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95화 (95/166)

# 007. 다크 엘프 리나

샤크론은 마나 쇼크로 당황했을 리나를 안심시켜 주려다가 오히려 당황스런 말을 들어야 했다. 그녀는 대번에 샤크론을 보고는 흑마법사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단순히 짐작으로 꺼낸 말이었을까? 샤크론은 일단 모른 체 하며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는 매우 당황해 했다.

자신의 출신에 대한 비밀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리나가 알 수 있는 경로는 어디에도 없었다.

“너에게서 피의 냄새가 나…. 넌 모르겠지만 난 느낄 수 있어. 네가 흑마법사라는 걸.”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난 널 해칠 생각이 없어. 전쟁에는 더더욱. 나와 함께 여길 벗어나자.”

샤크론의 진심이었다.

보로미스에게 이끌려 검술을 시험한답시고, 전장터로 나오긴 했지만 전투는 그에게 의무가 지워진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그는 제국으로부터 탐색의 임무만 부여받은 것이고, 전투의 참가 여부는 자율이었다.

샤크론은 보로미스가 어디에 있는지만 아는 대로 리나와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왜… 날 데려가려 하지?”

“네가 나에게 피의 냄새가 난다고 했지? 난 너에게서 고독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야.”

“주인님에게 돌아갈 거다. 널 죽이고.”

자신의 몸을 범하려는 흑심까지 품었던 주인이었지만, 리나에게 의지할 대상으 그 밖에 없는 듯 했다. 노예처럼 길들여졌다고나 할까.

리나에게 있어 또 다른 세상으로의 발걸음은 고통이자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샤크론은 계속 죽이겠다는 말만 꺼내는 리나에게서 두려움보다는 동정을 느꼈다. 다크 엘프의 고독함과 자신의 운명이 어우러지는 동질감?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기분이었다.

“마나 쇼크로 갇혀 있으니 당분간은 힘들거야. 보로미스가 있어야 텔레포트 하기가 수월한데….”

[푸슈슈]

그 때, 소환음이 들려왔다. 텔레포트가 이루어지기 바로 직전에 나는 음성이었다.

샤크론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보로미스일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샤크론, 그거 치워라. 감히 드래곤 면전에다가 검을 들이밀다니… 어? 다크 엘프를 잡은 거냐? 응큼한 녀석… 마나 쇼크까지 해놨어? 이 놈 봐라?”

“아, 아니에요. 너무 공격이 거세서 일부러 이렇게 한 거라구요. 난 이 다크 엘프를 구해주고 싶어요.”

“드래곤인 나야 그런 욕구가 없다지만… 인간, 특히 남자인 널 보니 이해가 간다. 뭐라고 하지 않을게, 하하하.”

“됐어요. 드래곤이 인간한테 장난이나 치고… 그나저나 여길 빠져나가요. 어차피 난 임무를 다 완수했으니까, 제국으로 돌아가면 돼요.”

“역시 전쟁은 너한테 과분한건가? 피를 볼 일이 앞으로는 자주 생길텐데….”

“지금 당장은 싫어요. 돌아가요. 텔레포트로 임시 좌표를 만들어봐요, 리나랑 함께 제국으로 돌아가게.”

“가서 뭐라고 해명을 할 건데? 다크 엘프는 카다르 제국에서 금하고 있는 종족이 아니던가? 게다가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엔 너와 함께 제국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차라리 이 다크 엘프와 나는 미리킬라 산에 있는 게 낫겠어.”

“하지만….”

“어차피 내가 더 가르칠 것은 없어. 용언 마법은 인간들과 달라서 그 밖의 마법들은 내가 가르쳐봤자 샤크론이 알아듣지도 못해. 난 혼자 있는게 좋지만… 이 다크 엘프를 가지고 논다면 그럭저럭 재미는 있겠는데?” “리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많은 상처를 받았을 거에요.”

“걱정 마. 내가 이런 일은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원한다면 그녀의 안 좋은 기억을 없애주고, 이전의 삶을 찾게 해 줄 수 있지. 이건 드래곤 로드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긴 하지만. 하하하.”

“설마 기억을 지우려는 거에요?”

“그걸 원하는 것 아니야? 샤크론, 어쨌든 나와 이 다크 엘프는 제국으로 못 들어가.”

“그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녀의 안 좋은 기억만 사라지게 해 줘요. 상처받았던 기억들은 모두.”

현실적으로 카다르 제국에 보로미스가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샤크론은 엄연히 제국의 근위기사, 한마디로 공인이었다.

테스타노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이 없는 지금, 보로미스와 함께 제국으로 들어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건 리나도 마찬가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