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94화 (94/166)

# 007. 다크 엘프 리나

[깡! 까깡! 깡!]

“제법 실력이 있군. 왠만한 기사들도 몇 번 때리면 죽던데.”

“바보, 난 그런 왠만한 기사가 아니야. 이러지 말고 공격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어? 너랑 내가 무슨 원수지간이라고….”

“내가 널 죽이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없다.”

리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죽이지 않아야 되는 이유가 없다? 정당한 이유를 대란 소리였다.

“난 널 해치러 온 게 아니야. 병사들도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어. 단지 마법으로 기절시켰을 뿐이야. 정말 이렇게 나오면, 너를 어떻게든 공격할 수밖에 없어.”

“믿지 못하겠다.”

고운 얼굴과는 판이하게 그녀의 대답은 매정했다.

이대로 가면 안 될 듯 했다. 전투의 결과야 샤크론이 알 바 아니었지만, 리나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가슴 뭉클한 이 마음. 어떤 감정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 했을 뿐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려는 듯한 그녀의 모습. 인정마저 잃은 그녀의 두 눈은 초롱초롱했지만 살심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맹목적인 살인, 그리고 복수. 그녀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굴레에 사로잡혀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검에다가 마나를 주입시켜 볼까? 마나의 흐름을 손이 아닌 검에 통과시키고, 마법을 시전하면….’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샤크론의 생각은 여기까지 발전했다. 마법사들이 스태프를 마법 시전의 도구로 활용하듯, 그 매개체를 검으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행동은 이것밖에 없었다.

“좋아! 받아라!”

“뭐지.”

샤크론이 1차적으로 가한 공격은 바로 오러였다.

샤크론은 리나의 공격을 받아주다가, 순간적으로 그녀를 밀쳐내면서 시간을 벌었다. 뒤로 밀리고 밀리던 샤크론이 단숨에 자세를 바꾸어 밀고 나오자, 리나도 주춤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에 샤크론의 오러가 내리쳤고, 리나는 양팔을 들어 샤크론의 오러를 정면으로 막아냈다. 물론 이 오러는 극소량의 마나만이 주입 된, 주무르기 식(?) 오러였다.

“크으으….”

역시 오러는 오러였던 모양이다. 양팔로 오러를 정면으로 받아 낸 리나는 양 어깨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샤크론은 이를 놓치지 않고, 검에다 마나를 주입했다.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을 듯 했다. 게다가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아압! 마나 쇼크(Mana Shock)!"

마나 쇼크.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8서클의 마법으로 고서클의 마법사들 사이에 자주 쓰이는 마법이었다.

마나 쇼크의 원리는 간단하다. 순수한 마나만을 방출하는 이 마법은 엄청난 마나 소모를 수반하는 데, 일종의 기싸움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마나 쇼크로 방출 된 마나가 상대의 몸 주변에 엉겨 붙기 시작하면, 주변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백마법사들에게는 치명타가 된다. 마나가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쓸 수 있는 마법의 양이 줄기 시작하고, 마나 쇼크로 우위를 점한 마법사가 상대를 해치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마나 쇼크로 서로의 힘을 제압한 다음, 승부를 보곤 했다.

그렇다면 일반 사람에게 마나 쇼크는 무슨 역할을 할까?

바로 순간적인 기력 상실이다. 마나의 힘으로 상대의 기는 물론이고 주변을 감싸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공간 조이기(?)라고 할까?

샤크론은 이왕이면 그녀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쓰러뜨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마나 쇼크를 택했고, 예상대로 마나가 검 자체에서 캐스팅이 되면서 시전이 이루어졌다.

[파파파팟! 꾸우우욱]

리나의 몸을 둘러싼 마나의 덩어리가 그녀를 죄어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결계를 친 것처럼, 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무엇인가에 부딪혀 다시 쓰러졌다.

“나에게 뭘 한 거지.”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넌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람들을 죽여왔던 것 같아. 그런 건 옳지 않아. 너를 이렇게 피가 튀는 전장터에서 구해내고 싶어. 이유는 없어.”

“푸후훗, 흑마법사 주제에 그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무슨 소리야? 흑마법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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