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흑마법사-119화 (119/166)

# 010. 카다르 제국을 떠나다.

[따각 따각]

세 사람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따로 소음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유난히도 발소리가 선명했다.

기묘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사선의 계단은 나선형으로 꼭대기까지 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서 돌벽으로 계단 양옆을 마감 처리해서 안전성을 확보한 듯 했다.

덕분에 세 사람은 돌벽 밖으로 내다보이는 신전의 곳곳을 구경하며 한 걸음씩 옮기고 있었다.

“샤크론. 대체 저 문자들은 어디서 쓰는 문자일까? 카다르 어도 아니고, 어떤 대륙에서도 저런 문자는 쓰지 않는 걸로 아는데.”

“음… 상형 문자를 쓴 건 한참 오래 전의 일이니까 그렇지. 그러고 보니 무심코 넘겼던 양옆의 새겨진 문자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문자잖아?”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더욱 잘 보이는 양쪽의 기괴한 문자들은 분명 현재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대의 상형문자라고 보기에도 꽤 애매한 것이 연관성을 부여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줄 몇 개가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상형문자가 태양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동그라미는 그려놓을 것이고, 최대한 의미를 나타내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저 문자들은 줄 몇 개만 그어놓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조합한 것이 고작이었다.

“아무래도 이 아공간은 두 분께서 무엇을 위해 만드신 공간인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만 하셔야 했던 비밀스러운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제로스가 예리한 추측을 내놓았다.

어지간해서 신전이나 제단에 관한 것이라면 메르헨과 카렌이 이렇게 숨겨서 지었을 리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공간이기 때문에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굳이 이렇게 큰 규모의 건축물을 지으면서까지 해야 했던 그 무엇. 그 무엇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맞아요. 단순히 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이 공간 자체가 의심 투성이였다.

차라리 암호문을 작성했던 것처럼 샤크론에게 보여 줄 내용을 암호 형태로 만들었으면 될 것이다. 그러면 안전하게 샤크론이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굳이 부모는 샤크론으로 하여금 아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저렇게 엄청난 신전과 제단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샤크론이 이 곳으로 와야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역시 저 책에 모든 해답이 들어있는 것일까요?”

제로스가 꼭대기에 있는 책을 가리켰다. 제로스도 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연합의 많은 정보를 알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 듯 했다.

“으음…….”

샤크론은 올라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문자들을 바라보며 얕은 신음을 흘렸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마치 자신이 이 곳으로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 그것은 느낌으로 자각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었다. 뭔가 터질 것 같은데, 그것을 짐작조차 못하겠으니 말이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계속해서 주변을 바라보며 걸어 올라갔던 세 사람의 눈에 드디어 마지막이 보여 오기 시작했다. 제단의 최상층에 도달한 것이다.

꼭대기에 올라 묶여있는 책을 보니, 아래서 보았던 빛깔과는 달리 검붉은 색의 책이었다.

“음. 책이 한 권 놓여있고, 푸른 구슬이 하나 놓여져있군요.”

“그러고 보니 구슬이 하나 있네.”

제로스와 아리온이 가리킨 것은 주먹만한 크기의 구슬이었다. 자체적으로 푸른빛을 발하는 것이 수정 구슬을 연상케했다.

“우선 책을 보는 게 좋겠어요.”

샤크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후, 아주 살살 책의 첫 장을 넘겼다. 늘 그랬듯이 첫 장에는 목차가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촤아악]

종이의 마찰음과 함께 첫 장이 펴졌다. 예상과는 다르게 첫 장에는 이 책을 만든 이유가 적혀 있었다. 일종의 소개글인 것이다.

이 아공간을 열 수 있었다면, 당신은 이 책과 연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대에게 전할 것이 있어 할 말을 모두 이 책에 묶어 남긴다.

당신은 이 책을 가져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만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세 가지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는 우리 연합에 관련 된 정보가 들어있다. 이 책은 우리 연합의 지하 거점 세 곳과 연결해주는 스크롤의 구실을 하며, 활용횟수는 무한하다. 더불어 지하 거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요새 내부의 지도가 모두 수록되어 있어, 필요할 때에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는 북대륙의 두 거점으로 통하는 정보이다. 정보라기 보다는 연결 스크롤의 활용이라 하면 될 듯 하다.

이 두 곳의 거점은 당신이 검술이나 마법을 수련하는 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얻을 수 있는 도움 만큼이나 위험도 크다는 것이다.

아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시체나 해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재수가 좋으면 마법사나 명검을 얻을 수도 있고….

간단히 소개만 하자면 이 곳은 마물들의 안식처이다. 흑마법의 원천이라고 하는 마족, 마왕과의 연결통로가 이 곳 어디에 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알아 채지는 못했지만, 마기가 충천한 것으로 보아 그 말은 확실한 듯 하다.

그래서 마물들을 사냥하기에 최적이라는 것이다. 마물들은 쉽사리 잡히지 않는 만큼, 당신의 실력 향상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라 자신한다.

셋째로는 마왕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권리이다. 이것은 바로 옆에 있는 수정구슬을 이용해 마왕과 얘기할 수 있는 일종의 대리신탁이기도 하다.

가장 뒷장을 보면 종이가 한 장 있는데, 그것에 적힌 주문을 수정구슬에 대고 외우면 마왕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의 몸 속에 마왕의 마나가 흐르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마왕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번 단 한번이며, 제단에 올라온 이상 그를 만나지 않고는 내려가지 못하도록 설계를 끝내놓았다. 아마 내려가기 위해 아래를 보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수정구슬이 마왕의 대화가 끝난 후에 깨지지 않는 한, 내려가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물건 하나를 떨어뜨려 보면 될 것이다.

그 밖에 책 여기저기에 우리가 투쟁해온 역사와 그림이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것들을 읽어보고 우리들이 꿈꿔온 미래와 정의에 대해 생각해주기 바란다.

아마… 왜 이런 제단이 만들어졌는지, 공간은 왜 만들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대답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당신이 앞으로 미래를 개척해나가면서 알아가야 할 것이기에.

---

추천고기가 부족했지만, 힘을 내서 한 편 더 올립니다.

백호를 위한 추천 고기를 남김없이 던져주세요. 고기 좀 질리게 먹어봅시다! ㅋㅋ

---


0