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07화 (107/166)

# 009. 탈출

그 당시 다섯 살이었던 샤크론에게 책 한권을 쥐어주며 어설픈 웃음을 지어보였던 사람.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 청년이 제로스였던 것이다. 지금은 비록 늙어, 입가에 주름이 생겨나고 있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얘기를 빠뜨렸군. 내가 그때 널 보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저는… 메르헨과 카렌의 후계자를 뵈러 간 것입니다.”

갑자기 제로스의 말이 존대로 바뀌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말의 변화. 샤크론은 말을 타고 가는 중이라 뒤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제로스에게 물었다.

“교, 교관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메, 메르헨과 카렌의 후계자라니!”

“메르헨과 카렌이라면… 흐, 흑마법사 연합의 맹주? 샤크론이 후계자?”

아리온이 무언가 감을 잡았다는 듯, 샤크론과 제로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베토스로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리온, 이것만 말해주겠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샤크론 님은 흑마법사 연합의 후계자, 3대 맹주님이시다.”

“네? 흑마법사 연합?”

아리온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바뀌었다.

흑마법사 연합… 완전히 무너져 그 흔적조차 감춘 줄 알았던 전대미문의 거대한 연합.

그 연합의 후계자가 자신의 동료 샤크론이었다니….

아리온은 흑마법이라고 해서 꺼리거나 혐오하지는 않았다. 다만 샤크론의 뒷배경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니, 샤크론이 왜 테스타노를 향한 복수를 열망해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어떻게 보면 슈바르츠 가문도 오르네스 가문과 연관이 깊지. 두 가문은 흑마법사 토벌로 인한 최대 피해자들 중 하나니까. 물론 슈바르츠 가문은 아리온의 아버지의 대까지만 피해를 입은 것이기는 하지.”

“샤크론….”

“미안해. 숨길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이제는 숨기지 않을게. 아리온, 날 도와줘. 복수를 향한 나의 한걸음에는 너가 반드시 필요해. 이미 한 배를 탄 이상, 거절하면 방법이 없어.”

“샤크론… 그런 과거가 있었구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어. 패커스와 카트라는 상관 없었지만, 아리온 너는 내가 사라지면 가장 처음으로 의심을 받을 사람이니까. 네가 생죽음을 당하는 걸,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거지.”

샤크론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의 우수에 찬 눈빛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순한 감상에 빠진 것이라 보기엔 심각해 보이기까지 하는 눈빛.

아리온은 말하지 않아도 샤크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수도의 기사단이나 근위기사 따위는 처음부터 관심 없었다. 제로스만 있다면 언제든지 근위기사 때려치겠다고 생각해왔던 아리온이었다.

자신의 옆에 제로스가 있고, 동료 샤크론이 있다. 더 필요한 조건은 없었다.

“샤크론, 고맙다. 뭘 고마워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널 원망하진 않아.”

“제로스 교관님… 당신은 그렇다면 흑기사인가요?”

샤크론이 제로스에게 물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디에 살았는지 알고 있었다는 것은 흑마법사 연합의 비밀 아지트와 관련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하, 그렇습니다. 하지만 발데스 님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기사일 뿐입니다. 그저 오러 조금 흉내 낼 줄 아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일 줄이야. 제로스, 그럼 왜 날 지켜본 거죠?”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만약 수도에서 우리의 도피를 알아차렸다면, 분명 라칸이 먼저 이곳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놈은 신체의 한계를 초월하니까요.”

[타타타타]

아니나 다를까, 제로스의 말에 맞추어 그들의 뒤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먼지까지 숲 속에 일어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제기랄… 벌써….”

샤크론이 입술을 깨물었다.

라칸은 생체 병기. 마법과 물리적 타격 모두에 강하다고 들은 병기였다. 반드시 목 위를 노려야만 한다고 말했던 그 생체병기인 것이다.

“샤크론! 네 놈의 목숨을 거두어가겠다.”

“교관님, 아리온. 옆으로 비켜서세요!”

샤크론은 말을 탄 상태로 검을 들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라칸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서는 한번에 최대한 많은 마법을 시전 해야 할 것 같았다.

“퍼펙트 매직 미사일!”

샤크론의 외침에 나이블로의 소드가 붉은 빛을 발했다. 그리고 검 끝에서 맺혀진 수인이 폭발적으로 반응하면서, 수 십 다발의 매직 미사일을 라칸을 향해 날려보냈다.

그 와중에도 샤크론을 비롯한 두 사람의 말은 열심히 질주를 계속했다. 라칸이 비록 생체병기라고는 하지만, 체력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카다르에서 이곳까지 쫓아올 정도로 힘을 소비했다면, 조금만 더 버티면 될 터였다.

“이런 건 소용없지.”

라칸은 가볍게 두 주먹으로 매직 미사일을 받아쳤다.

마치 가벼운 고무공을 치듯, 라칸의 두 주먹은 매직 미사일을 정면으로 상대했고, 라칸의 무시무시한 힘에 매직 미사일들은 여기저기로 튕겨 나갔다.

“무식하게 강한 놈이군.”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샤크론이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 잡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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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5 알비뇨 말기 선고를 받은 백호가 울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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