 타란트 오크들은 맹목적으로 인간을 살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로로 잡아,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풀어주는 영악한 족속이었다(이건 젠카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보로미스는 차라리 병사들도 안전하고, 샤크론의 힘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덕분에 달란도르 군의 함정은 죄다 무용지물이 됐고,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은 샤크론에게 달려들지도 못하고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이건 너무 일방적인데….”
누구 하나 검 한번 섞어보는 병사가 없었다. 많아야 한 번, 그 이상의 교차는 없었다. 단 한 번의 공격이면 병사 하나가 나가 떨어졌다.
“어, 리나. 리나다!”
“와아아! 드디어 왔다!”
그 때, 병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리나? 언뜻 듣기에는 여자의 이름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