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12화 (112/166)

# 010. 카다르 제국을 떠나다.

잠시 흐른 적막이 어색해질 무렵, 세 사람의 눈 앞에 보인 것은 어느 허름한 집이었다.

“이 곳입니까?”

“유모가 날 길러주셨던 곳…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10년을 떠나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요. 유모가 계실 거에요.”

“샤크론, 어서 들어가. 널 다시 보신다면 정말 기뻐하실 거야.”

“그래, 어서 들어가자.”

집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아담한 마당. 이 곳은 샤크론이 검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매일같이 수련을 해왔던 추억의 자리였다.

비록 표적이라고는 유모가 구해 온, 굵은 나무 밑동이 전부였지만 샤크론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했었다. 몇 시간이고 목검을 휘두르는 샤크론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유모. 그녀는 정말로 천사였다.

[휘이이]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마당에 잔잔히 깔려있던 모래들이 붕 떠오르며 먼지처럼 일었다.

원래 마당이야 모래 같은 게 쌓이는 곳이련만, 들어가기 전에 먼지를 뒤집어쓰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조용하군요.”

[끼이이]

제로스의 말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충분히 인기척을 냈지만, 유모는 듣지 못한 듯 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샤크론은 유모를 만날 생각에 부푼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 어머니!”

샤크론이 유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찾았다. 17년을 어머니라 불렀던 그녀다. 오히려 유모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색했다.

“계십니까?”

제로스와 샤크론이 유모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방이라고 해봤자 거실 양 옆에 딸린 두 개가 고작이었다. 어디 들어가있다던가 해서 듣지 못할 그런 집이 아니었다.

샤크론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은 유모의 체취를 따라 자기가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거기에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그녀는 없었다.

이어서 유모가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12살이 되기 전까지 유모와 함께 잠을 자며, 어머니의 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방이었다. 그러나 이 곳에도 유모는 없었다.

“샤크론, 안 계시는 것 같아.”

“어디라도 나가신 걸까?”

샤크론은 유모가 일이 생겨 잠시 어디로 나간 것이라 생각했다. 어지간해서는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유모가 외출을 한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샤크론은 거실에 놓인 가죽 쇼파에 앉아 유모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잠깐, 샤크론 님. 탁자 위에 노란 봉투가 있습니다.”

노란 봉투. 제로스의 말에 샤크론은 순간 마음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탁자 위에 놓인 봉투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세요. 읽어보아야 겠어요.”

“예. 봉투 앞면에 ‘샤크론 도련님께.’라고 적혀 있습니다.”

“으음….”

자신 앞으로 남겨진 편지였다. 유모는 샤크론이 다시 베토스로 오게 될 것이라는 짐작에서 이 편지를 남겼을 것이다.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찌이익]

조심스럽게 봉투 위를 찢은 샤크론은 두 번 접힌 채로 들어있는 편지지를 발견했다. 두 손이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도련님. 도련님이 떠나신지 벌써 6개월이 되어가는 군요.

기다림이라는 것.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비록 맹주님의 아드님이셨지만 자식처럼 길러왔던 도련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수도와 닿는 소식통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베토스의 성격상 유동인구가 적어 그런 희망은 희망으로만 끝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가 맹주님의 아드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누렸겠습니까? 남들은 유모의 길을 자처한 저를 보고 비웃었지만, 저는 상관 없었습니다. 행복함과 영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7년을 도련님과 함께 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절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꿈을 이루시기 위해 떠나신 도련님의 빈자리가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걸까요?

매일 같이 방을 돌아보고 예전의 기억을 더듬지만, 눈 앞에 아른거리는 도련님의 모습에 오늘도 눈물이 흐르네요. 이런 약한 모습 보여드리면 안 되는데… 그러면 맹주님께서 좋아하시지 않겠지요….

저는 확신합니다. 언젠가 도련님은 베토스의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만에하나 도련님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리고 또 한번의 이별을 겪어야 한다면… 견뎌 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언젠가 도련님이 돌아오실 것을 알면서도 제가 떠나는 이유입니다.

도련님, 부디 큰 꿈을 이루십시오. 맹주님께서 바라셨던 꿈… 허무하게 목숨을 잃으셔야 했던 그 때를 잊지 마십시오.

유모는 도련님이 모르시는 그 어딘가에서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겠습니다.

“으음….”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샤크론은 입술을 깨물어 그 감정을 억눌렀다. 이런 곳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대를 가지고 찾아 온 고향이다. 그런데 유모의 자리가 비어있으니,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현명한 유모입니다. 샤크론 님을 위해 일부러 이 곳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충분히 그 마음이 이해가 가는 군요.”

제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모는 끝까지 샤크론을 위해 움직인 것이다. 인정에 이끌려 대의를 그르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사라졌다. 샤크론을 위해서… 이것도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는 거겠죠?”

“미련을 가지지 마. 샤크론, 유모는 네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일부러 여길 떠나신 거야. 그런데 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유모의 마지막 뜻에 거스르는 일이 돼.”

“맞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샤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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